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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관계의 문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20 조회수885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0.20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에페2,1-10 루카12,13-21

                                                               
관계의 문

오늘은 '관계의 문'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사람은 관계를 떠나선 살 수 없습니다.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삶의 꼴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관계다'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관계를 맺는데 중요한 것이 눈과 귀입니다. 
잘 보고 잘 들어야 원활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활짝 열린 관계의 문을 지닌 자유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마음 따라 보는 눈이요, 마음 따라 듣는 귀입니다. 
마음의 눈, 마음의 귀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음 가난한 겸손한 이들이, 마음 깨끗한 순수한 이들이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활짝 열린 마음의 눈, 마음의 귀를 지닌 사람들이자 
활짝 열린 관계의 문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

바로 경계해야 할 바 탐욕입니다. 
마음의 눈을, 마음의 귀를 막아 버리는 탐욕이요, 
관계의 문을 차단시키는 탐욕입니다. 
이성도, 지성도 탐욕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식욕이, 성욕이, 물욕이, 의욕이 문제가 아니라 탐욕이, 과욕이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의 부유한 사람이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대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부자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완전히 탐욕으로 차단된 관계의 문이요, 
탐욕으로 마음의 눈도, 마음의 귀도 닫힌 모습입니다. 

자기 안에 폐쇠된, 자기 감옥에 갇힌 수인의 모습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기와의 관계, 모두 실종입니다.

"자, 네가 여러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이건 대화가 아니라 독백입니다. 
평생 하느님과 대화의 기도는 물론 이웃과의 대화도 부재했음이 분명합니다. 
자기를 지으신 하느님을 잊을 때 누구나 탐욕의 포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복음의 부자뿐 아니라 
탐욕에 물든, 죽음을 까맣게 잊고 지내는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탐욕에 대한 참 좋은 처방은 하느님의 은총을 자각하는 것이요, 
하느님 사랑으로 그 탐욕의 욕망을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이래야 세상 풍조에 따라, 
육의 욕망에 이끌려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참 은혜롭습니다.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줍니다. 
복음의 부자가 완전히 잊어버린 은총의 차원입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렀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바로 세례성사 은총이요, 
이를 통해 탐욕도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로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닫혀있는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 열려있는 미완의 존재,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된 미완의 작품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탐욕을 순화시켜 주시고 당신 작품인 우리를 완성에로 이끌어 주십니다.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시편100,3). 

아멘.

 


2014.10.20 연중 제29주간 월요일, 에페2,1-10 루카12,13-21

                                                               
관계의 문

오늘은 '관계의 문'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사람은 관계를 떠나선 살 수 없습니다.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삶의 꼴입니다. 
그러니 '사람은 관계다' 정의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 관계를 맺는데 중요한 것이 눈과 귀입니다. 
잘 보고 잘 들어야 
원활한 관계를 맺을 수 있고, 활짝 열린 관계의 문을 지닌 자유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마음 따라 보는 눈이요, 마음 따라 듣는 귀입니다. 
마음의 눈, 마음의 귀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마음 가난한 겸손한 이들이, 마음 깨끗한 순수한 이들이 진정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활짝 열린 마음의 눈, 마음의 귀를 지닌 사람들이자 활짝 열린 관계의 문을 지닌 사람들입니다.

"너희는 주의하여라. 
모든 탐욕을 경계하여라. 
아무리 부유하더라도 사람의 생명은 재산에 달려있지 않다."

바로 경계해야 할 바 탐욕입니다. 
마음의 눈을, 마음의 귀를 막아 버리는 탐욕이요, 관계의 문을 차단시키는 탐욕입니다. 

이성도, 지성도 탐욕 앞에서는 무력합니다. 
식욕이, 성욕이, 물욕이, 의욕이 문제가 아니라 탐욕이, 과욕이 문제입니다. 

오늘 복음의 부유한 사람이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대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부자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완전히 탐욕으로 차단된 관계의 문이요, 탐욕으로 마음의 눈도, 마음의 귀도 닫힌 모습입니다. 
자기 안에 폐쇠된, 자기 감옥에 갇힌 수인의 모습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이웃과의 관계, 자기와의 관계, 모두 실종입니다.

"자, 네가 여러해 동안 쓸 많은 재산을 쌓아 두었으니, 쉬면서 먹고 마시며 즐겨라."

이건 대화가 아니라 독백입니다. 
평생 하느님과 대화의 기도는 물론 이웃과의 대화도 부재했음이 분명합니다. 
자기를 지으신 하느님을 잊을 때 누구나 탐욕의 포로가 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야, 오늘 밤에 네 목숨을 되찾아 갈 것이다. 
그러면 네가 마련해 둔 것은 누구 차지가 되겠느냐?"

복음의 부자뿐 아니라 
탐욕에 물든, 죽음을 까맣게 잊고 지내는 우리 모두의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입니다. 

탐욕에 대한 참 좋은 처방은 하느님의 은총을 자각하는 것이요, 
하느님 사랑으로 그 탐욕의 욕망을 전환시키는 것입니다. 
이래야 세상 풍조에 따라, 육의 욕망에 이끌려 육과 감각이 원하는 것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이 참 은혜롭습니다. 
우리 마음의 눈을 밝혀 줍니다. 
복음의 부자가 완전히 잊어버린 은총의 차원입니다.

"자비가 풍성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잘못을 저질렀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바로 세례성사 은총이요, 이를 통해 탐욕도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리는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바로 우리의 구원은 하느님의 선물임을 깨닫습니다. 

우리는 닫혀있는 완결된 존재가 아니라 하느님께 열려있는 미완의 존재, 하느님의 작품입니다. 
선행을 하도록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창조된 미완의 작품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탐욕을 순화시켜 주시고 당신 작품인 우리를 완성에로 이끌어 주십니다. 

"너희는 알아라, 주님은 하느님이시다. 
그분이 우리를 지으셨으니 우리는 그분의 것, 
그분의 백성, 그분 목장의 양 떼라네."
(시편100,3).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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