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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십자가의 원수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06 조회수1,170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2014년 가해 연중 31주간 금요일


< 이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 >


복음: 루카 16,1-8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


카라바죠(Caravaggio) 작, (1606), 제노바 롯소궁전


     < 십자가의 원수 >

 

대학생들에게 수영과 다이빙을 가르치는 수영코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는 잠을 이룰 수가 없자 수영을 하고나면 잘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어 풀장으로 갔습니다. 그는 당시의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나는 전등을 켜지 않았다. 그 이유는 풀장의 구석구석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지붕이 유리로 덮여 있었기에 굳이 불을 켜지 않아도 달빛으로 사방이 그리 어둡지 않았기 때문이다. 달빛이 은은하게 스며들고 있었고, 그 빛에 비춰진 내 그림자는 풀장의 반대편 벽에 우뚝 서 있었다. 다이빙을 하려고 발판에 올라서 있었다. 내 몸과 팔은 완전한 십자가의 형상을 그려 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그냥 멈춰 서고 말았다. 왜 그 순간에 다이빙을 하지 않았는지는 지금도 도저히 설명할 수가 없다. 그때 위험에 대한 어떤 예감이라곤 전혀 없었다. 십자가의 그림자를 그냥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그 순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 의미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리스도인은 아니었지만 무의식적으로 어릴 때 배웠던 찬송가 한 구절을 암송했다.

그가 죽으심으로 내가 용서받으니...’

다이빙 발판 위에서 얼마동안을 서 있었는지 그리고 왜 다이빙을 하지 않았는지 나도 모르겠다. 다이빙 발판에서 내려와 풀장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계단을 통해 밑으로 내려갔다. 바닥에 닿자 차갑고 부드러운 감촉이 발바닥을 통해 전해졌다. 나는 전날 밤 풀장 관리인이 물을 다 빼놓은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순간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냥 다이빙했다면 그것은 바로 죽음으로 뛰어드는 다이빙이었을 것이다. 벽에 비춰진 십자가 나를 죽음에서 구해 냈던 것이다.

자비로 나의 목숨을 지켜 주신 하느님의 은혜가 너무도 감사해 나는 차디찬 바닥에 그대로 무릎 꿇고 십자가의 그리스도께 내 영혼을 구원해 주십사고 간절히 기도했다. 그날 밤 나는 이중의 구원을 경험한 것이다.”

[리슨닝 포스트, 예화대백과사전]

 

우리는 십자가의 공로로 구원되었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러나 항상 그렇게 믿고 살지는 못합니다. 구약의 가장 완벽한 임금인 다윗도 하느님의 공로를 조금씩 자신의 것으로 돌리는 잘못을 범했었습니다.

다윗은 처음에 하느님께서 함께 해 주는 인물이라 모든 일에 성공을 거둘 수밖에 없었습니다. 골리앗을 이기게 해 주고 경쟁자 사울을 꺾어버리시고 하는 전쟁마다 승승장구하게 해 주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전쟁에 나가지 않아도 편안히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때 한 것이 병적조사입니다. 세금을 내는 인원이 얼마나 되고 또 전쟁에 나갈 수 있는 인원이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까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승승장구 했지만 이젠 그 모든 것들이 자신이 병력을 잘 사용했던 탓이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영광을 받아야 당연하기에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까지 탐하여 죄를 짓게 됩니다. 자신이 쌓은 영광에 대한 보답을 받아야 당연하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원수가 되어버린 다윗에게 하느님은 보란 듯이 전쟁에 나갈 수 있는 군사 7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십니다. 그리고 아들 압살롬에게 쫓겨 다니는 신세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을 자신의 영광으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들이란 바로 십자가의 공로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이들입니다. 그 십자가의 공로가 없으면 우리 구원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도 우리 스스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내리려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없어도 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수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는 크게 당황하며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예수님께 나무랐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 베드로에게 사탄이라 하셨습니다. 십자가 희생을 의미 없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해성사를 했을 때 보속을 바치지 않으면 죄의 용서를 받지 못한다는 생각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가 보속을 바쳐야만 죄가 용서받는다면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공로는 아무 의미가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보속으로 죄를 용서받으면 되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실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혹은 우리의 선행으로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우리 행위에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희생 덕분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십일조를 내거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면 하느님께서 더 큰 것으로 갚아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이런 생각들 또한 십자가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진정한 삶의 가치는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희생에 있습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영광스럽게 본다면 우리 또한 가난해지고 보잘 것 없어져서 십자가에 달리기를 희망해야지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희망한다면 십자가에 달려계신 분은 바보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잘 먹고 잘 살 수 없으셨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선택하신 십자가의 길이 최선의 길이요 우리 모두가 본받아야 할 길이기에 그 길을 먼저 가신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십자가의 길을 따르려는 결심을 하지 않는다면 우리 모두는 십자가의 원수들이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가장 고귀한 삶임을 받아들인다면 우리 또한 그 십자가를 지고 따를 결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의 새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2014~2015년 나해 주일 대축일 복음 묵상집입니다. ^-^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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