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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삶의 이정표 - 2014.10.5 연중 제27주일(순례47일차-군인주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05 조회수954 추천수9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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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준님의 사진.




2014.10.5 연중 제27주일(순례47일차-군인주일), 이사5,1-7 필리피4,6-9 마태21,33-43

                                                         
삶의 이정표 


오늘은 순례47일차입니다. 
이제 순례는 끝났지만 귀국하는 날까지 순례 차원에서 쓸 것입니다.

어제 순례46일차, 제 영명축일날은 모처럼 여유있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오전에는 우리집민박 가까이 있는 산티아고 재래시장을, 
오후에는 산티아고 대성당 주변의 기념품 가게를 이냐시오 형제와 순례했습니다. 

나라와 말, 인종만 다르지 사는 모습은 똑같았습니다. 
활기에 넘친 열기로 가득한 재래시장을 돌면서 사람들의 온갖 표정을 관찰했습니다. 
모두가 본업에 충실한 평범한 삶이었고, 온통 먹을 것으로 가득한 시장이었습니다. 

삼 '사는 것은 먹는 것이다'라는 진리를 깨닫습니다. 
정말 먹는 재미가 없으면 삶은 참 팍팍할 것입니다. 

이어 저녁에는 '우리집민박'에서 사장과 함께 머물던 두 형제(김종만, 박해덕요한)와 이냐시오 도반이 
삼겹살 파티에 케익을 마련해 제 영명축일을 축하해 줬습니다. 
그대로 축제분위기 였습니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거룩한 곳이 '이상'이라면 
먹을 것 가득하고 사람 북적이는 시장은 생생한 '현실'입니다. 
성속일여, 성과 속이, 이상과 현실이 하나의 보완관계에 있음을, 
깊이 들여다보면 산티아고 대성당이나 재래시장이나 모두 거룩한 땅, 성지임을 깨닫습니다. 

순례초기 프랑스 몽쉘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의 인상적인 모습도 떠오릅니다. 
섬 전체가 수도원이었고 사람 북적이는 기념품 가게와 음식점을 지나 위로 올라갔을 때 
성당에서는 거룩한 미사가 거행되고 있었습니다.

"이상을 떠받치고 있는 현실 같습니다."
이상과 현실이 하나의 보완관계에 있음을 지적한 말에 김승월 형제도 공감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성지를 순례하듯이 생업에 충실한 거룩하고 순수한 모습들을 충분히 관찰한 재래시장 순례였습니다. 
오후에는 기념품 가게에 가서 소량의 부족한 선물을 구입했습니다.
전 번 언급했던, 조개무늬 형상에 화살표가 선명한 인조석 이정표입니다. 

산티아고 순례시 이정표는 생명과 같습니다. 
이정표를 놓쳐 길을 잃어버리면 졸지에 미아가 되어 버려 방황입니다. 
이정표 방향 따라 목적지를 향해 갈 때 안정과 평화요, 
이정표를 잃어버렸을 때는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산티아고 순례는 그대로 평생 하느님을 찾아가는 삶의 순례여정을 상징합니다. 
그러니 삶의 이정표를 상징하는 인조석 이정표보다 더 좋은 선물을 찾을 수 없었고 
제 취지에 공감한 이냐시오 형제도 여러개의 인조석 이정표를 샀습니다. 

하여 오늘 강론의 주제는 '삶의 이정표'입니다. 

재래시장에서 생업의 일에 몰두하던 사람들, 
과연 삶의 이정표는 망각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리지 않기위해 '기도하고 일하라'는 베네딕도 수도회의 모토입니다. 
일만 있고 기도가 없으면, 먹는 일만 있고 하느님 찾는 일이 없으면 곧장 삶의 이정표를 잃어버립니다.

삶의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의 궁극 목적지는 하느님입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삶의 이정표를, 하느님을 잊고 지내는 지요. 
하여 삶이 무의미하고 공허한 것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았는데, 걸어가거나 달려갔는데 하느님 방향없이, 목표없이 그렇게 살았다면 
그 인생 얼마나 황당하겠는지요. 

삶의 이정표를 매일 매순간 확인하기 위해 이냐시오 형제와 저는 
순례중 매일 미사와 시간경을 바쳤습니다. 
삶의 이정표라는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복음의 포도원 소작인들의 만행은 
삶의 이정표에 이어 포도원 주인이 상징하는 하느님을 잊은 업보입니다. 
삶의 이정표를 잊어버렸을 때 인간 모두의 가능성입니다. 
이 삶의 이정표가 인간 탐욕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기제이기 때문입니다. 

1독서 이사야서 내용도 같은 맥락입니다. 
내 친구의 탄식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탄식을 듣습니다.

"내 포도밭을 위하여 내가 무엇을 더 해야 했더란 말이냐? 
내가 해주지 않은 것이 무엇이란 말이냐? 
나는 좋은 포도가 맺기를 바랐는데 어찌하여 들포도를 맺었느냐? 
그분께서는 공정을 바라셨는데 피흘림이 웬 말이냐? 
정의를 바라셨는데 울부짖음이 웬 말이냐?"

사필귀정, 삶의 이정표를 잊은 결과입니다. 
마치 우리를 두고 하는 말씀 같습니다. 
과연 들포도가 아닌 '공정과 정의'의 좋은 포도를 맺은 순례여정의 삶인지 묻습니다. 

주님은 바오로 사도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적절한 삶의 이정표가 되는 말씀을 제시하십니다.

"어떤 경우에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며 여러분의 소원을 하느님께 아뢰십시오. 
또 참된 것과 고귀한 것과 의로운 것과 정결한 것과 사랑스러운 것과 영예로운 것은 무엇이든지, 
또 덕이 되는 것과 칭송받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마음에 간직하십시오. 
그러면 평화의 하느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계실 것입니다."

이렇게 살아갈 때 주님 친히 삶의 이정표가 되어 주십니다. 

사실 주님의 이 거룩한 매일미사보다 더 좋은 삶의 이정표도 없습니다. 

아멘.


김명준님의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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