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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주님의 형제, 주님의 전사 - 2014.9.23 연중 제25주간 화요일(순례35일차),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3 조회수797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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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3 연중 제25주간 화요일(순례35일차),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 사제(1887-1968) 기념일, 
잠언21,1-6.10-13 루카8,19-21

                               

주님의 형제, 주님의 전사


저와 순례중인 박이냐시오는 주님안에서 형제요 전사입니다. 
서로가 '주님의 형제'요 '주님의 전사'입니다. 
이렇게 남은 기간까지 무려 50여일을 어느 육친의 형제도 
함께 미사하고, 기도하고, 먹고, 자고, 걷고, 대화한 경우는 없을 것입니다.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

주님은 당신 말씀을 들으며 당신을 에워싸고 있는 이들을 향해 당신의 어머니와 형제들이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이냐시오와 저 역시 
현재 온전히 주님 중심의 삶을 살기에 주님의 형제됨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고 자부합니다.

오늘은 순례35일차가 됩니다. 
어제의 순례과정에서도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틀아이카스텔라에서 이곳 살리아 알베르게까지 24.3km, 
아침6시부터 오후1시까지 1회 쉬고 꼬박 7시간을 걸었으니 
실제로는 24.3km를 훨씬 넘을 거라 생각됩니다. 

서로가 생각해도 정말 잘 걸었습니다.
"형제님의 병과를 수송에서 보병으로 바꿔야 되겠습니다."
형제님의 논산 군번으로 하면 저보다 한참 빠릅니다. 
재미있는 것이 40여년 지난 지금도 군번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며 저의 논산 군번은 12092299입니다.

"신부님은 더 잘 걸으십니다."
"저는 논산훈련소 28연대에 근무할 때, 연대 구보선수로 뛴적이 있습니다. 
당시 병사들은 측정에 합격해야 진급도 하고 휴가도 가는데 측정에 사격과 구보는 기본이었습니다."

서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또 끊임없이 스틱대신 주님의 스틱인 묵주를 잡고 기도하며 걸었습니다. 
흡사 둘의 모습이 고지를 점렴하며 나가는 보병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곳한곳 도착할 때마다 찍은 도장의 순례자 카드가 흡사 훈장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이제 몇곳의 고지 점령만 남았습니다. 
장군들은 전쟁중에 승리하여, 결국은 사람을 많이 죽여 훈장이지만 
우리의 훈장은 그와 완전히 차원이 다릅니다. 
이 순례자 카드를 훈장으로 여겨 가슴에 달면 가득 찰 것입니다. 가보로 보관해도 될 것입니다."
도장 가득 찍힌 순례자 카드가 마치 빛나는 훈장들로 가득한 느낌이었습니다. 

어제 순례여정의 사연을 소개합니다. 
이곳 살리아까지는 산실을 통해 가는 18km, 지름길 코스와 
사모스를 통해 가는 볼 것 많은 24.3km, 긴 코스 둘이었습니다. 
전날 긴코스를 가기로 합의했고 출발했지만 
출발하다보니 산실코스로 접어들었고 여러 사람이 이 빠르고 쉬운 길을 택해 걷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그냥 짧은 코스를 가자 했지만 형제는 긴코스를 원했습니다.

"좋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형제님이 앞장서 인도하십시오."

후에 저의 분별과 결단, 실행에 하느님께 감사했습니다. 
하여 한참가다 되돌아와 다시 사모스쪽으로 걷기 시작했습니다. 
끝없이 난 도로였고, 팻말에는 살리아까지 20km라 씌어 있었습니다.

"이대로 도로따라 가다보면 살리아에 도착하는 것 아닙니까?"
"아닙니다. 도중에 빠져나가는 길이 있습니다."

아무리 걸어도 도로만 계속되다가 마침내 1시간쯤 걸려 이정표와 더불어 샛길이 나타났고 
장장 5시간 걸리는 오묘한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거의 다니지 않았던 길처럼 
썩은 나무가 길 한복판에 있었고 나뭇잎들도 그대로 였습니다. 
스페인 도착후 많은 새소리를 듣기는 처음입니다. 

어둔 아침, 인적없는, 나무 우거진, 흡사 동굴같은 길을, 
또 강물을 옆에 끼고 오솔길을, 숲길을, 계곡길을 한없이 걸었습니다. 
분명 거의 다니지 않은 순례길임에 분명했지만 이렇게 깊고 아름다운 길은 처음입니다. 
무려 5시간을 걸었지만 전혀 피곤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우리 한국 농촌처럼 폐가가 된 집들도 많았고 문닫은 동네 성당들도 많았습니다. 
성당 옆 마당의 공동묘지도 잡풀로 무성했습니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는 성당이요 공동묘지였습니다. 

걷는 도중 지천에 깔린 도토리들을 밟고 걸었습니다. 
도토리 묵을 한다면 엄청난 양일 것입니다. 
좌우간 5시간 걷는 동안 만난 순례자는 고작 셋이었고, 
마지막 합류지점에서 쉽고 빠른 길을 택한 순례자들이 쏟아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이냐시오 형제님, 어제의 불명예를 완전 회복했습니다. 오늘의 코스 아주 좋았습니다."

참으로 풍부한 체험의, 결코 잊지 못할 아름답고 신비로운 길이었습니다. 
더불어 '둘의 신비'에 대해, 사람 인자에 대해 많이 생각했습니다. 

둘이었기에 이 길을 걸었지 혼자였더라면 애당초 포기했을 것입니다. 
'아, 혼자서는 사람이 될 수 없구나. 
둘이 서로 보완해야 비로소 사람이라는 그래서 한자의 사람 인자구나.'하는 깨달음이 
깊이 새겨졌습니다. 
두세사람이 내 이름으로 있는 곳에 주님도 함께 계시겠다는 말씀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또 사람과 길에 대한 깊은 연관입니다. 
길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고, 사람이 있는 곳이 길이 있다는 진리입니다. 
더불어 인도, 도인이란 한자 뜻의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순례여정중인 이냐시오 형제와 저는 그대로 주님의 형제요 주님의 전사입니다. 
오늘 화답송 시편의 주제도 길입니다. 
오늘 순례길을 걸을 때마다 되뇌어야 할 말씀입니다.

"행복하여라. 온전한 길을 걷는 이들,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사는 이들!"
"당신 계명의 길을 걷게 하소서. 저는 이 길을 좋아하나이다."

진정 순례길에 충실한 이들은 주님 계명의 길을 좋아할 것이며, 
다음 잠언의 말씀에 깊이 공감할 것입니다.
"사람의 길이 제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정의와 공정을 실천함이 주님께는 제물보다 낫다."
"속임수 혀로 보화를 장만함은, 죽음을 찾는 자들의 덧없는 환상일 뿐이다."

마음을 살피시는 주님 앞에서, 
온갖 덧없는 환상을 벗어버리고, 정의롭고 공정한 인생순례여정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이렇게 살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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