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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준주성범 : 제2권 제9장 위로를 찾지 못할 때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01 조회수800 추천수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9장 위로를 찾지 못할 때

 

 

 

1.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면 사람의 위로를 가볍게 여기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러나 하느님의 위로나 사람의 위로도 없이 다만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기꺼이 마음의 유배를 견디고자 하는 것, 그리고 모든 일에 자기를 찾지 않고 자기가 세운 공로를 생각지 않는 것은 참으로 위대한 일이다. 은총이 오는 그때에 네가 즐거운 마음과 독실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그 얼마나 좋겠는가? 이런 좋은 시간을 누구나 다 원한다. 하느님의 은총이 지켜 주는 사람은 참으로 편하고 유쾌하게 말을 타고 여행하는 것과 같다. 전능하신 분의 손이 그를 붙들고, 가장 훌륭한 안내자가 그를 이끄시지 않은가!

 

2. 우리는 항상 우리를 편하게 해 주는 것을 가지려 하지만 스스로를 떨쳐 버리는 것은 어려워한다. 라우렌시오 성인은 자기가 모시던 사제와 함께 세상을 이겨 냈는데, 이는 세상에서 즐거움을 줄 만한 것은 다 하찮게 보고, 그리스도의 사랑을 위하여 자기가 극진히 사랑하는 하느님의 대사제 식스토와 이별하는 고통까지 인내로 견뎠기 때문이다. 그는 창조주에 대한 사랑으로 사람의 사랑을 극복하였고, 사람이 주는 위로 대신에 하느님의 선한 즐거움을 선택했다. 그러므로 너도 하느님의 사랑을 위하여 친한 벗, 필요한 벗과 이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벗이 너를 버리고 떠났다고 괴로워 마라. 우리 모두는 결국 서로 떠날 수밖에 없다.

 

3. 사람이 자기를 완전히 이기고 자기의 모든 정을 온전히 하느님께로만 향하게 되기까지는 먼저 자기와의 길고 긴, 그리고 용감한 싸움을 해야만 한다. 사람이 자신을 믿게 되면 오래지 않아 편리하게 사람의 위로만 찾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참으로 사랑하며 덕행을 부지런히 닦는 이라면, 이런 위로에 이끌리지 않고, 그 같은 감각적 즐거움을 찾지도 않으며, 도리어 그리스도를 위하여 자신을 단련하고 어려운 일을 더 좋아할 것이다.

 

4. 그러므로 너는 하느님께서 영적 위로를 주시거든 감사하게 받아라. 그렇지만 그것을 네 공로가 아니라 그분의 선물이라 생각하라. 환호하지도 말고, 지나치게 즐거워하지도 말고, 헛되이 무엇을 과분히 바라지도 마라. 다만 그 선물에 겸손에 겸손을 더하여 너의 모든 행동에 주의하고 조심해야 한다. 무릇 이러한 시간은 지나갈 것이며, 잠자던 유혹이 깨어나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위로가 끊어진다고 해도 실망하지 마라. 겸손과 인내를 다하여 하느님께서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어라. 하느님께서는 네게 더 큰 위로를 주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길을 걸어 본 사람에게는 이런 일이 새삼스럽지도 않고 이상하게 보이지도 않는다. 이름난 성인들과 옛 예언자들에게도 그 같은 변화가 있었다.

 

5. 그래서 어떤 사람이 은총을 누릴 때 말하기를 "나는 영원히 흔들리지 않으리라."(시편 30,7)라고 하였다. 그러나 은총을 잃은 후에는 자기가 당한 것을 생각하고 "당신께서 얼굴을 감추시자 저는 겁에 질렸습니다."(시편 30,8)라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러한 경우라도 그는 실망치 않고 더 정성스럽게 하느님께 "주님, 제가 당신께 부르짖고 저의 주인이신 당신께 자비를 간청하였습니다. 들으소서, 주님,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의 구원자가 되어 주소서."(시편 30,9.11) 하고 기도하였으며, 마침내 자기 기도를 들어주셔서 좋은 결과를 낸 것을 증언하며 "당신께서는 저의 비탄을 춤으로 바꾸시고 저의 자루옷 푸시어 저를 기쁨으로 띠 두르셨습니다."(시편 30,12)라고 고백하였다. 위대한 성인들도 이러한 변화를 면치 못하였는데, 하물며 우리같이 연약하고 힘없는 사람이 어떤 때는 뜨거운 마음이 있고 어떤 때는 마음이 차다 하여 절망할 필요는 없다. 성령이 오고 물러가시는 것은 당신 뜻대로 하시는 까닭이다. 욥은 이를 두고 "아침마다 그를 살피시고 순간마다 그를 시험하십니까?"(7,18)라고 하였다.

 

6. 그러니 하느님의 크신 자비와 천상의 은총에 대한 희망을 신뢰하는 것 말고 무엇을 희망하고 무엇을 신뢰할 수 있겠는가? 착한 사람들이 있고, 신심 있는 형제들이 있고, 충실한 벗들이 있고, 거룩한 서적이 있고, 아름다운 문구가 있고, 듣기 좋은 노래가 있고, 시가 있다 할지라도, 은총이 나를 떠나 나 자신이 궁핍하게 된다면, 이 모든 것들은 도움이 되지도 않고, 즐거움도 주지 못할 것이다. 이런 때는 인내를 갖고 하느님의 뜻에 자신을 온전히 맡기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다.

 

7. 은총이 물러가서 열정이 쇠하는 느낌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을 정도로 경건하고 신심 깊은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어느 성인을 막론하고 유혹을 한 번도 당하지 않을 만큼 고상한 탈혼 상태에 이를 정도의 신광(神光)을 누린 성인은 하나도 없다. 무릇 하느님을 위하여 어떠한 시련으로도 단련되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하느님의 신비를 관상할 자격이 없다. 유혹은 보통 곧 뒤따라 올 위로의 전조며, 천상의 위로는 유혹에서 오는 시련으로부터 자신을 증명한 모든 이에게 약속된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승리하는 사람들에게는 내가 하느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해 주겠다."(묵시 2,7)라고 말씀하셨다.

 

8. 하느님께서 위로를 주시는 것은 사람이 역경을 잘 참아 나가는 데 필요한 용기를 주시기 위함이다. 위로가 있은 후에 유혹이 다시 찾아오는 것은 그가 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마귀는 잠들지 않으며 내 육신은 아직 죽지 않았다. 네 좌우에는 원수가 쉬지 않고 너를 노리고 있으니, 싸울 준비를 그치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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