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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스승은 피로 씻어주는 이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18 조회수910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


<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복음: 마태오 28.16-20





예수님 십자가의 길


MEMLING, Hans 작, (1470-71)


     < 스승은 피로 씻어주는 이 >

   

지금은 고인이 된 로빈 윌리암스와 멧 데이먼이 어렸을 대 주연한 영화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의 줄거리입니다.

고아인 (멧 데이먼)’은 양부모에게 길러졌지만 양아버지에게 어렸을 때부터 학대만 받고 컸습니다. 지금은 MIT공대에서 청소부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반항기 어린 윌은 지나가다가 어렸을 때 유치원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한 친구가 보이니 달려가 마구 두들겨 팹니다. 그렇게 자주 경찰서를 드나드는 나쁜 짓만 골라하는 골칫거리입니다.

그러나 공부를 한 적은 없지만 수학엔 천재입니다. MIT공대에 노벨수학상을 수상한 교수가 복도에 써 놓은 문제를 단숨에 풀어버립니다. 누가 그 문제를 풀었는지 찾아내기 위해 그 교수는 더 어려운 문제를 복도 칠판에 써 놓았고 청수부 윌이 그 문제를 풀어내는 것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수학을 가르쳐보려고 노력합니다. 그렇지만 윌의 거친 성격 때문에 장애가 되어 여러 유명한 상담교수들을 청해 윌의 성격을 치료하려 노력하지만 윌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아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생각해 낸 사람이 바로 시골 대학에서 심리치료교수로 있는 (로빈 윌리암스)’이었습니다.

역시 숀을 본 윌은 2년 전에 사별한 숀의 아내를 들먹이며 화를 돋웁니다. 숀도 자신의 죽은 아내를 무시하는 윌의 멱살을 부여잡습니다. 그러나 숀은 완벽한 천재로만 보이려 하고 남에게 약점을 잡히려 하지 않는 윌의 마음을 열어주기 위해 다시 자신의 약점을 보여줍니다.

윌은 여자를 사귀었지만 헤어지게 됩니다. MIT공대의 좋은 가문에서 자란 여자는 윌과 함께 떠나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또 버려질 것 같은 두려움에 윌은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마음을 닫고 그 여자에게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윌은 계속 이렇게 두려움에 갇혀 살면서도 다른 이에게 더 이상 상처받지 않으려고 겉으로는 자신을 완벽하게 꾸밉니다.

드디어 자신의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은 윌은 숀에게 양부로부터 학대받았던 모든 사실들을 털어놓습니다. 숀은 불완전함이 불완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관계를 위해 도움이 된다고 말합니다. 숀은 자신의 아내가 잠잘 때 방귀를 뀌는 것 등을 자신만 알고 있고 아내도 자신의 단점을 알고 있는데 이런 것들이 둘의 관계를 오히려 더 깊게 만들어주는 것들이라고 말하며 완벽해지려고만 하는 자기 자신을 용서할 것을 청합니다.

그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수십 번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처음엔 안다고 말하지만 나중엔 그만하라고 하면서 화까지 냅니다. 그러다가 그 말을 인정하고 숀을 껴안고 눈물을 흘립니다. 나의 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 죄책감을 상쇄하기 위해 더 완벽해 보이려고 힘을 잔뜩 주고 살았던 것입니다. 윌은 숀의 희생을 통해 흘러내리는 자신의 뜨거운 눈물로 자신도 용서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도 용서합니다. 이젠 누군가에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더 이상 자신의 탓 때문에 버림받았다는 마음을 가지지 않아도 되게 된 것입니다.

   

이 영화에서 아인슈타인도 그를 이끌어줄 스승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저 평범한 인물에 머물렀을 거라는 대사가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늑대에게 키워졌던 아이들은 자신들이 늑대라고 여기고 그 수준에서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내가 나를 초월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생은 만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전교주일입니다. ‘전교란 우리가 누군가의 좋은 만남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나의 수준으로 올라올 수 있도록 가르치는 것입니다. 사실 가르친다기보다는 내가 그 사람에게 먹힌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내가 죽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속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말씀과 성체성혈의 형태로 먹히시며 우리를 당신 수준까지 끌어올리시려고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는 이것을 스승이 되는 것과 같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그렇습니다. 스승은 내가 그 사람에게 먹혀서 그 사람이 더 이상 이전의 사람이 아닌 나를 통해 새로 태어난 사람이 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다가는 스승이 제자를 먹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둘 다 망하게 됩니다.

하얀면사포라는 영화가 있는데, 고아로 자라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몸을 팔며 살아온 마틸다라는 16세 된 한 여학생이 프랑스와라는 선생님을 만나 그로부터 공부도 열심히 하고 새로운 삶의 열정도 갖게 된다는 줄거리입니다.

거기까지라면 좋겠지만 자신을 살게 해 준 프랑스와를 사랑하게 돼 버린 마틸다는 선생님을 유혹하고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프랑스와도 그 유혹에 넘어옵니다. 그러나 프랑스와는 자신의 가정이 있다는 것, 또 선생님과 미성년자의 부적절한 관계라는 것 때문에 마틸다를 거부하지만 결국 그 사실이 드러나게 되고 자신은 시골로 전근가게 됩니다. 마틸다는 그 선생님이 출퇴근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보다가 결국 스스로 생을 마감하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스승은 누군가를 깨끗이 만들고 힘을 주어 최종 목적지인 주님을 만나게 해야 하지 도중에 그 사랑을 자신이 가로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도 자신의 역할을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하느님의 열정을 가지고 여러분을 위하여 열정을 다하고 있습니다. 사실 나는 여러분을 순결한 처녀로 한 남자에게, 곧 그리스도께 바치려고 그분과 약혼시켰습니다.”(2코린 11,2)

신부를 차지하는 것은 신랑이어야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제자들이 그리스도께로 갈 때 세례자 요한이 한 것입니다. 자신은 그저 자신의 제자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꾼일 뿐인 것입니다. 그리고 신랑이 신부를 차지하는 것을 보며 함께 기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피로 사람들을 깨끗이 씻어 그리스도께 합당한 신부로 만들고 그들을 주님께 봉헌해 드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리고 진정 우리 피로 씻었다면 그들은 다시 더러워 질 수 없게 됩니다. 이것이 스승이 제자에게 해야 하는 역할인 것입니다.

   

의사를 하다가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의 전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맨 손으로 길거리 아이들을 주어다 키우며 살아가는 박보영 목사님이 있습니다. 길거리에서 본드와 가스를 불고 깡패 짓을 하며 사는 이들을 데려다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이분이 길거리 거지 아이들을 키우는 데 하나의 독특한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처음에 그들을 보면 몇 년 동안 씻지 않고 옷도 갈아입지 않아서 역겨운 냄새가 난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의 옷을 벗기고 그 옷을 비닐봉지에 봉해 보관합니다. 그런 다음 아이의 몸을 씻기고 이발을 해 주고 새 옷을 입히면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3달 정도 함께 삽니다.

3달이 지나면 예식을 행합니다. 다른 것이 아니라 그 아이에게 자신이 전에 입었던 옷을 꺼내주면서 다시 입어보라고 합니다. 그러면 단 한 명도 그 옷을 다시 입으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적어도 옷을 얼굴에 갔다대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지 않습니다. 냄새를 맡아보라고 해도 두 손가락으로 간신히 쭉 펴서 멀리 들고 코를 막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것을 자신이 갔다버리고 오라고 합니다. 이것이 예식입니다.

   

예수님은 스승으로서 겉옷을 벗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셨습니다. 말씀으로 온 몸을 씻어주셨고 마지막으로 발까지 씻어주신 것입니다. 겉옷은 성경에서 자신이 가진 전부를 의미합니다. 피도 생명을 의미하고 전부를 의미합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물이 아닌 당신의 피로써 제자들의 발을 씻어 정결하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우리 피로 제자들을 씻어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진정 그들이 깨끗하여 졌다면 그 이전 상태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6개월 이상 예비자 교리를 받아도 1년 내에 70% 이상 냉담을 하게 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이 그저 교리로 끝날 뿐이지 우리 피가 섞여있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들을 변화시키는 것은 우리의 죽음뿐입니다.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의 피로 자신의 두루마기를 빤 이들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죄를 씻어주는 것도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스승은 제자를 위해 죽어야만 합니다. 제자는 스승의 죽음을 먹고 새로 태어납니다. 그렇게 세상 모든 이들의 스승이 되라는 것을 잊지 말라고 하는 주일이 바로 오늘 전교주일인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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