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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라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17 조회수770 추천수8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0.17 금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110)기념일, 
에페1,11-14 루카12,1-7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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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요셉수도원 십자로 중앙, 돌판에 새겨진 글귀입니다. 
수도형제들은 물론 수도원을 찾는 모든 분들이 공감하는, 
위로와 힘을 얻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정서가 두려움입니다. 
두려워하여 사람입니다. 
두려움에 포위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병, 사고, 죽음, 실직, 미래등 끝이 없습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진정 두려운 것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마음을 닫게하며 사랑을 위축시킵니다. 
그러나 주님은 '두려워하지 마라'고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잊어도 주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여 하느님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 하라는 것입니다.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의 두려움입니다.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바로 이 말씀이 세상 두려움에 대한 유일한 답입니다. 
하느님을 진정 두려워 경외할 때 세상 두려움에서 해방이지만,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경외심을 잊을 때 
물밀듯 밀려오는 세상 두려움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바로 오늘 화답송이, 화답송 시편이 답을 줍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함은 소극적입니다.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대한 최고의 처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고백의 기도 하나뿐입니다. 
하여 평생 찬미와 감사 시편 성무일도를 바치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바오로 사도 또한 우리 모두 '찬양의 사람'이 되어 살 것을 강력히 권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일거양득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최고의 응답이자 두려움에 대한 최고의 처방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우리를 신망애 향주삼덕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아멘.


2014.10.17 금요일,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 주교 순교자(+110)기념일, 에페1,11-14 루카12,1-7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요셉수도원 십자로 중앙, 돌판에 새겨진 글귀입니다. 
수도형제들은 물론 수도원을 찾는 모든 분들이 공감하는, 위로와 힘을 얻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인간의 원초적인 정서가 두려움입니다. 
두려워하여 사람입니다. 
두려움에 포위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병, 사고, 죽음, 실직, 미래등 끝이 없습니다.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진정 두려운 것은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우리를 긴장하게 하고 마음을 닫게하며 사랑을 위축시킵니다. 
그러나 주님은 '두려워하지 마라'고 우리를 격려하십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우리보다 우리를 더 잘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잊어도 주님은 우리를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하여 하느님을 잊지 않고 늘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두려워 하라는 것입니다. 
공포의 두려움이 아니라 경외의 두려움입니다.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바로 이 말씀이 세상 두려움에 대한 유일한 답입니다. 
하느님을 진정 두려워 경외할 때 세상 두려움에서 해방이지만, 
하느님께 대한 두려움을, 경외심을 잊을 때 물밀듯 밀려오는 세상 두려움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의인들아, 주님 안에서 환호하여라. 올곧은 이에게는 찬양이 어울린다."

바로 오늘 화답송이, 화답송 시편이 답을 줍니다. 

하느님을 두려워함은 소극적입니다.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하느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두려움에 대한 최고의 처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느님께 끊임없이 바치는 찬미와 감사고백의 기도 하나뿐입니다. 
하여 평생 찬미와 감사 시편 성무일도를 바치는 우리 수도자들입니다. 

바오로 사도 또한 우리 모두 '찬양의 사람'이 되어 살 것을 강력히 권하십니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는 이미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가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사람이 되게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소유로서 속량될 때까지, 
이 성령께서 우리가 받을 상속의 보증이 되시어,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게 하십니다."

일거양득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최고의 응답이자 두려움에 대한 최고의 처방이 
바로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당신의 영광을 찬양하는 우리를 신망애 향주삼덕으로 충만케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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