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23 조회수1,686 추천수1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0월 23일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Do you think that I have come
to establish peace on the earth?
No, I tell you, but rather division.
(Lk.12,51)
 
 
제1독서 에페 3,14-21
복음 루카 12,49-53
 

먼저 공지사항 한 가지 말씀드립니다. 제가 오늘부터 토요일까지 자리를 비웁니다. 성소국 연수가 있어서 도저히 새벽 묵상 글을 쓸 수 없을 것 같네요. 따라서 금요일과 토요일, 이틀 동안 묵상 글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주일에 뵐 것을 약속드립니다. 그럼 오늘의 새벽 묵상 글 시작합니다.

어제 책을 보다가 대화의 중요성에 관한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연구소의 실험 결과인데, 오랜 기간을 함께 살면서 서로의 갈등을 대화로 잘 해결해 온 부부와 면역력이 그렇지 못한 부부들에 비해 월등하게 높은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또 이런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한 임상실험에서 악성 흑색종을 앓고 있는 환자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고 한 집단의 환자들은 치료를 받은 후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도록 하고 그 모임에서 대화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다른 집단의 환자들은 개별적인 치료만 받도록 하였지요. 이 실험은 6주에 걸쳐 진행되었고 5년이 지난 후 실험에 참가했던 환자들을 다시 찾았습니다. 그런데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대화법을 배웠던 환자들은 9퍼센트가 사망한 반면, 그냥 치료만 받은 환자들은 무려 30퍼센트나 사망한 것입니다. 그저 간단한 대화법을 배우고 자신이 가진 고충을 다른 사람들과 나눈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살아 있을 확률이 훨씬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지요.

이만큼 우리의 삶 안에서 대화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인간 대 인간의 대화만이 중요할까요? 어쩌면 인간 대 하느님 간의 대화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과의 대화 안에서는 때로는 아픔과 상처를 동반할 수도 있지만, 하느님과의 대화 안에서는 믿음이 키워지며 이로써 구원이라는 커다란 희망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인간과의 만남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만남임을 오늘 복음에서 분명히 말씀해주십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평화가 아닌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하시면서 가족의 분열을 이야기하십니다. 어떻게 보면 이 말씀이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는 뜻으로 비칠 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함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즉, 극단적으로 표현해서 가족의 분열이 오게 되더라도 하느님 사랑이 항상 우선이 되어야 함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을 항상 첫 자리에 모실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친한 친구가 어떻게 내게 생겼습니까? 갑자기 “우리 친한 친구하자.”라는 말 한 마디로 친한 친구가 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이야기하고 삶을 나누면서 친한 관계가 되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기도라는 대화는 물론 내 삶 전체를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과의 많은 대화를 통해 하느님을 첫 자리에 모시는 은혜로운 오늘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구원이라는 커다란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행동의 씨앗을 뿌리면 습관의 열매가 열리고, 습관의 씨앗을 뿌리면 성격의 열매가 열리고, 성격의 씨앗을 뿌리면 운명의 열매가 열린다(나폴레옹).


 

대화가 중요해요...

어떤 사람이 편도선을 절제하기 위해 병원에 갔습니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병원에서 그 사람의 다리를 절단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요? 이 사건은 미국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고 하네요.

사실 이 수술실에는 집도의사 외에도 일곱 명의 조수가 있었습니다. 의사가 그의 다리를 잘라내려고 했을 때 그들이 이상하게 여겼지만 누구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도 아니었고 용기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결국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 정보가 활발히 공유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돌이킬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주저하면서 대화를 하지 않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대화를 통해 생명이 살수도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면을 생각하면서 또 용기를 내지 못해서 대화 하는 것을 시도도 하지 못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올바르고 다른 이들에게 힘과 도움을 줄 수 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합니다.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