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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돈오점수(頓悟漸修)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22 조회수980 추천수1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복음: 루카 12,49-53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 돈오점수(頓悟漸修)>

             

한 자매님이 자신은 항상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데 매일 우울하고 세상에 화가 나기도 하며 사는 즐거움이 없고 힘들기만 하다고 해서 제가 어떻게 신앙을 가진 사람이 그럴 수 있느냐고 하였습니다. 위로가 되는 말을 듣기를 원하는 것도 알고 있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따끔한 말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믿음은 곧 행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당신 생명 때문에 지옥에 갈 영원한 형벌을 면하고 하늘나라뿐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필요한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물론 이렇게 말하면 감이 잘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에겐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오늘 독서에도 말하듯이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은 그럴만한 수준이 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오로는 에페소인들에게 주님의 도우심으로, 즉 성령의 도우심으로 인간의 지각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주님의 도우심으로 뜨겁게 체험하지 못하면 결코 그 지식이 나의 살과 피가 되지 못합니다. 어쩌면 지금의 교리교육이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지식적으로는 많이 가르쳐주지만 그분을 만나는 뜨거운 체험을 주고 있지는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단 만나면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이 만남의 체험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고 하지만 막상 부모가 되어 자녀를 낳아서 그 부모심정을 느껴보기 전까지는 부모의 고마움을 가슴깊이 느끼지는 못합니다. 저도 어렸을 때 효도해야 한다는 것은 수없이 들어서 알았지만 지금만큼은 부모님에 대한 고마움을 마음으로 느껴보지는 못했습니다. 아무리 배워 알아도 내가 부모가 되기 전에는 그 심정을 공감할 수 없으리만큼 심오한 사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하느님의 사랑이야 어떻겠습니까? 우리가 그분의 사랑을 매순간 느끼고 산다는 것 자체가 기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그 자매님께 최선을 다해 하느님의 사랑만으로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음을 느끼게 해 드렸습니다. 그분께 대한 고마움, 또 그래서 세상에서 더 필요한 것이 없으니 만족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느낌 등을 단 한 순간만이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었습니다. 다행히 그 자매는 눈물을 글썽이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다시 인생은 고통뿐이라고 문자가 왔습니다. 저를 만난 후 며칠은 마음이 편안하고 가벼웠는데 다시 힘들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예상했던 반응입니다. 한 번에 완전히 변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오로도 예수님을 처음으로 만나고는 몇 년 동안 자신을 성장시키는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저는 돈오점수(頓悟漸修)’란 한 문자만 보내주었습니다. 돈오점수란 불교용어입니다. ‘돈오는 순간적인 깨우침을 의미하며, ‘점수는 쉼 없는 수행을 의미합니다. 일반적으로 열심히 수행하면 깨우침에 다다르는지 알지만 사실 깨우치고 나서도 끊임없는 수행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이는 마치 겨울에 얼음이 얼었음에도 한 순간 그 호수 전체가 물임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짜 물이 되기 위해서는 태양의 비추임으로 조금씩 녹아야 하는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얼음이 물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돈오이고 태양의 따사로움으로 그 얼음이 녹는 것이 점수입니다.

다른 비유로 말하자면 아주 어두울 때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데 번개가 번쩍 쳐서 한 순간 길이 보였다가 사라진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깨달음입니다. 그러나 그 길을 기억하고 조금씩 어두움을 벗어나는 노력이 남은 것입니다. 이것을 수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세례 받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우치고 눈물을 흘리고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기쁨을 잃지 않겠다고 결심합니다. 그러나 이전의 나쁜 성향들이 다시 올라와서 그런 기쁨을 잃고 우울해지고 결국 아예 이전 상태로 돌아가 버리기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기쁘고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번개가 번쩍 칠 때 보였던 길을 기억하고 그 길을 더듬어 찾아가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행복할 수 있었는지를 기억하며 다시 그 기억을 좇아 나의 나쁜 성향을 없애며 조금씩 그 기억에 가깝게 나아가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저 또한 행복했던 기억과 힘들어졌던 기억을 잘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행복해지는지 어떻게 하면 힘들어지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물론 안다고 해서 행복한 선택만을 하면서 살아가지는 못합니다. 길을 벗어나 헛디디기도 합니다. 그러면서 그때 한 순간 보았던 그 길만이 가장 안전한 것이었음을 더욱더 믿게 됩니다. 이것이 수행인 것입니다. 믿으면 그래서 다시 행복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믿는 사람은 행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세상에 드러내는 신앙인들이 되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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