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0-31 조회수870 추천수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0월 31일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Who among you,
if your son or ox falls into a cistern,
would not immediately pull him out
on the sabbath day?
(Lk.14,5)
 
 
제1독서 필리 1,1-10
복음 루카 14,1-6
 

오늘은 10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아마도 방송에서는 예년처럼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이라는 가사를 품고 있는 노래가 계속 흘러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아무튼 이제 2014년도 두 달 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시간의 빠름을 여지없이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동안의 내 자신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얼마나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았는지, 혹시 후회할 날들을 만들기만 했었던 것은 아닌지……. 두 달 밖에 남지 않은 2014년을 더욱 더 잘 마무리하시길 바랍니다. 저 역시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10월의 마지막 새벽 묵상 글 시작합니다.

요즘에 교육을 받으러 강남에 갑니다. 그리고 저녁 늦게 교육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전철을 타기 위해 강남역 지하철로 들어서는데 너무나 많은 사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이 지하철 입구가 마치 엄청난 사람들을 토해내고 집어 먹는 거대한 입처럼 느껴지더군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왔을까? 이 복잡한 곳이 뭐가 좋다고 사람들은 이 거리에 올까?’ 싶었습니다.

제가 사는 답동은 늘 한산한데, 왜 이곳 강남은 사람들이 많을까요? 어쩌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기 때문은 아닐까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판단을 믿기 때문이지요. 물론 믿는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참 이상한 것은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의 입소문들을 이렇게 굳게 믿어 주면서도 바로 내 곁에 있는 사람을 믿지 못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아니 자기 자신도 믿지 못하는 경우도 얼마나 많습니까? 이렇게 믿지 못함이 주님을 향하면서 불평과 원망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믿음을 항상 강조하신 예수님의 말씀들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믿는 사람들만이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근거 없는 판단만을 따를 것이 아니라, 늘 우리를 지켜주시고 힘을 주시는 주님께 대한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요구됩니다.

오늘 복음에서 바리사이들을 비롯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믿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그저 예로부터 내려온 관습과 자신들의 일반적인 생각만을 내세워서 안식일 법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 안식일을 지킨다는 것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영적 제물인 거룩하고 덕성스러운 삶으로 하느님께 자기를 바치는 것임을 모르기에 예수님과 논쟁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라도 사랑의 실천을 철저하게 실천하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사실 안식일 법은 안식일에 일하는 것을 금하지 않았습니다. 사적인 일에 집중함으로 인해 하느님을 잊을 수 있기 때문에 일하지 않아야 한다는 관습일 뿐입니다. 그런데 종교지도자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사랑의 실천 역시 하나의 일로 취급합니다.

주님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가리고 있는 것들을 이제 과감하게 거두어야 합니다. 세상의 관점으로 생각하는 것, 자기 자신이 중심이 되어 판단하는 것,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적으로 간주해서 해를 가하려는 모습 등등 우리가 거두어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지 않나요?

모두가 오래 살고 싶어 하지만 아무도 늙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벤자민 프랭클린).


 

우리 신앙인에게 굳은살은 어디에?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예전에는 강의 시간을 이용해서 강의 내용에 적합한 노래를 직접 기타를 치면서 불렀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기타 실력이 형편없었거든요. 따라서 매일 한 시간 가까이 기타 치는 연습을 해야만 했습니다. 연습을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오른 손가락 끝은 부드럽지만, 기타 코드를 잡는 왼손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박이게 되더군요.

사실 처음에 기타를 많이 치다보면 코드를 잡는 왼손 손가락 끝이 얼마나 아픈지 모릅니다. 그러나 연습의 반복으로 인해서 더 이상 아프지 않은 상태가 옵니다. 바로 굳은살이 박이게 될 때입니다. 왼손 손가락 끝에 굳은살이 박이게 되었다고 해서 제가 부끄러워했을까요? 아닙니다. ‘내가 그래도 노력하고 있구나.’라는 것을 스스로 볼 수 있었기에 기뻐했습니다.

굳은살은 어쩌면 그 사람의 신분증 같은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굳은살이 생겨야 그 부분의 아픔도 사라지게 됩니다. 언젠가 어떤 아름다운 발레리나의 발이 인터넷 상에 공개된 적이 있는데, 발가락에 엄청난 굳은살이 박여서 너무나 못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감동합니다. 그녀가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따지고 보니 열심히 한 사람치고 굳은살이 없는 사람이 없는 것 같습니다. 심지어 작가들도 굳은살이 있습니다. 연필을 잡는 손 가운뎃손가락 첫째 마디 옆면에 있지요.

우리 신앙인에게는 어디에 굳은살이 박여 있어야 할까요? 기도할 때 꿇는 무릎? 아니면 손을 합장하기에 손바닥? 솔직히 죄를 짓는 마음에 굳은살이 박였으면 합니다. 그래야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죄가 쳐들어와도 거뜬히 물리칠 수 있지 않을까요?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