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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03 조회수1,049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0월 3일 연중 제26주간 금요일
 
Whoever listens to you listens to me.
Whoever rejects you rejects me.
And whoever rejects me rejects the one who sent me.
(Lk.10,16)
 
 
제1독서 욥 38,1.12-21; 40,3-5
복음 루카 10,13-16
 

가장 생명력이 강한 나무로 사람들은 ‘대나무’를 뽑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의 히로시마 원폭 피해에서 유일하게 생존했던 나무가 바로 ‘대나무’이거든요. 그래서 이 대나무는 몇 년 동안 전혀 자라지 않아 ‘죽었나?’ 싶어도 꾸준히 물을 주면 어느 날 갑자기 새순이 돋고 하루에도 수십 센티씩 쑥쑥 자랍니다. 부지런히 땅속줄기에 양분을 모두 보내서 다음 세대 양성에 힘쓰기 때문입니다.

이 대나무를 보면서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됨을 깨닫습니다. 특히 내 자신에 대해서 스스로 포기해서는 안 됩니다. 내 자신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 것 같고, 또 내 자신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도 스스로를 믿고 스스로의 미래에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언젠가 초등학교 동창들 모임에 참석했던 적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졸업한 지가 30년이 넘었으니 정말로 오랜만에 만난 것이지요. 옛날의 얼굴은 완전히 사라졌지만 그래도 반가운 얼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 공부도 잘하고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친구들은 평범한 공무원과 선생님 생활을 하고 있고, 공부도 잘하고 말썽을 하도 많이 부려서 선생님께 매일 혼나던 친구들은 유명한 배우도 있고 회사의 CEO가 되어 있기도 했습니다.

30년 전에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을까요? 하긴 친구들이 저를 보면서 이렇게 말하더군요.

“네가 신부님이 될 지는 정말 몰랐다.”

우리의 삶은 지금을 끝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지금’이라는 시간은 단지 지나가는 과정 중의 한 부분이며, 내 나머지 삶의 시작점에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포기하고 좌절에 빠져 주저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대나무가 쭉쭉 자라듯, 언젠가 내 삶의 또 다른 반전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열린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코라진, 벳사이다, 카파르나움이라는 도시를 꾸짖습니다. 이 도시들은 당시에 무척이나 번화했던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의 원리원칙에 너무 젖어 있어서 그랬을까요?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당신의 말씀과 기적으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셨음에도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기준만을 따르고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닫힌 마음을 보였고, 결국 주님으로부터 하늘에 오를 수 없다는 선고까지 듣게 됩니다.

주님의 말씀은 우리가 마음을 활짝 열고 받아들여야 할 말씀입니다. 단순히 ‘그렇구나.’라고 생각만 하고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즉,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언제든지 변화될 수 있는 나의 모습은 열린 마음으로 주님을 받아들일 때 가능하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아마 앞서 이야기했던 대나무처럼 쑥쑥 자라는 반전을 내 안에서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실패에 대한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 두려움은 당신 인생의 모든 분야에서 꿈을 이루려는 당신의 능력을 방해한다(스티븐 스코트).


 

말 한마디의 가격(‘사랑밭 새벽편지’ 중에서)

어제 인터넷에 아래와 같은 내용의 글을 하나 보게 되었습니다.

프랑스의 휴양도시 니스의 한 카페에는 이런 가격표가 붙어 있다고 합니다.

⊙ Coffee! 7 Euro.
⊙ Coffee Please! 4.25 Euro.
⊙ Hello Coffee Please! 1.4 Euro.

우리말로 바꾸면.

⊙ 커피 - 라고 반말하는 손님은 ‘1만 원’을.
⊙ 커피주세요 - 라고 주문하는 손님은 ‘6천 원’을.
⊙ 안녕하세요, 커피 한 잔 주세요 ? 라고 예의 바르고 상냥하게 주문하는 손님은 ‘2천 원’을 지불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기발한 가격표를 만든 카페 주인은 손님들이 종업원에게 함부로 말하는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냈다고 합니다. 다시 말해.. 그 카페에서는 말 한 마디를 예쁘게 하는 것으로 똑같은 커피를 5분의 1가격으로 마실 수 있는 셈입니다.

내가 하고 있는 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이 곧 나의 인격을 표시하는 것과 같은데, 나의 인격을 깎아먹는 말과 행동을 할 때가 얼마나 많았을까요? 나를 높이는 길은 남을 먼저 높였을 때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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