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행복하기 위해 아직 무엇이 부족하다고 믿는다면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19 조회수926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


복음: 루카 12,13-21






십자가 위의 그리스도


렘브란트 작


     < 행복하기 위해 아직 무엇이 부족하다고 믿는다면 >

           

늙은 죄수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 감옥을 전전하면서 늙었고 가족이나 친척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늙은 죄수는 감옥 들창 밖에 날아온 참새 한 마리와 사귀게 됩니다. 그는 마른 빵조각을 떼어두었다가 참새에게 나누어주곤 했습니다. 참새도 늙은 죄수와 친하게 되자 창문을 열면 감방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참새는 늙은 죄수가 손바닥으로 내미는 빵부스러기를 쪼아 먹으며 노래를 불렀습니다. 늙은 죄수에게는 칠십 평생에 처음으로 생기 찬 나날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상의 행복이 다 그렇듯이 그에게도 행복한 날들이 오래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늙은 죄수가 바다 깊숙한 섬으로 이감되게 된 것입니다. 며칠을 두고 생각한 노인은 결국 참새를 데려가기로 결심합니다. 그는 작업하러 밖으로 나갈 때마다 나무개비와 철사부스러기를 주워 와서 조그만 조롱을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이감되는 날이 되어서 배를 타려는 노인은 허술한 조롱을 가슴에 품고 참새를 소중히 보호했습니다. 그러나 우악스러운 죄수들이 밀고 당기는 혼잡 속에서 노인의 허술한 조롱은 부서져버렸습니다. 놀란 참새가 푸르르 날아올랐지만 이내 수면으로 떨어져버렸습니다. 그것은 참새가 달아날까봐 노인이 참새의 꼬리를 잘라버렸기 때문입니다.

아아! 저 참새를 건져줘요!”

그러나 우렁차게 울리는 뱃고동 소리가 늙은 죄수의 비통한 부르짖음을 삼켜 버리는 가운데 배는 항구를 빠져 미끄러졌습니다.

이것은 프랑스 소설가 피에르 로티의 늙은 죄수의 사랑이란 작품의 줄거리입니다. 늙은 죄수에게 참새는 아름다운 새냐 아니냐의 문제가 아니고 오직 사랑의 대상이었지만, 그것을 소유하려고 했을 때 결국 그 사랑은 사라져버린다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은 행복을 추구합니다. 이는 하느님도 그러하십니다. 하느님은 당신 자신들 안에서의 사랑으로 행복하신 분들입니다. 인간이 필요해서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태초의 인간도 행복을 추구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행복이 오로지 하느님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미 충분히 주어졌다고 여기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힘으로 부족한 행복을 더 채워 넣으려 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께 불순종하게 하는 영에게 끌려 육의 욕망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육의 욕망은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게 하는데 그래서 손을 뻗어서는 안 되는 나무열매에까지 손을 뻗은 것입니다.

그 후에도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행복을 추구하려는 마음은 계속됩니다.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에 의지하지 못하고 스스로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 나뭇잎을 엮어 몸을 가립니다. 그러나 인간의 부끄러움은 우리의 행위가 아닌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분의 피로 죄를 씻고 그분의 옷을 입음으로써만 가려질 수 있습니다. 바오로는 이것을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공부를 잘 해야 하고 좋은 직장을 가져야 하고 결혼해야 하고 자녀가 잘 돼야 하고 돈이 많아야 하고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 등을 위해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살아갑니다. 파랑새는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걸 믿지 못하면 영원히 내 안에 내가 생기기 전부터 존재하는 참 행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도 바오로는 자신들도 육의 욕망에 이끌려 살면서 육의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살았다고 합니다. 이는 공중을 다스리는 지배자, 곧 순종하지 않게 하는 영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내 스스로의 행위로 행복을 추구하려고 하는 것이 하느님의 진노를 살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진노란 그분과의 관계단절로 그치게 되는 은총의 선물을 말합니다. 바오로는 그러면서 우리 구원이, 곧 우리 행복이 우리의 노력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어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임을 재차 밝히고, 그렇게 그분을 받아들이면 선한 행위가 저절로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양을 치는 목동이 눈 내리는 어느 겨울밤 한 무리의 양떼를 몰고 눈을 피해 한 동굴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때 마침 그 동굴 속에는 야생의 살찐 양들이 한 떼 들어와 눈을 피하고 있었습니다. 이 목동은 의외의 사태에 회심의 미소를 띠며 동굴 속에 이미 들어와 있는 살찐 야생의 양들을 제 것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목동은 자기의 양을 버려두고 야생의 양떼들에게 열심히 건초를 먹였습니다. 눈이 날리던 겨울이 지나고 눈이 멎자 건초를 실컷 얻어먹고 기운이 팔팔해진 야생의 양떼들은 건초를 얻어먹은데 대한 인사말 한마디도 없이 쏜살같이 동굴을 빠져나가 들과 숲으로 달아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야심을 가지고 정성을 쏟았던 목동으로서는 이만 저만한 손해가 아니었고 실망도 컸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또 있었습니다. 추위에 떨며 동굴 속에서 야생의 양들 때문에 건초조차 제대로 얻어먹지 못한 다른 양들이 모두 굶어 죽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지금 바로 이 순간에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 계십니다. 그저 믿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행복은 이미 우리 안에 다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믿지 못하고 이 육의 욕망을 쫓게 된다면 내 안에 있는 행복은 굶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의 행복은 절대 나를 만족시킬 수 없고 더 공허함과 배고픔만을 준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얼마나 하느님이 주시는 행복을 믿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정신없이 헛된 노력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그냥 멈추고 받아들이십시오. 바로 그 순간 눈물이 나오고 행복해질 것입니다. 감사의 눈물이 쏟아지지 않으면 아직 믿고 받아들인 것은 아닙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