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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부러움, 부끄러움, 간절함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05 조회수1,055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1.5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필리2,12-18 루카14,25-33

                                          
부러움, 부끄러움, 간절함

믿는 이들의 삶은 평범한 듯하나 비범한 삶입니다. 
'평범의 비범'이라 함이 맞을 겁니다. 

며칠 전 어느 시인의 신문 칼럼 일부입니다.

-나이 마흔쯤 되니 좋은 것은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이 한 시야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나의 과거이자 미래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것. 
이런 안목은 나이 들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시간의 선물이니 
시간 속으로 전진하는 몸과 마음에 축복있으라.-

평범한듯하나 비범한 삶입니다. 
이런 삶을 대할 때는 부러움과 더불어 부끄러운 생각도 듭니다. 

나이 마흔까지 깨어 치열한 전사(戰士)의 삶을 살고 있는 분임이 분명합니다. 
나이 예순이 넘어도 이런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도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마침 신문 같은 면, '생각줍기' 란의 글귀와 삽화가 어울렸습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기에 간절함이다. 
간절함은 그리움과 기다림까지 더한 바람의 최대값이다.-

이런 간절함이, 간절한 사랑이 있어 치열한 전사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도 참 간절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비범한, 간절한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대로 내 믿음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1.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3.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일체의 감상과 낭만이 배제된 치열하고 간절한 제자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과연 내 '사랑'과 '십자가', '버림'은 어느 상태에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1독서에서 바오로의 충고 역시 간절합니다.

1.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2.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3.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4.기뻐하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주는, 
우리의 삶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그러나 간절한 원의를 갖게 하는 말씀입니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중 다음 대목도 저에겐 충격이었습니다.

-범용(凡庸)한 신부는 추하다. 
나쁜 신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보다도 나쁜 신부는 범용한 신부다. 
나쁜 신부는 괴물이다. 
기형(畸形)은 공동척도로는 도저히 잴 수 없는 것이다. 
괴물에 대한 천주의 계획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괴물은 무엇에 소용되는가? 
그렇게도 놀랄만한 실총(失寵)의 초자연적 의미는 무엇인가? 
범용한 신부는 슬프게도 거개가 감상가(感傷家)다.-

비단 신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위의 주님의 충고를, 바오로의 충고를 거울삼아 간절히 사는 길뿐입니다. 

부러움과 부끄러움은 간절함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당신 향한 간절한 사랑으로 바꿔주십니다.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당신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니다."
(시편42,3;27,1ㄱ). 

아멘.


2014.11.5 연중 제31주간 수요일, 필리2,12-18 루카14,25-33

                                          
부러움, 부끄러움, 간절함


믿는 이들의 삶은 평범한 듯하나 비범한 삶입니다. 
'평범의 비범'이라 함이 맞을 겁니다. 

며칠 전 어느 시인의 신문 칼럼 일부입니다.

-나이 마흔쯤 되니 좋은 것은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들이 한 시야에 들어온다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이 나의 과거이자 미래임을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는 것. 
이런 안목은 나이 들지 않고는 가질 수 없는 시간의 선물이니 
시간 속으로 전진하는 몸과 마음에 축복있으라.-

평범한듯하나 비범한 삶입니다. 
이런 삶을 대할 때는 부러움과 더불어 부끄러운 생각도 듭니다. 

나이 마흔까지 깨어 치열한 전사(戰士)의 삶을 살고 있는 분임이 분명합니다. 
나이 예순이 넘어도 이런 깨달음에 도달하지 못한 이들도 부지기수일 것입니다. 

마침 신문 같은 면, '생각줍기' 란의 글귀와 삽화가 어울렸습니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기에 간절함이다. 간절함은 그리움과 기다림까지 더한 바람의 최대값이다.-

이런 간절함이, 간절한 사랑이 있어 치열한 전사의 삶입니다. 

오늘 복음의 주님 말씀도 참 간절합니다.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비범한, 간절한 삶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대로 내 믿음의 삶을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1.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2.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3.누구든지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일체의 감상과 낭만이 배제된 치열하고 간절한 제자의 삶임을 깨닫습니다. 
과연 내 '사랑'과 '십자가', '버림'은 어느 상태에 있는지 자문하게 됩니다. 


1독서에서 바오로의 충고 역시 간절합니다.

1.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십시오.
2.무슨 일이든 투덜거리거나 따지지 말고 하십시오.
3.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니십시오.
4.기뻐하십시오.

오늘 우리에게 주는, 우리의 삶을 거울처럼 비춰주는,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그러나 간절한 원의를 갖게 하는 말씀입니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중 다음 대목도 저에겐 충격이었습니다.

-범용(凡庸)한 신부는 추하다. 
나쁜 신부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그보다도 나쁜 신부는 범용한 신부다. 
나쁜 신부는 괴물이다. 
기형(畸形)은 공동척도로는 도저히 잴 수 없는 것이다. 
괴물에 대한 천주의 계획을 누가 알 수 있겠는가? 
괴물은 무엇에 소용되는가? 
그렇게도 놀랄만한 실총(失寵)의 초자연적 의미는 무엇인가? 
범용한 신부는 슬프게도 거개가 감상가(感傷家)다.-

비단 신부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닙니다.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위의 주님의 충고를, 바오로의 충고를 거울삼아 간절히 사는 길뿐입니다. 
부러움과 부끄러움은 간절함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의 부러움과 부끄러움을 당신 향한 간절한 사랑으로 바꿔주십니다.

"하느님, 제 영혼이 당신을 그리나이다. 
제 영혼이 하느님을, 생명의 하느님을 목말라하나이다. 
당신은 나의 빛, 나의 구원이시니다."
(시편42,3;27,1ㄱ).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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