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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유인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08 조회수724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1.8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필리4,10-19 루카16,9ㄴ-15

                                               
자유인

자유로워 사람이고 사람이라 자유롭습니다. 
자유로워 행복이요 자유로워 내적성장입니다. 
자유에  대한 근원적 욕구를 지닌 사람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묘비명입니다. 
평생 치열히 자유를 추구한 그리스의 유명한 소설가이지만 
정말 자유로웠는지는 의문입니다. 

베트남의 국부라 일컫는 호찌민의 인품에 대한 묘사가 아름다워 인용합니다.

-호찌민은 베트남 최고의 상징이었다. 
그럼에도 
베트남인들은 스스럼없이 그를 '호 아저씨(Bac Ho)'라 친근하게 불렀다. 
가장 강력한 이미지는 '소박한 성자'였다. 
착하고, 사심없고, 청빈했다. 
치부하지 않았고, 결혼하지 않았고, 작은 집에 살았다. 
민족해방운동의 간디 같기도 했다. 
우루과이의 한 신문은 
'우주만큼 넓은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아이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소박함의 모범이었다'라는 조문 기사를 내보냈다. 
마지막 유언장은 
'유해를 화장한 다음 조국의 북부, 중부, 남부에 나누어 뿌리고 
장소를 밝히지 말아달라'라는 내용이었지만 그의 주검은 화장되지 않고, 
대신 미라가 되었다.-

참 매력적인 인품입니다. 
이대로라면 종교 유무를 떠나 성자요 자유인 입니다. 

우리의 성자 바오로 사도의 고백은 얼마나 감동적인 지요. 
내적자유의 최고봉입니다. 
간디나 호찌민도 공감할 것입니다. 
아마 니코스 카찬차키스도 여기에 도달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외적환경을 초월한 내적자유입니다. 
이런 이가 진정 성자요, 행복하고 부요한, 
지금 여기서 생사를 너머 영원한 현재를 사는 자유인입니다. 
바로 바오로가 그 모범입니다. 

그 내적자유의 비결은 무엇이겠는지요? 
그리스도 예수님이요 하느님이 그 유일한 답입니다. 

계속되는 사도의 고백이 자유의 비밀입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받아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대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때 
진정 자유인입니다. 
내적자유의 신장입니다. 
빵이냐 자유냐, 하느님이냐 돈이냐, 경제냐 민주냐의 이분법을 넘어 
참 자유를 누립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지만 
자유의 소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섬길 때 
재물은 물론 세상 모두로 부터, 심지어 죽음으로 부터도 자유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두이기 때문입니다. 
참 겸손도 여기서 유래합니다. 
하느님으로 인해 자유로워진 이들만이 겸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바리사이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하느님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할 때의 보편적 인간 현실입니다. 

진정 자유로운 이들은 
'사람들 앞에서'가 아닌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겸손한 이들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날로 자유롭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하고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말씀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들!"
(시편112,1ㄴㄷ). 

아멘.



2014.11.8 연중 제31주간 토요일, 필리4,10-19 루카16,9ㄴ-15

                                               
자유인


자유로워 사람이고 사람이라 자유롭습니다. 
자유로워 행복이요 자유로워 내적성장입니다. 
자유에  대한 근원적 욕구를 지닌 사람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렵지 않다. 나는 자유다"

많은 이들의 마음을 울렁이게 한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묘비명입니다. 
평생 치열히 자유를 추구한 그리스의 유명한 소설가이지만 정말 자유로웠는지는 의문입니다. 

베트남의 국부라 일컫는 호찌민의 인품에 대한 묘사가 아름다워 인용합니다.

-호찌민은 베트남 최고의 상징이었다. 
그럼에도 베트남인들은 스스럼없이 그를 '호 아저씨(Bac Ho)'라 친근하게 불렀다. 
가장 강력한 이미지는 '소박한 성자'였다. 
착하고, 사심없고, 청빈했다. 
치부하지 않았고, 결혼하지 않았고, 작은 집에 살았다. 
민족해방운동의 간디 같기도 했다. 
우루과이의 한 신문은 
'우주만큼 넓은 심장을 가진 사람이었으며, 아이들에 대한 가없는 사랑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모든 분야에서 소박함의 모범이었다'라는 조문 기사를 내보냈다. 
마지막 유언장은 
'유해를 화장한 다음 조국의 북부, 중부, 남부에 나누어 뿌리고 장소를 밝히지 말아달라'라는 
내용이었지만 그의 주검은 화장되지 않고, 대신 미라가 되었다.-

참 매력적인 인품입니다. 
이대로라면 종교 유무를 떠나 성자요 자유인 입니다. 

우리의 성자 바오로 사도의 고백은 얼마나 감동적인 지요. 
내적자유의 최고봉입니다. 
간디나 호찌민도 공감할 것입니다. 
아마 니코스 카찬차키스도 여기에 도달하진 못했을 것입니다.

"나는 어떠한 처지에서도 만족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나는 비천하게 살 줄도 알고, 풍족하게 살 줄도 압니다.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넉넉하거나 모자라거나, 
그 어떠한 경우에도 잘 지내는 비결을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외적환경을 초월한 내적자유입니다. 
이런 이가 진정 성자요, 
행복하고 부요한, 지금 여기서 생사를 너머 영원한 현재를 사는 자유인입니다. 
바로 바오로가 그 모범입니다. 

그 내적자유의 비결은 무엇이겠는지요? 
그리스도 예수님이요 하느님이 그 유일한 답입니다. 

계속되는 사도의 고백이 자유의 비밀입니다.

"나에게 힘을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나는 모든 것을 다 받아 넉넉하게 되었습니다. 
나의 하느님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영광스럽게 베푸시는 당신의 그 풍요로움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 주실 것입니다."

그대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만날 때 진정 자유인입니다. 
내적자유의 신장입니다. 
빵이냐 자유냐, 하느님이냐 돈이냐, 경제냐 민주냐의 이분법을 넘어 참 자유를 누립니다.

"어떠한 종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쪽은 미워하고 다른 쪽은 사랑하며, 한쪽은 떠받들고 다른 쪽은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들은 이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비웃었지만 자유의 소재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섬길 때 재물은 물론 세상 모두로 부터, 심지어 죽음으로 부터도 자유입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모두이기 때문입니다. 

참 겸손도 여기서 유래합니다. 
하느님으로 인해 자유로워진 이들만이 겸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자들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 마음을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높이 평가되는 것이 하느님 앞에서는 혐오스러운 것이다."

바리사이들뿐 아니라 우리 모두를 향한 말씀입니다. 
하느님으로 인해 자유롭지 못할 때의 보편적 인간 현실입니다. 

진정 자유로운 이들은 '사람들 앞에서'가 아닌 '하느님 앞에서' 살아가는 겸손한 이들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날로 자유롭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유하시면서도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어, 
우리도 그 가난으로 부유하고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말씀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들!"(시편112,1ㄴㄷ).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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