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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때'의 신비 - 2014.9.26 연중 제25주간 금요일(순례38일차),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6 조회수916 추천수15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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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9.26 연중 제25주간 금요일(순례38일차), 코헬렛3,1-11 루카9,18-22

                                     
'때'의 신비

오늘은 순례38일차 입니다. 
내일은 대망의 산티아고에 입성합니다. 
어제의 순례일정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파라스 데 레이'에서 '알주아'여기까지 24km정도로 알았는데 무려 30km정도, 
아침6시에 출발하여 오후 2시 도착, 
무려8시간 정도의 순례여정중 2번째의 장거리였습니다. 

순례뿐 아니라 살다보면 이렇게 힘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도착한후도 좀 헤매기는 하였지만 
저렴(6유로)하면서도 쾌적한 공간의 좋은 알베르게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는 도중 점심 대용으로 '멜이데'에서 유명하다는 문어를 먹을 수 있어 
걷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때의 신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두 예화입니다.

"야, 이신부, 수도원에 살면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수도원에서도 늙는구나."
수십년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의 신기해하며 한 말입니다.

"저는 신부님만은 그대로일줄 알았어요."
차마 늙었다는 말을 쓰지 않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자매의 진정성이 담긴 말입니다. 

하느님은 신부라 하여 늙지 않는 혜택을 주지 않습니다. 
모든 시간의 때는 하느님 손안에 있고 아무도 그 때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천국같은 수도원에 살아도 
늙음의 때, 고통의 때, 죽음의 때를 피할 수 없습니다. 

참 알 수 없는 게, 때의 신비입니다. 
제게 이렇게 
안식년에다 산티아고 순례의 때가 있으리라곤 꿈에도 상상 못했습니다. 
아마 이냐시오 형제도 이렇게 산티야고 순례의 때가 있으리라곤 
전혀 상상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의 때 안에는 없었지만 하느님의 때안에는 있었던 것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모두가 하느님의 때요, 
이런 때를 아는 것이 지혜와 겸손이고, 이런 때를 받아들임이 순종의 믿음입니다. 

저 역시 산티아고 순례에 자신이 없었고 주변에서도 모두 우려했기에 주저했지만 하느님이 주신 때로  알고 받아들였습니다. 
막상 실행하고 보니 하느님의 은혜로운 선물의 때로 깊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코헬렛의 1독서는 온통 때에 대한 내용으로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들입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으면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하느님 주신 때의 리듬입니다. 
이런 삶의 리듬, 때의 리듬을 잊고 사는 경우는, 
또 헤아릴 수 없는 신비의 때는 얼마나 많은지요. 

이냐시오 형제와 함께 순례하면서도 때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서로에게 기도의 때가 있고, 침묵의 때가 있고, 대화의 때가 있습니다. 

때를 분별함이 지혜요, 때를 기다림이 믿음이요, 때를 받아들임이 순종입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자는 하느님의 때에 겸손할 수뿐이 없고 
그 때를 깨어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상식적인 때보다도 하느님이 주신 때를 깨닫는 것입니다. 
기도와 믿음이 없이는 깨달을 수 없는 하느님의 때는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수난 예고를 통해 
하느님 주신 당신의 때를 깊이 통찰하고 계심을 봅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울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주님은 당신 미래의 때를 정확히 예측하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모두가 하느님의 때이자 동시에 나의 때입니다. 

지금이 하느님께, 또 나에게 어느 때인지 늘 물어야 되겠습니다. 
이 때에 대비하며 살아감이 유비무환의 지혜요, 
때를 받아들이는 순종에 지체함이 없을 때 누리는 자유입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하느님의 때는 얼마나 많은지요. 
하여 분도성인은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하시며 죽음의 때에 대비하라 하십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때를 알아 대비하는 지혜와 
때를 받아들이는 겸손한 믿음을 주십니다.

"주님,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시편145,15)

늘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주님은 매사 모두 제때에 잘 이루어주십니다. 

아멘.



2014.9.26 연중 제25주간 금요일(순례38일차), 코헬렛3,1-11 루카9,18-22

                                     
'때'의 신비


오늘은 순례38일차 입니다. 
내일은 대망의 산티아고에 입성합니다. 
어제의 순례일정은 많이 힘들었습니다. 

'파라스 데 레이'에서 '알주아'여기까지 24km정도로 알았는데 무려 30km정도, 
아침6시에 출발하여 오후 2시 도착, 무려8시간 정도의 순례여정중 2번째의 장거리였습니다. 

순례뿐 아니라 살다보면 이렇게 힘든 때도 있는 법입니다. 
도착한후도 좀 헤매기는 하였지만 
저렴(6유로)하면서도 쾌적한 공간의 좋은 알베르게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오는 도중 점심 대용으로 '멜이데'에서 유명하다는 문어를 먹을 수 있어 걷는데 큰 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때의 신비'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지금도 잊지 못하는 두 예화입니다.

"야, 이신부, 수도원에 살면 늙지 않을 줄 알았는데 수도원에서도 늙는구나."
수십년만에 만난 초등학교 동창의 신기해하며 한 말입니다.

"저는 신부님만은 그대로일줄 알았어요."
차마 늙었다는 말을 쓰지 않고 에둘러 표현했지만 자매의 진정성이 담긴 말입니다. 

하느님은 신부라 하여 늙지 않는 혜택을 주지 않습니다. 
모든 시간의 때는 하느님 손안에 있고 아무도 그 때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천국같은 수도원에 살아도 늙음의 때, 고통의 때, 죽음의 때를 피할 수 없습니다. 

참 알 수 없는 게, 때의 신비입니다. 
제게 이렇게 안식년에다 산티아고 순례의 때가 있으리라곤 꿈에도 상상 못했습니다. 
아마 이냐시오 형제도 이렇게 산티야고 순례의 때가 있으리라곤 전혀 상상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의 때 안에는 없었지만 하느님의 때안에는 있었던 것입니다. 
깊이 들여다 보면 모두가 하느님의 때요, 
이런 때를 아는 것이 지혜와 겸손이고, 이런 때를 받아들임이 순종의 믿음입니다. 

저 역시 산티아고 순례에 자신이 없었고 주변에서도 모두 우려했기에 주저했지만 
하느님이 주신 때로  알고 받아들였습니다. 
막상 실행하고 보니 하느님의 은혜로운 선물의 때로 깊이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오늘 코헬렛의 1독서는 온통 때에 대한 내용으로 누구나 공감하는 내용들입니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으면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으면 심긴 것을 뽑을 때가 있다.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기뻐 뛸 때가 있다. 
침묵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다.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다."

하느님 주신 때의 리듬입니다. 
이런 삶의 리듬, 때의 리듬을 잊고 사는 경우는, 또 헤아릴 수 없는 신비의 때는 얼마나 많은지요. 

이냐시오 형제와 함께 순례하면서도 때의 중요성을 깨닫습니다. 
서로에게 기도의 때가 있고, 침묵의 때가 있고, 대화의 때가 있습니다. 

때를 분별함이 지혜요, 때를 기다림이 믿음이요, 때를 받아들임이 순종입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자는 하느님의 때에 겸손할 수뿐이 없고 그 때를 깨어 기다리며 준비합니다. 

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상식적인 때보다도 하느님이 주신 때를 깨닫는 것입니다. 
기도와 믿음이 없이는 깨달을 수 없는 하느님의 때는 얼마나 많은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수난 예고를 통해 하느님 주신 당신의 때를 깊이 통찰하고 계심을 봅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사제들과 울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만에 되살아나야 한다."

주님은 당신 미래의 때를 정확히 예측하고 계십니다.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모두가 하느님의 때이자 동시에 나의 때입니다. 

지금이 하느님께, 또 나에게 어느 때인지 늘 물어야 되겠습니다. 
이 때에 대비하며 살아감이 유비무환의 지혜요, 
때를 받아들이는 순종에 지체함이 없을 때 누리는 자유입니다.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하느님의 때는 얼마나 많은지요. 
하여 분도성인은 '날마다 죽음을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하시며 죽음의 때에 대비하라 하십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때를 알아 대비하는 지혜와 때를 받아들이는 겸손한 믿음을 주십니다.

"주님, 눈이란 눈이 모두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은 제때에 먹을 것을 주시나이다."(시편145,15)

늘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갈 때, 주님은 매사 모두 제때에 잘 이루어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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