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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20 조회수1,031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


복음: 루카 12,35-38







마니피캇의 성모


보티첼리(Botticelli, Sandro) 작, (1485),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

      

어제 유투브에서 재미있는 원숭이 실험을 보았습니다. 두 원숭이를 대상으로 하는 실험입니다. 두 원숭이를 서로 격리시켜 우리 안에 넣어놓습니다. 실험자 한 사람이 한 원숭이에게 자그마한 돌을 줍니다. 그 원숭이는 돌을 받아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이 손을 펴고 있으면 그 원숭이가 돌을 다시 사람에게 줍니다. 돌을 받은 사람은 돌 대신 오이를 원숭이에게 줍니다. 원숭이는 매우 만족한 듯이 오이를 먹습니다.

그런 다음 다른 원숭이에게 똑같은 방식으로 실험을 합니다. 조약돌을 주고 손을 펴고 있으면 그 원숭이도 조약돌을 다시 놓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오이 대신 포도 한 알을 줍니다. 원숭이는 포도를 맛있게 먹습니다. 물론 옆에 오이를 먹은 원숭이가 이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다시 사람은 처음 원숭이에게 조약돌을 주고 돌려받습니다. 아마도 이 원숭이는 자신에게도 포도를 주리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원숭이에게 또 맹맹한 오이조각을 줍니다. 이 원숭이는 약간 시큰둥합니다. 그러나 어쨌건 오이를 먹습니다.

그리고는 다시 옆의 원숭이에게 똑같이 조약돌을 주고받고는 포도를 줍니다. 또 처음 원숭이에게 똑같이 하고 오이를 주었더니 그 원숭이가 오이를 먹지 않고 밖으로 집어던집니다.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옆의 원숭이에게 똑같이 포도를 줍니다. 그런 다음 처음 원숭이에게 조약돌을 주었더니 이번엔 조약돌을 사람 얼굴로 던져버리고는 철창을 뜯고 흔들고 소리를 지릅니다. 매우 화가 난 것입니다. 자신도 똑같은 일을 했는데 맹맹한 오이만 먹고 다른 원숭이는 계속 맛있는 포도를 먹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오이로도 만족했음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입니다.

 

아주 흥미로운 실험이었습니다. 사람이 왜 불행해지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사람은 무엇이 부족해서 슬픈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보다부족하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경제대국이 되었는데도 자살률이 세계 1위라는 사실이 돈이 행복을 보증해주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 있는데도 우리가 여전히 돈에 치중하는 이유는 아직도 참 행복을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처음 원숭이에게 오이 대신 포도, 그리고 더 맛있는 것을 준다면 그 옆에 원숭이가 포도를 집어 던질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 것으로는 절대로 마음의 평화도 사람들 간의 평화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피로써 우리가 한 성령 안에서 평화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 평화 때문에 분열 없이 양쪽모두 한 가족처럼 하느님께 나아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방인도 외국인도 모두가 구별 없이 한 시민이며 한 가족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마치 한 건물의 부분처럼 서로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결국 한 건물인 사도들과 예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교회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물론 그 모퉁잇돌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를 모시는 이들에겐 분열은 있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가진 이들은 다 가진 이들이기에 서로 부족하여 시기하는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당신 생명입니다. 당신 생명을 구분 없이 주고 계셔서 그 생명으로 영원한 행복을 얻을 수 있음을 믿기만 한다면 더 이상 분열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 인종이나 나라에 상관없이 똑같이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가치는 이 세상 모든 것들을 뛰어넘는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누구와 비교하여 질투를 느끼던가, 그래서 불행해진다면 사실 믿음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계신 것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평화이고 기쁩니다. 그분 이외에 더 이상 필요한 것이 없어야 마땅한데 무언가를 더 가지려고 하고 있다면 그분께서 주시는 피의 가치, 성령의 가치를 알지 못한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성체를 영하면서도 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바티칸 성당에 들어서면 우측에 미켈란젤로의 수작 피에타 상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모님이 십자가에 내려진 예수님을 안고 있는 그 대리석 조각은 예술을 잘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탄성이 절로 나오게 만들 정도로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그 피에타 상은 유리로 막혀져 있습니다. 그것을 유리로 막은 이유는 어떤 조각가가 저것이 어떻게 사람이 만들 수 있는 것이냐며 올라가 망치로 때려 성모님의 손가락과 코 등이 파손을 입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그 예술성을 잘 모르지만 그 예술가는 미켈란젤로의 예술성을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재능이 있는 이였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하느님께 덜 받았다고 생각했기에 가장 훌륭한 예술품에 흠집을 내고 자기 인생에도 흠집을 내게 된 것입니다.

 

질투는 무엇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당신 성령은 이 세상의 모든 부족함을 채우고도 남는 것입니다. 신앙이 있다면 서로 잘 되는 것을 진심으로 기뻐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체는 바로 우리가 하나가 되어야 하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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