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민족들의 복음화 주일(2014년 10월 19일)/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영균끌레멘스신부님
작성자이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19 조회수604 추천수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제1독서

<모든 민족들이 주님의 산으로 밀려들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2,1-5


제2독서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 파견되지 않았으면 어떻게 선포할 수 있겠습니까?>
▥ 사도 바오로의 로마서 말씀입니다. 10,9-18


복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8,16-20



민족들의 복음화 주일(2014년 10월 19일)


여기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져 있는 우리 수도원 묘지에는 가장 오래된 독일 수도님의 무덤이 있습니다. 독일 오틸리엔 수도원 출신 마르틴 후버 수사님입니다. 동료 선교사 4명과 함께 첫 선교사로서 파견을 받아 1909년 11월 7일 독일에서 떠나 한달 반만의 항해 끝에 드디어 1909년 12월 28일 인천 제물포에 도착해서 서울 혜화동 백동 수도원에 왔습니다. 그런데 장티푸스에 걸려 고열로 고통을 받다가 한국에 온 지 겨우 한달만인 1910년 1월 26일 28살 나이로 선종했습니다. 명동 성당에서 조선 대목구장 뮌텔 주교님의 주례로 장례미사를 한 후 용산 성직자 묘지에 안장되었다가 왜관 수도원 묘지로 이장되었습니다. 백년 전 후버 수사님은 대체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해서 미지의 먼 이국땅에까지 와서 꽃도 못피운 채 젊은 나이에 죽어야했습니까?


그건 바로 주님의 복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몸소 보여주신 ‘기쁜 소식’에 대한 사랑의 열정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능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시오. 내가 그대들에게 명한 것을 다 지키도록 가르치시오.” 이 말씀은 기쁜 소식을 선포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권고가 아니라 따라야만 하는 강한 명령입니다. 실천하지 않으면 거짓 그리스도인이며 그대로 이행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복음 선포는 우리의 의무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히 해야만 사명입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의 삶 자체가 복음 선포이다.’


지난 세기 교회는 주님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주님을 알려주는 것이 복음 선포라고 생각했습니다. 옳은 말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 시대에는 무엇이 복음 선포입니까? 길에 나가 예수를 믿으라. 믿으면 천국가고 믿지 않으면 지옥간다고 길거리에서 소리치는 것이 복음 선포는 아닐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선교’라는 말 대신에 ‘복음화’라는 말을 씁니다.


지난 여름 저는 수련원 우리 젊은 형제들과 함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작년에 발표하신 교황권고 ‘복음의 기쁨’을 가지고 한 주에 한번씩 한달 동안 세미나를 했습니다. ‘복음의 기쁨’에서 교황님은, 예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으로서 내면 깊숙이에서 터져 나오는 그 기쁨을 우리 자신들이 먼저 몸과 마음으로 살아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러한 복음의 기쁨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 ‘나태의 유혹’으로 빠져든다고 경고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시간이 화살처럼 빨리 간다고 한탄합니다. 시간이 빨리가는 이유는 일상이 반복되고 새로운 경험도 없고 그래서 기억할 것도 감사할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시간이 정말 천천히 갑니다. 모든 것이 새롭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새롭게 기억하고 감사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감사한다는 것’은 정말 힘든 것 같습니다. 큰 것이 아니라 잘잘한 일상 속에서 작은 것에 감사하는 사람은 참으로 깨어 있는 사람입니다. 또한 감사하는 사람만이 기쁨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쁨은 순전히 이기적인 자기 만족적인 기쁨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복음의 기쁨은 우리 안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밖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이웃과 사회를 향하는 것입니다. 기쁨의 본성은 널리 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만 기쁘다면 그것은 덕이 아니라 악입니다. 며칠 전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 자살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거주자의 냉대와 멸시와 모욕을 참지못해 항의의 표시로 목숨을 끊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 거주자는 자기 사위가 변호사라고 하면서 경비원에게 온갖 언어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어제 교황님은 트윗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되갚을 수 없는 이들에게 우리가 좋은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정신입니다. 복음의 지혜입니다. 복음의 가르침입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이름으로 물로써 세례를 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또한 영적인 세례도 중요합니다. 주님을 모르지만 지금 힘든 이들에게 지금 우는 이들에게 지금 아픈 이들에게 사랑의 기쁨을 건네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세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2004년 12월 30일,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큰 화재가 일어났습니다. 세월호 대참사처럼 194명의 젊은 생명들이 한순간 화마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안전보다 돈을 우선시한 관계자들의 탐욕과 정부의 무능 때문이었다.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은 없었습니다.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와 타인의 고통에 무관심한 국민들로 인해 아파하던 유가족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가 위로의 눈물을 흘려준 이가 있었습니다. 당시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의 교구장 베르고글리오 대주교, 지금의 프란치스코 교황님이셨습니다. 2009년 화재 참사 5주년 미사에서 교황님은 이렇게 강론 말씀을 하셨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울 필요가 있습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직 충분히 울지 않았습니다. 일하고 아첨하고 돈 버는 데 골몰하고 주말을 어떻게 즐길까 신경쓰느라, 더는 여기에 없는 우리 아이들을 위해 충분히 울지 않고 그들을 잊었습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