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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이다 -사랑의 중심- 2014.9.25 연중 제25주간 목요일(순례37일차),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5 조회수1,048 추천수9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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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5  연중 제25주간 목요일(순례37일차), 코헬렛1,2-11 루카9,7-9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이다
                                              
-사랑의 중심-

오늘은 순례37일차 입니다. 
이제 두 고지만 통과하면 9.27일, 대망의 산티아고에 입성합니다. 
시간이 남아 내친김에 피스테이까지 약4일 잡고 또 걸어볼 계획입니다. 

어제의 폴토마린에서 파라스 데 레이, 여기까지 24km, 
새벽5:30-12시 까지 6시간 반동안의 순례여정도 풍요로웠습니다. 
완전히 개인 날씨에 선선하기가 전형적인 한국 날씨입니다. 

순례 중반까지 지평선 아득한 '넓이'의 들길을 걷다가 
큰 나무들 가득한 '깊이'의 숲길과 산길을 걸으니 
비로소 마음도 넓이와 깊이가 조화되어 안정되는 느낌입니다. 
갈수록 늘 새롭게 느껴지는 '길'에 활력도 샘솟습니다. 

알베르게 정보없이도 일찍 도착한 덕에 
충분히 관망하여 늘 좋은 곳을 선택할 수 있음도 감사합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제가 우선 물색하는 것은, 
새벽 미사드릴 장소와 강론을 쓸 장소입니다. 
하여 지금까지 늘 차질없이 강론을 쓰고 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순례의 중심은 하느님이시기에, 
매일 미사를 통해 '사랑의 중심', '활력의 중심'을 새롭게 확인하는 것이 
우선적임을 깨닫습니다. 

어제의 에피소드가 오늘 강론 서두에 잘 어울립니다. 
순례자  숙소에 도착하면 대충 짐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헤드랜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벽 이동시 필수품이 이마에 다는 헤드랜턴인데 참 암담했습니다. 

하여 이냐시오 형제와 등산 물품 파는 곳을 찾아 
스페인제 헤드랜턴을 샀는데 자동차 헤드라이트(?) 같은 대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감이 이상하여 숙소에 도착한 후 샅샅이 수색하니 
침대 사이에 헨드랜턴이 끼어 있었습니다.

전화위복입니다. 
새벽 캄캄한 길을 새로 산 대형의 헤드랜턴을 사용하니 얼마나 밝은 지 
참 통쾌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생명임을, '빛의 생명'임을 절감했습니다. 

하느님은 빛이십니다. 
어둠이 전혀 없는 사랑의 중심, 사랑의 빛이십니다. 
허무와 두려움에 대한 유일한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사랑의 중심인 하느님 사랑의 빛만이 허무와 절망,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사람 누구나의 원초적 정서가 허무와 두려움입니다. 
인간 본성에 DNA처럼 내재해 있는 허무와 두려움입니다. 
바로 이런 허무와 두려움은 하느님을 찾으라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초대장입니다. 

오늘 코헬렛의 고백에 공감하지 않을 자 누가 있겠는지요.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구구절절 공감이 갑니다. 
제가 볼때 코헬렛의 하느님 찾는 절규의 고백입니다. 

참으로 치명적인 영혼의 질병이 허무주의입니다. 
바로 여기가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면 사랑의 빛, 생명의 빛 충만한 삶이지만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허무의 심연 속에 삶입니다. 

허무감으로부터 시작되는 
무감각, 무기력, 무의욕, 불안, 두려움에 온갖 정신질환입니다. 
허무와 절망, 두려움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을 등질 때 허무와 절망, 두려움이요, 
하느님을 향할 때 하느님 사랑의 빛, 생명의 빛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출현에 불안으로 전전긍긍하는 헤로데 임금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모두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하였다.-

헤로데의 양심가책으로 인한 불안감이 그대로 들어납니다. 
하느님을 떠나 사랑의 중심을 잃을 때, 
허무와 불안, 두려움이요 급기야 헤로데 같은 범죄입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과 이어지는 시편기도가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임을 입증합니다.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사랑의 중심이신 주님 안에 머물 때 
치유되는 영혼의 질병인 허무와 불안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안의 허무와 불안, 절망의 어둠을 일거에 날려 버리십니다. 

"주님,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주님,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아멘.



2014.9.25  연중 제25주간 목요일(순례37일차), 코헬렛1,2-11 루카9,7-9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이다
                                              
-사랑의 중심-


오늘은 순례37일차 입니다. 
이제 두 고지만 통과하면 9.27일, 대망의 산티아고에 입성합니다. 
시간이 남아 내친김에 피스테이까지 약4일 잡고 또 걸어볼 계획입니다. 

어제의 폴토마린에서 파라스 데 레이, 여기까지 24km, 
새벽5:30-12시 까지 6시간 반동안의 순례여정도 풍요로웠습니다. 
완전히 개인 날씨에 선선하기가 전형적인 한국 날씨입니다. 

순례 중반까지 지평선 아득한 '넓이'의 들길을 걷다가 큰 나무들 가득한 '깊이'의 숲길과 산길을 걸으니 
비로소 마음도 넓이와 깊이가 조화되어 안정되는 느낌입니다. 
갈수록 늘 새롭게 느껴지는 '길'에 활력도 샘솟습니다. 

알베르게 정보없이도 일찍 도착한 덕에 충분히 관망하여 늘 좋은 곳을 선택할 수 있음도 감사합니다.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제가 우선 물색하는 것은, 새벽 미사드릴 장소와 강론을 쓸 장소입니다. 
하여 지금까지 늘 차질없이 강론을 쓰고 미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순례의 중심은 하느님이시기에, 
매일 미사를 통해 '사랑의 중심', '활력의 중심'을 새롭게 확인하는 것이 우선적임을 깨닫습니다. 

어제의 에피소드가 오늘 강론 서두에 잘 어울립니다. 
순례자  숙소에 도착하면 대충 짐을 정리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헤드랜턴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새벽 이동시 필수품이 이마에 다는 헤드랜턴인데 참 암담했습니다. 

하여 이냐시오 형제와 등산 물품 파는 곳을 찾아 스페인제 헤드랜턴을 샀는데 
자동차 헤드라이트(?) 같은 대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감이 이상하여 숙소에 도착한 후 샅샅이 수색하니 침대 사이에 헨드랜턴이 끼어 있었습니다.

전화위복입니다. 
새벽 캄캄한 길을 새로 산 대형의 헤드랜턴을 사용하니 얼마나 밝은 지 참 통쾌했습니다. 
어둠을 밝히는 빛이 생명임을, '빛의 생명'임을 절감했습니다. 

하느님은 빛이십니다. 어둠이 전혀 없는 사랑의 중심, 사랑의 빛이십니다. 
허무와 두려움에 대한 유일한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사랑의 중심인 하느님 사랑의 빛만이 허무와 절망, 두려움의 어둠을 몰아냅니다.

사람 누구나의 원초적 정서가 허무와 두려움입니다. 
인간 본성에 DNA처럼 내재해 있는 허무와 두려움입니다. 
바로 이런 허무와 두려움은 하느님을 찾으라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초대장입니다. 

오늘 코헬렛의 고백에 공감하지 않을 자 누가 있겠는지요.
"허무로다, 허무! 모든 것이 허무로다. 
태양 아래에서 애쓰는 모든 노고가 사람에게 무슨 보람이 있으랴.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지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뜨고 지지만, 떠올랐던 그곳으로 서둘러 간다. 
있던 것은 다시 있을 것이고, 이루어진 것은 다시 이루어질 것이니, 태양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

구구절절 공감이 갑니다. 
제가 볼때 코헬렛의 하느님 찾는 절규의 고백입니다. 

참으로 치명적인 영혼의 질병이 허무주의입니다. 
바로 여기가 생명과 죽음의 갈림길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면 사랑의 빛, 생명의 빛 충만한 삶이지만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면 허무의 심연 속에 삶입니다. 

허무감으로부터 시작되는 무감각, 무기력, 무의욕, 불안, 두려움에 온갖 정신질환입니다. 
허무와 절망, 두려움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입니다. 
하느님을 등질 때 허무와 절망, 두려움이요, 하느님을 향할 때 
하느님 사랑의 빛, 생명의 빛으로 충만한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출현에 불안으로 전전긍긍하는 헤로데 임금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모두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하였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러면서 그는 예수님을 만나보려고 하였다.-

헤로데의 양심가책으로 인한 불안감이 그대로 들어납니다. 
하느님을 떠나 사랑의 중심을 잃을 때, 허무와 불안, 두려움이요 급기야 헤로데 같은 범죄입니다. 

오늘 화답송 후렴과 이어지는 시편기도가 허무에 대한 답은 하느님뿐임을 입증합니다.

"주님, 당신은 대대로 저희 안식처가 되셨나이다."

우리의 영원한 안식처이자 사랑의 중심이신 
주님 안에 머물 때 치유되는 영혼의 질병인 허무와 불안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안의 허무와 불안, 절망의 어둠을 일거에 날려 버리십니다. 

"주님, 저희 날수를 헤아리도록 가르치소서. 저희 마음이 슬기를 얻으리이다."
"주님, 아침에 당신 자애로 저희를 채워주소서. 저희는 날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리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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