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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09-28 조회수762 추천수4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9월 28일 연중 제28주일
 
Jesus said to them, "Amen, I say to you,
tax collectors and prostitutes
are entering the kingdom of God before you.
When John came to you in the way of righteousness,
you did not believe him;
but tax collectors and prostitutes did.
(Mt.21,31-32)
 
제1독서 에제 18,25-28
제2독서 필리 2,1-11
복음 마태 21,28-32

 

제가 전에 본당 신부로 사목활동을 하던 때의 일 하나가 생각납니다. 교우들이 제게 자주 화초를 선물로 주셨는데, 솔직히 식복사 없이 혼자서 생활하고 또한 화초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이 화초 선물이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저를 생각해서 주시는 화초이기에 기쁘게 받으면서 ‘그래 한 번 잘 키워보자.’라는 마음을 먹었지요. 더군다나 주시는 분도 “신부님, 이것은 물 많이 주지 않아도 잘 자라는 것이니까 키우는데 어렵지 않아요.”라고 말씀하셨기에, 잘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여름날이었습니다. 저는 창가에 놓여 있는 화초의 잎이 축 늘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부지런히 잘 자라고 있었고 또 잎이 무성했던 화초였지요. 더군다나 여름 장마로 인해서 무척 습했거든요. 습한 계절이라서 물을 많이 주면 안 될 것 같아서 저는 며칠 동안 물을 전혀 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누구나 쉽게 키울 수 있다는 화초의 잎을 축 늘어지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저의 무지와 게으름이 화초를 죽였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화초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혹시 라는 생각이 들어서 서둘러 물을 듬뿍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저는 놀라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시들어서 죽은 것만 같았던 화초가 다시 싱그러운 모습을 띄는 것입니다.

만약에 죽었다고 판단해서 그냥 포기했다면 어떠했을까요?

어쩌면 우리의 사랑 실천도 이렇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사랑의 실천에 있어 쉽게 포기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늦었다는 이유로, 나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내가 하지 않아도 할 사람이 많다는 이유 등등으로 우리는 사랑의 실천을 포기하고 맙니다. 그래서 그냥 입에서만 맴도는 사랑은 아니었을까요? 즉, 말만 하는 사랑이고, 행동하는 사랑이 되지 못했던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는 복음 말씀을 통해 실천의 중요성을 이야기해주십니다. 두 아들에게 포도밭에 일하라고 말했는데, 맡아들은 처음에 싫다고 대답했다가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나갔지만 작은 아들은 가겠다고 말만 하고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했냐고 질문을 던지십니다.

이는 곧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꾸짖는 말씀이었습니다. 말만 하고 전혀 실천하지 않는 모습,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으면서 말로만 그럴싸하게 살아가는 모습이 당시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이었지요. 반면에 사람들에게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받았던 세리와 창녀들은 주님을 만난 뒤에 마음을 바꿔서 열심히 사랑을 실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회개하여 사랑을 실천하는 세리와 창녀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활짝 열려있음을 이야기하십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반성하게 됩니다. 혹시 말로만 외치는 사랑은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섣부르게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단죄했었던 것은 아닐까요? 지금 당장 자기 스스로를 뉘우치면서 주님께서 보여주신 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성실하게 사랑하며 조용히 침묵을 지켜라. 성실한 사랑은 많은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프리드리히 제나인).

 

서두르다 잃어버린 머뭇거리다 놓쳐버린 중에서(Gordon Livingston)

재앙을 겪은 사람은 “왜 나한테 이런 일이?”라는 무의미하기 짝이 없는 질문을 던집니다. 나는 그럴 때면 “왜 당신이 겪으면 안 되는데?”라고 묻고 싶은 충동이 치밀곤 합니다. 악운을 당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이런 불행이 닥쳐올 이유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인생이 공평하다거나 착한 사람에게는 신이 복을 내린다는 맹목적인 생각에서 오는 믿음일 것입니다. 그렇게 믿을만한 근거가 없는데도 말입니다.

불행을 당하면 차라리 “이왕 벌어진 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묻는 편이 낫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정답을 찾기까지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각자에게 달려 있습니다.

복권에 당첨되는 일과 같은 행운은 잘 찾아오지 않습니다. 만일 거액의 돈이 생긴다면 인생의 많은 고민들이 풀릴텐데 왜 나에게는 그런 행운이 찾아오지 않을까 하고 투덜대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만일 자녀가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런 어마어마한 불행을 겪으면 복권 당첨 따위의 행운은 아무것도 아닐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도 안 되는 행운을 바라며 쓸데없는 패배감에 젖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의 삶이 지독하게 비극적이지만 않다면 당신은 충분히 행운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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