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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하여라, 깨어 있는 사람들! -깨어 있음 예찬-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21 조회수1,350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014.10.21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에페2,12-22 루카12,35-38

                       
행복하여라, 깨어 있는 사람들!
 -깨어 있음 예찬-

지금 여기 깨어있는 사람들이 진정 살아있는, 건강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자기를 잊고 잠들어 있는 불행한 영혼들도 많습니다. 

깨어 있어야 일상의 늪에서, 무기력, 무의욕, 무의미의 늪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하느님의 현존을 살 수 있습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수행생활이, 
우리의 끊임없는 기도생활이 목표하는 바도 깨어 있는 삶입니다. 

제자들의 공동체는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주인이 밤 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주인'을 '주님'으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깨어 있는 당신의 공동체가 주님께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진정 깨어 있는 주님의 공동체가 아름답습니다.

깨어 있음은 은총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다림입니다.
깨어 있음은 희망입니다.
깨어 있음은 사랑입니다. 
깨어 있음은 빛입니다.
깨어 있음은 충만입니다. 
깨어 있음은 갈망입니다.
깨어 있음은 침묵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도입니다.
깨어 있음은 찬미입니다.
깨어 있음은 감사입니다.
깨어 있음은 평화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쁨입니다.
깨어 있음은 순수입니다.
깨어 있음은 모두입니다. 

그대로 깨어 있음 예찬이 되고 말았습니다. 

깨어 있지 못해 세상 것들에 중독이요, 세상 우상들에 종이 되어 삽니다. 
그러니 깨어 있음보다 영혼의 병에 더 좋은 치유제도 없습니다. 

깨어 있을 때 깨끗한 마음이요, 샘솟는 깨달음에, '참 나'의 삶입니다. 
깨어 있음, 깨끗한 마음, 깨달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연 하루중 깨어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참으로 깨어 있는 영성훈련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있을 때 깨어 있는 삶입니다. 
바오로가 묘사하는 다음 모습은 그대로 주님을 알아 깨어 살기 전,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 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사실 오늘날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우리는 주 그리스도 안에서 깨어 있습니다. 
다음 바오로의 고백은 주 그리스도 안에 깨어 있는 우리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우리를 하나로 만드시고 
우리를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하여 당신 안에서 서로 다른 인간을 
하나의 새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약간 말마디를 바꿔도 그대로 통합니다. 
바로 미사은총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시간, 
깨어 있다 당신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선사하시며 
새 인간, 새 공동체로 창조해 주십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시편103,1). 

아멘



014.10.21 연중 제29주간 화요일, 에페2,12-22 루카12,35-38

                       
행복하여라, 깨어 있는 사람들!
 -깨어 있음 예찬-


지금 여기 깨어있는 사람들이 진정 살아있는, 건강한,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반면 자기를 잊고 잠들어 있는 불행한 영혼들도 많습니다. 

깨어 있어야 일상의 늪에서, 무기력, 무의욕, 무의미의 늪에서 벗어나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하느님의 현존을 살 수 있습니다. 
종파를 초월하여 모든 수행생활이, 우리의 끊임없는 기도생활이 목표하는 바도 깨어 있는 삶입니다. 

제자들의 공동체는 물론 우리 모두를 향한 주님의 말씀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놓고 있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주인이 밤 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주인'을 '주님'으로 바꿔도 무방합니다. 

깨어 있는 당신의 공동체가 주님께는 기쁨이요 행복입니다. 
진정 깨어 있는 주님의 공동체가 아름답습니다.

깨어 있음은 은총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다림입니다.
깨어 있음은 희망입니다.
깨어 있음은 사랑입니다. 
깨어 있음은 빛입니다.
깨어 있음은 충만입니다. 
깨어 있음은 갈망입니다.
깨어 있음은 침묵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도입니다.
깨어 있음은 찬미입니다.
깨어 있음은 감사입니다.
깨어 있음은 평화입니다. 
깨어 있음은 기쁨입니다.
깨어 있음은 순수입니다.
깨어 있음은 모두입니다. 

그대로 깨어 있음 예찬이 되고 말았습니다. 

깨어 있지 못해 세상 것들에 중독이요, 세상 우상들에 종이 되어 삽니다. 
그러니 깨어 있음보다 영혼의 병에 더 좋은 치유제도 없습니다. 

어 있을 때 깨끗한 마음이요, 샘솟는 깨달음에, '참 나'의 삶입니다. 
깨어 있음, 깨끗한 마음, 깨달음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과연 하루중 깨어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참으로 깨어 있는 영성훈련이 절실한 시대입니다. 

주님 안에서, 주님과 함께 있을 때 깨어 있는 삶입니다. 
바오로가 묘사하는 다음 모습은 그대로 주님을 알아 깨어 살기 전,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 때에는 여러분이 그리스도와 관계가 없었고, 
공동체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으며, 
약속의 계약과도 무관하였고, 
이 세상에서 아무 희망도 가지지 못한 채 하느님 없이 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사실 오늘날도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그러나 우리는 주 그리스도 안에서 깨어 있습니다. 
다음 바오로의 고백은 주 그리스도 안에 깨어 있는 우리들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우리를 하나로 만드시고 우리를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 
하여 당신 안에서 서로 다른 인간을 하나의 새인간으로 창조하시어 평화를 이룩하셨습니다."

약간 말마디를 바꿔도 그대로 통합니다. 
바로 미사은총을 보여 줍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시간, 
깨어 있다 당신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에게 평화를 선사하시며 새 인간, 새 공동체로 창조해 주십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시편103,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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