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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12 조회수935 추천수11 반대(0) 신고



연중 제28주일




<아무나 만나는 대로 잔치에 불러오너라.>
+ 마태오 22,1-14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감곡매괴성모성당 성체현양대회 100주년 감사미사를 성대하게 거행할 수 있도록 기도와 사랑으로 함께 해 주신 모든 분들께 마음을 다해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아울러 우리의 수고와 땀을 주님께서 헤아려 주시고 풍성히 갚아주시리라 확신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가 성체 안에 하나가 되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귀한 연장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 날의 감동이 매순간 살아나기를 기도하며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를 늘 기억하고 삶의 쇄신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에 사랑을 더하여 내년을 준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착한 사람, 악한사람 할 것 없이 모두를 사랑하시고 똑같이 햇빛을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십니다. 그리고 모두를 당신 구원의 잔치에 초대하십니다. 그러나 모두가 구원을 받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합당한 준비로 초대에 응한 사람이라야 잔치의 기쁨을 나누게 됩니다. 이 시간, 부르심과 응답에 관해 묵상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로움이 함께하시길 바랍니다.

 

어렸을 때‘도깨비 방망이’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금 나와라 와라, 뚝딱! 은 나와라, 와라 뚝딱!’ 하고 방망이를 두드리면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 있다는 얘기였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얻을 수 있는 방망이지만 두드리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전래동화‘요술감투’이야기도 있습니다. 그 감투를 쓰면 다른 사람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그것 역시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재능이 많아도 끄집어내어 쓰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넣어야 소용이 있게 됩니다.’‘구술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좋은 마음이 있어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야고보 사도는 “믿음에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그런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2,17) 라고 했습니다.

 

오늘 복음은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도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입니다. 모두가 구원에로 초대 되었지만 결코 아무나 구원을 얻을 수는 없습니다. 초대에 합당히 응하는 사람이라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매번 구원의 잔치가 베풀어지고 거기에 초대를 받았지만 이런저런 핑계거리가 기회를 놓치게 합니다.

 

오늘 복음은 하느님 나라를 혼인잔치의 비유를 통해 말씀하십니다. 왕이 종들을 보내 초대 받은 사람들을 잔치에 불러오게 했습니다. 소와 살진 짐승도 잡아 모든 것이 넉넉하게 준비되었습니다. 그러나 초청 받은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초청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밭으로 가고 어떤 사람은 장사하러 가고 또 어떤 사람은 종들을 때려주며 귀찮게 하지 말라는 마음을 표현하기까지 했습니다(마태22,5). 다시 말하면, 자기 살기에 바빠서 남의 집 잔치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불러준 사람의 호의를 무시하고 자기의 일상에 바빠 잔칫상을 외면했습니다.

 

이제 처음에 초대된 사람의 빈자리를 다른 사람이 채우게 됩니다. 그런데 나중에 초대 받은 사람 중에도 예복을 입지 않아 꾸중을 듣게 됩니다. “예복도 갖추지 않고 어떻게 여기 들어왔나?”(마태22,12). 결국은 그도 바깥으로 쫓겨났습니다.

 

여기서 예복이란 깨끗한 마음의 준비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주님은 잃었던 아들에게 새 옷을 입혀주심으로 방탕으로부터 벗어난 새 삶을 축복해 주십니다(루가15,22). 바오로 사도는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에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입었습니다”(갈라3,27).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씀을 통해 새 삶을 요구하고 계시는데 옷의 표현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아무도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깁지 않는다. 그렇게 하면 헌 옷에 기워 댄 새 헝겊에 그 옷이 땅겨 더 심하게 찢어진다” (마르코2,21).

 

묵시록7장 11절 이하를 보면 옥좌에 앉은 사람들 이야기가 나오는 데 원로 가운데 하나가 “희고 긴 겉옷을 입은 저 사람들은 누구이며 어디에서 왔느냐?”하고 묻자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입니다. 저들은 어린양의 피로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빨아 희게 만들었습니다. …..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22장14절에서도 “자기들의 긴 겉옷을 깨끗이 빠는 이들은 행복하다. 그들은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권한을 받고, 성문을 지나 그 도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복은 거룩한 마음을 지니는 것입니다. “나는 주 너의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11,44). “주님의 이름은 거룩하고 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루가1,50).

 

결국 초대에 응한다는 것은 그만한 마음의 준비가 따라야 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면 또 그만한 자비를 체험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일상 안에서 하느님의 부름에 응답하십시오.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했는데 이 핑계, 저 핑계 대지 말고 마음을 하느님께로 향하십시오. “마음은 간절하나 몸이 말을 듣지 않는구나! ”(마르14,38).하신 예수님의 한탄이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합니다. 마음으로는 영적으로 풍요로워지고 주님을 체험했으면 좋겠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위한 수고와 땀은 외면하는 게 현실입니다.

 

영적으로 풍요로워질 수 있는 미사참례, 성체조배, 기도와 찬미의 밤, 레지오 마리애, 성령기도 모임, 빈첸시오, 신심단체 모임등의 잔칫상이 차려 있어도 참석하지 않으면 그만한 은총을 체험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번 성체현양대회에도 멀리 해외에서도 부산, 대구, 진주, 서울, 인천, 춘천 등 곳곳에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본 바닥에 계신 우리 본당 신자 중에도 참석하지 못하신 분이 계십니다. 정말 은총은 풍부한데 담을 그릇이 없는 것입니다. 잔치를 준비 하고 초대하지만 역시 밭으로 가고, 장사하러 가고, 주일이나 지키면 되지 뭐 그런 것이 필요하냐? 고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야말로 ‘등잔 밑이 어둡다’는 표현이 맞습니다. 은총의 순간을 은총으로 느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성모순례지성당의 신자로서 성모님 신심이 얼마나 깊은지 점검하고, 성체대회를 거행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신앙의 후예로써 성체께 대한 올바른 신심이 확고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주일미사, 평일미사참례, 성체조배를 하는 사람이 다른 어느 본당보다 많아지기를, 묵주기도를 더 많이 봉헌하는 신자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성대하고 장엄하게 성체거동을 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더 성숙한 모습으로 다음을 준비해야 하겠습니다.

 

사실 믿음은 무엇을 우선순위에 놓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은총을 입기를 희망하면서도 신앙모임보다는 친목단체 모임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그것을 챙깁니다. 세상의 바쁜 일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앞세우면 주님은 그만큼 뒷전으로 밀려나게 됩니다. 내 것을 먼저 챙기고 그 다음에 주님 것을 챙기려 한다면 도깨비 방망이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두드리지 않는, 요술감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쓸 줄 모르는, 재능이 있으면서도 쓸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마음은 있는데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이 있다면 그 장애물을 거두어 주십사 기도해야 합니다. 참으로 신앙생활이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사실 부르심을 받은 이들은 많지만 선택된 이들은 적다”(마태22,14).

 

이 말씀은 구원의 문은 모든 이에게 열려 있지만 분명코 모두가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추수 때에 알곡은 곳간에 쌓여지고, 쭉정이는 불에 태워지듯 마지막 날에 스스로가 선택한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누가 구원의 문에서 쫓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그 잔치에 들어가지 않아서 그 풍요로운 혜택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초대에 응하는 단호한 결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행동으로 답하면 “나의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실 것입니다(필리4,19).

 

또한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 내시고 당신 백성의 수치를 온 세상에서 치워 주시리라”(이사25,8).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며 일상 안에서의 부르심에 응답할 기회를 결코 놓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분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다. 우리는 이분께 희망을 걸었고 이분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이분이야말로 우리가 희망을 걸었던 주님이시다. 이분의 구원으로 우리 기뻐하고 즐거워하자. 주님의 손이 이 산위에 머무르신다."(이사25,9-10).고백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 믿음을 위하여 열심히 싸워 영원한 생명을 차지하십시오. 그대는 많은 증인 앞에서 훌륭하게 신앙을 고백하였을 때에 영원한 생명으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1디모 6,12). 성 베르나르도의 고백에 함께 하고 싶습니다.“내 행복은 오직 주님 곁에 있는 것, 내 주 하느님께 희망을 두는 일 뿐입니다.”

 

오늘 이렇게 함께 하시는 여러분은 선택받은 분이십니다. 선택받음을 기뻐하고, 이 상태를 잘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주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가운데 구원의 완성을 이루시길 기도합니다. 사랑합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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