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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10 조회수900 추천수9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27주간 토요일


<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는 행복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 >


복음: 루카 11,27-28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조토(Giotto) 작, (1302-1305), 프레스코, 200x185, 파도바 아레나 경당


     <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 >

 

 제가 일반대학 다닐 때 쯤 스카폴라를 착용하는 것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갈색이었으니 가르멜산의 성모 스카폴라였던 것 같습니다. 스카폴라는 많은 종류가 있고 대부분 교회에서 인준을 받는 것입니다. 각 수도회에서 수도자들이 입는 작업복이 있었는데, 그 앞뒤를 가리는 작업복이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조그맣게 상징적으로 변한 것입니다.

제가 착용했던 스카폴라는 갈멜의 것이었는데, 누구든 지옥에 가지 않고 연옥에 가서도 빨리 해방될 수 있다는 계시를 성 시몬 스톡크라는 분이 1251년에 받았다고 합니다.

이것만 착용하면 지옥에 가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을 착용하고 다니는 것이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잠을 잘 때 꼬이기도 하고 투명비닐 안에 들어있었기 때문에 겨울엔 차가워서 싫었습니다. 그래도 지옥에 안 간다니 열심히 하고 다녔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어느 날부터는 착용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것을 착용하고 다닌다고 삶이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또 삶이 그렇지 않은데 그것만 차고 다닌다고 지옥 갈 사람이 천당 갈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차고 나쁜 일을 많이 하고 다니는데도 그것 하나 때문에 구원을 받게 된다는 것을 믿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을 착용하고 다니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구원은 우리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입었기 때문입니다. 그 스카폴라는 그리스도를 입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되지 못하는 근본원인은 죄가 아닙니다. 죄 때문에 오는 부끄러움때문입니다. 이 부끄러움이 두려움이 되고 그 두려움이 하느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만듭니다. 하느님은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서 쫓아낸 것이 아니고 그 죄 때문에 두려워 숨는 것을 보고 죄가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하느님이 선악과 하나 따먹었다고 천국에서 쫓아내는 그런 무자비한 분은 아니십니다.

인간은 자신이 죄를 짓고 그 부끄러움을 자신의 힘으로 가려보려 하였습니다. 이것이 무화과 나뭇잎입니다. 예수님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 바로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며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위선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그 부끄러움이 나뭇잎이 아닌 하느님의 어린양의 가죽으로만 덮여질 수 있음을 가르치시기 위해 그 상징적 행위로 첫 조상들에게 동물의 가죽으로 된 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것은 미래 구원을 위한 예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죽음을 면하는 방법은 하느님의 어린양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고 그 고기를 집 안에서 먹는 것이었습니다. 그 피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그 집의 죄를 위해 죗값을 치렀다는 상징적인 표현이요 부끄러움을 가려주는 옷입니다. 그래서 누구든 그리스도의 피로 자기 두루마리를 빨아 깨끗하게 되지 않은 사람은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기를 먹었던 행위는 그 집 안에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이 있으니 감히 죽음의 천사가 그 집을 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파스카의 신비입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씻고 그분의 몸을 우리 안에 영합니다. 그러면 어떤 죽음의 천사도 우리를 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분을 믿는 이는 누구든 죽음을 보지 않으리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매 미사 때마다 우리 죄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덮여지는 것을 체험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행위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임으로써 구원을 얻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가톨릭교회 내에서도 행위가 얼마나 많이 강조되고 있는지 모릅니다. 예를 들면 소공동체는 그 본질적인 목적, 즉 말씀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나 뵈옵고 그 체험을 나누는 친교의 정신은 잊혀지고, 본당에서 행사 때 동원되어 밥과 청소를 하는 등의 행동 위주의 모임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실정입니다. 레지오도 기도 한 것을 활동으로 보고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분과의 친교와 활동이 구분되고 있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마르타보다는 마리아를 지향하는 신자들이 되어야합니다.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만을 들었고 그리스도께서는 참 좋은 몫을 택했고 그것을 빼앗기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일 잘 하는 식모가 아니라 순결한 신부를 원하십니다.

오늘 바오로는 그리스도인들을 율법이 아닌 모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이들이라고 정의하며, 그들은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입어죄의 부끄러움이 덮여진 이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개신교에서 너무 믿음을 강조한다고 우리가 행위만 너무 강조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내가 하는 행위는 그리스도께 영향을 받게 되어있습니다. 억지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이 되기 위해서는 불을 붙이면 그만입니다. 그 도움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위 사람들이 받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입은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성령으로 빛이 된 사람들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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