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27 조회수690 추천수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0월 27일 연중 제30주간 월요일
 
“Woman, you are set free of your infirmity.”
He laid his hands on her,
and she at once stood up straight
and glorified God.
(Lk.13,12-13)
 
 
제1독서 에페 4,32─5,8
복음 루카 13,10-17
 

조금 오래된 이야기지만, 6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어려움을 이기지 못해 극약을 마시고 자신의 삶을 마감했던 19살 소녀가장이 있었습니다. 신문배달과 부근 약국에서 하루 12시간씩 일하면서 가장을 부양하며 열심히 살았던 소녀가장이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까요? 사실 가난 한 가지 이유만으로 목숨을 끊지는 않는다고 하지요. 자신의 어렵고 힘든 삶, 그러나 그 누구도 자기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던 것입니다. 즉, 이 소녀에게는 주위의 격려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응원도 필요했던 것이지요.

지금의 시대는 점점 더 외로움 속에서 살 수밖에 없는 세상처럼 보입니다.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주의가 판을 치면서 자기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과 물질이 최고라는 생각이 삶의 한 가운데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서 소외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특히 우리나라에서 보이는 높은 자살률을 통해서 우리는 쉽게 깨닫게 됩니다.

과연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보시고 기뻐하실까요? 참 잘 살고 있다면서 세상 창조를 하시면서 하셨던 ‘보시니 참 좋았다.’라는 말씀을 반복하실까요?

그렇지 않을 것 같습니다. 따라서 지금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주님을 기쁘게 해 드릴 행동들을 해야 할 것입니다. 주님의 분노를 살 수밖에 없는 모습을 보여드려서는 안 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분노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여덟 해 동안 ‘병마’에 시달린 여자를 고쳐주시지요. 그런데 마침 고쳐주신 날이 안식일이었던 것입니다. 고쳐줬다는 사실에 회당장은 일주일 중에 맘껏 고칠 수 있는 다른 날을 놔두고 하필이면 안식일에 치료행위를 하면서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열여덟 해 동안이나 병마 속에서 힘들어 했을 여인의 아픔을 떠올려 보십시오. 육체적인 아픔뿐만 아니라, 병에 걸린 것을 죄의 결과라고 말했던 당시의 관습을 생각할 때 항상 ‘죄인’이라는 평을 받아야 했던 정신적인 아픔도 상당했을 것입니다. 이런 여인을 비롯해서 아파하는 모든 사람들을 안식일이라고 해서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입장입니다. 그러나 회당장은 ‘안식’이라는 말을 영적으로가 아니라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그 사랑에 감사하면서 하느님의 날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쉬셨으니 우리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야 한다는 문자적으로만 이해하고 해석한 것입니다.

내 뜻이 아닌, 주님의 뜻에 집중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자신의 이익이 아닌, 사랑이 넘치는 곳이 되도록 노력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때 비로소 이 땅은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참 좋은 나라가 될 것입니다.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큰 행운보다는, 날마다 일어나는 소소한 편안함과 기쁨에서 행복은 더 많이 찾을 수 있다(벤자민 프랭클린).


 

삶과 사랑은 서로 이해하는 것(정용철, ‘초록이야기’ 중에서)

아무도 삶을 다 알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누구나 삶을 이해 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가 바라며 성숙해 가는 것은 서로의 삶을 알아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이해해 가는 것입니다.

궁극적으로 삶을 이해하는 사람만이 글을 쓸 수 있고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으며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삶을 이해하는 사람은.. 인간의 연약함을 알기에 누군가의 잘못을 진심으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인생의 아픔을 알기에 누군가의 아픔을 진심으로 슬퍼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습니다.

사랑도 그렇습니다.

사랑이란, 서로를 아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이해하는 것입니다.

서로가 이해하는 것이 삶과 사랑이라는 것. 이 아침에 크게 와 닿는 말씀이네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