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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가장 큰 기적은...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06 조회수1,139 추천수1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27주간 화요일


< 마르타는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셔 들었다.
 
마리아는 좋은 몫을 선택하였다.>


복음: 루카 10,38-42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


La Hire, Laurent de 작, (1650), 캔버스 유화, 라임 성 데니스 박물관


     < 가장 큰 기적은... >

      

우리나라는 선교사 없이 평신도 학자들이 서학을 연구하다 그리스도가 참 진리이시고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아 신앙이 뿌리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교회는 기본적으로 성체성사의 힘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박해 100년 동안 사제가 없었던 기간이 50년이나 됩니다. 그런데도 어떻게 그 모진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켜나갈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양반들이 천민이 되고 부자들이 밥을 굶으며 혼인을 하고도 동정을 지키고 뼈가 부러지고 살이 썩어가면서도 신앙을 지키고 자기 옆에서 자신의 아이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도 신앙을 지킬 수 있었을까요?

교회에서 공경해야 할 대상으로 정해지면 가경자라는 명칭이 붙습니다. 그리고 기적이 발생하면 복자가 되고 그러고도 모든 과학자들이 인정할 수 있는 기적이 계속 발생하면 성인품에 올립니다. 그러나 가경자가 되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주 작은 단점이라도 보이면 결코 교회가 공식적으로 가경자의 지위를 주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만 명이 넘는 순교자들이 있지만 103위만 성인이 되셨고 새로이 복자 124위가 탄생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에게 성인이나 복자가 될 만한 기적이 있었을까요? 그 기적은 모든 이가 인정해야 할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예를 들면 루르드에서 한 달에 3~4건의 기적이 일어나지만 실제로 교회에서 공식적으로 기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몇 개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그 이전에 엑스레이를 찍었을 때 한 다리 길이가 10센티 이상 짧았는데 루르드 물에 담그고 났더니 다리가 길어져 더 이상 절뚝거리지 않게 되는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의사들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들이어야 교회도 기적이라고 인정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성인들이나 복자들은 그럴만한 공식적인 기적을 지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적이 없어도 복자품이나 성인품에 오를 수 있는 경우는 교황의 특별한 허락이 있어야만 합니다. 103위 시복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교황님은 선교사 없이 모진 박해 속에서도 중국이나 몽고, 일본의 경우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더욱 신앙이 증가했던 것이 곧 기적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성인들이 공식적인 기적 없이도 복자와 성인품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가장 큰 기적은 물 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변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사람이 변하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자신이 교회를 박해하는 인물이었다가 지금은 그 교회의 신앙을 전하고 있는 사람으로 바뀌어서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어떤 큰 기적을 일으켜서가 아니라 사람이 바뀌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찬양하고 믿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기적이고 하느님을 증거하는 방법입니다. 기적을 하고 예언을 하고 감동적인 말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람이 변화되지 않았다면 그런 뜨거움은 금방 식어버려 사그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참다운 기적은 나의 변화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아들을 죽여 살라 바치라고 명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아침 일찍 일어나 아들을 죽이는데 쓸 칼을 갑니다. 그리고 모리아 산에 올라가 아들을 가차 없이 죽이려고 합니다. 아들을 사랑하지 않아서였을까요? 아닙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신이 죽는 편이 차라리 아들을 아프게 하는 것보다 더 낫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아들이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며 또 세상이 미친 인간이라고 욕하는 것을 참아 견디며 살아야 하는 아브라함의 심정은 차라리 지금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대로 했고 그렇게 한 모습이 보는 이들로 하여금 믿음을 갖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믿음의 조상이 되어 많은 이들에게 복을 주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만난 증거가 그런 삶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우리 힘으로 변화될 수 있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사람의 한계를 뛰어넘어 변화된 삶을 살게 해 주실 힘을 주십니다. 오직 그분만이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변화되었다면 우리는 더 이상 세상 사람들이 사는 것처럼 살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증인들이 많이 있는 교회가 건강하고 강한 교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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