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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신부의 합당한 옷은 신랑을 전부로 여기는 마음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11 조회수1,065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28주일


<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복음: 마태오 22,1-14





십자가의 길


ANDREA DA FIRENZE 작, (1365-1368)
 


     < 신부의 합당한 옷은 신랑을 전부로 여기는 마음 >

 

어느 날 사탄이 열개의 병을 들고 한 청년을 찾아와서 여기 아홉 개의 병에는 꿀물이 들어 있고 한 개의 병에는 독약이 들어있는데 꿀이 들어있는 병을 찾아 마시면 엄청난 액수의 돈을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처음엔 돈이 아무리 좋아해도 생명과 바꿀 수 없다고 거절했습니다. 그러나 계속 유혹하는 사탄의 간청에 청년은 열 병중에 딱 한 병인데...’하며 떨리는 손으로 병 하나를 골라 마셨습니다.

다행히 죽지 않고 살아난 청년은 돈을 받으며 다시는 자기를 찾아오지 말라고 사탄에게 말했습니다. 청년이 방탕하게 살다가 돈을 다 탕진했을 무렵, 사탄이 또 나타났습니다. 그 청년은 사실 마음으로 사탄을 부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사탄은 이번에는 아홉 개중 하나를 마시면 돈을 두 배로 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청년은 돈이 필요했기에 이번에도 모험을 했고 다행히 이번에도 꿀물을 마시고 두 배의 돈을 받았습니다. 청년은 그렇게 쉽게 번 돈으로 인생을 즐겼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알콜, 마약중독 등으로 삶이 허물어져가고 있었습니다.

그는 계속 사탄을 불러댔습니다. 계속 그 위험한 선택을 했고 하면 할수록 두려움마저도 사라져가고 있었습니다. 돈이라면 영혼까지 팔아도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 이젠 돈 벼락이냐, 죽음이냐하는 마지막 인생의 승부를 거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미 노년에 이른 그는 남은 두 병 중 한 병을 식은땀을 흘리며 꿀꺽 삼켰습니다.

! 나는 이겼어. 끝까지 살아나고야 말았어! 이제 어서 돈을 내놔라.”

승리에 도취되어 어쩔 줄 모르는 노인에게 사탄은 마지막 병을 스스로 마시면서 후후, 처음부터 독약이 든 병은 없었지. 그러나 너는 이미 돈이라는 독약에 죽어가고 있었던 거야! 너는 청춘을 돈이란 종이에 얽매어 노예로 살다가 그것에 묶여 영원한 것을 잃어 버렸다. 자 이제까지 받은 돈의 대가를 지금부터 내가 있는 곳으로 와서 고통과 함께 지불해야 할 것이다. 하하하~~~”라고 하며 돈을 부여잡고 죽어가는 그를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속으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하나에 집착하면 다른 것은 잃고 맙니다. 이 주인을 섬겼다면 저 주인은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자신의 교만, 육체적 욕망, 세상의 유혹들로부터 자유롭게 해 주시기 위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분을 받아들이면 마치 자캐오가 자신의 재산 절반을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한 것처럼 세상 것은 쓰레기가 돼 버립니다. 만약 세상 것이 소중하여 그것을 잃었을 때 내가 흔들린다면 아직은 내 안에서 그리스도가 전부가 되신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바로 그분만이 나의 구원자이시고 나의 사랑이시고 나의 신랑이시며 나의 전부가 되심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나의 전부라면 더 이상 필요한 것은 없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시험하시며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것을 가차 없이 바칠 수 있을 때에야 믿음이 증명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믿음이 없는 이들은 그리스도와의 혼인잔치에 참석하지 못하여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비유말씀입니다. , 임금으로부터 초대받은 많은 이들은 그 귀중한 초대를 거부합니다. 그 거부하는 이유는 세상 것을 더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세상 것을 버리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믿음이 없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초대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 자체가 곧 죽음으로 심판받는 것이 됩니다. 관계는 같은 수준의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그 초대에 응답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하느님과의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응답하여 왔어도 혼인의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 사람이 더 중요한데 그 이유는 앞에 나오는 21장을 설명해주는 상징적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221절부터 14절까지인데, 저는 이것이 21장의 결론으로 서로 다른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봅니다.

21장의 첫 번째 내용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경은 요한 계시록에서 하느님의 어린양과 천상예루살렘이 혼인하는 것으로 끝을 맺습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 예루살렘 안으로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것은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혼인을 상징합니다. 처음부터 예수님은 혼인 이야기를 하시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때 예루살렘은 겉으로는예수님을 잘 맞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성전 안에 들어갔더니 상황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 안에는 하느님을 섬기는 마음이 아니라 세상을 섬기는 마음만이 가득했습니다. 그래서 이어지는 내용이 성전정화인 것입니다. 강도들의 소굴로 변해버린 성전, 이것이 바로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습이었습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세상을 섬기는 이들이었습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믿지 않는 이들이었던 것입니다.

곧 이어 예수님은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며 그들의 불신앙의 문제점을 밝히십니다. 그들은 아담과 하와가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무화과 나뭇잎으로 가리려 했던 것처럼 믿음의 열매가 아닌 자신들의 행위로 인정받으려던 이들이었습니다. 바로 이들이 의복을 갖추지 않은 이들입니다. 의복은 하느님의 어린 양의 피로 빨아 깨끗해진 것이라야 합니다. 천상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어린양의 피로 깨끗해진 이들만 들어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잎만 무성한 무화과를 저주하여 영원히 믿음의 열매가 맺지 못하게 하셨던 것처럼, 믿음이 아닌 자신들의 공로로 옷을 만들어 입으려 했던 유다인들의 불신앙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그 다음 이어지는 내용은 두 아들의 비유입니다. 맏이는 포도밭에 일하러 가지 않겠다고 아버지의 명을 거부했지만 나중에는 마음을 돌려 일을 하러 갔고, 작은 아들은 그 반대였습니다. 예수님은 이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서 당신에 앞서 파견된 세례자 요한을 믿었던 세리와 창녀들이 그를 믿지 않아 변화되지 않는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보다 먼저 하늘나라로 들어가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결국 지금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파견된 세례자 요한은 무엇일까요? 예수님은 당신을 증거하라고 열두 사도로 이루어진 교회를 파견하셨습니다. 결국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그분이 파견하신 교회를 믿는 행위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는 못된 소작인의 비유를 들어주시며 세상 것에 집착하는 이들 안에서 당신이 어떻게 또 한 번 돌아가시는지 알려주십니다. 포도원 소작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느라고 주인의 아드님까지 죽이게 됩니다. 주인의 아드님은 포도원에 오십니다. 그러나 이미 세상 것에 집착하여 믿음을 저버린 이들 안에서 또 돌아가십니다. 그리스도는 우리 마음에도 말씀과 성체로 들어오시지만 우리가 세상 것에 얽매여 있을 때면 또 우리 안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안에서 죽으면 구원도 함께 죽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에 이어서 나오는 것이 오늘 혼인잔치의 비유인 것입니다. 구원은 그리스도와의 혼인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혼인은 믿음으로 그분의 초대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것에 집착하는 이들은 믿음이 없음이 증명되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설사 그 초대에 응했더라도 합당한 믿음의 옷을 입지 않고 겉으로 신앙생활을 하지만 삶으로는 세상 것에 집착한다면 마지막 날에 역시 쫓겨나게 되리란 것입니다.

   

흰 옷은 그분에 합당한 사람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 합당한 변화란 세상 것을 끊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성전이 세상 것으로 더럽혀져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외에는 세상 것이 나에게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신부에게는 신랑이 전부가 되어야 합니다. 애정이나 재산, 명예나 자녀 등으로 괴로워 못 견딘다면 그리스도는 그 안에서 어떤 역할도 하지 못하고 또 돌아가시고 맙니다. 이 세상 것 모든 것을 끊을 수 있다면 이젠 혼인잔치에 합당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어렸을 때 저녁때가 되면 동네에 항상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뛰어놀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 각자의 집에서부터 엄마들이 밥 먹어라~~~”라고 부르는 소리들이 들려옵니다. 그러나 구슬치기, 딱지치기, 전쟁놀이에 열중하다보면 엄마의 말이 잘 들리지 않습니다. 나중에 엄마의 큰 소리가 나야 정신을 차리기 시작합니다. 그때는 정말 엄마의 따듯한 사랑이 담긴 저녁식사보다도 나중에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의미 없는 구슬이나 딱지에 왜 그리 집착했는지 모릅니다.

지금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쓰레기와 같은 세상 것들에 집중하며 그분의 초대를 거부합니다. 혹은 성체를 모시는 감사보다도 봉헌하는 헌금을 더 아까워하기도 합니다. 믿음이란 바로 그리스도를 위해 이 세상 것들이 가치를 잃어버리게 될 때 증명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을 바치며 믿음을 증거해 복의 근원이 된 것처럼, 우리 또한 스쳐지나가는 이 세상 것들을 휴지조각처럼 여길 수 있는 마음을 청합시다.

   

이번 일주일간은 사제 연수가 있어서 복음묵상이 없겠습니다. 다녀와서 뵙겠습니다. 행복한 한 주 되십시오 ~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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