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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1.10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기경호 신부님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10 조회수873 추천수2 반대(0) 신고

 

연중 제32주간 월요일  루카 17,1-6(14.11.10)

<너에게 하루에도 일곱 번 죄를 짓고 돌아와

“회개합니다.” 하면, 용서해 주어야 한다.>

 

 

  

 

더불어 행복하게 살아가는 길

 

오늘 예수님께서는 신앙공동체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 가지 길에 대해 말씀하신다.

곧 남을 죄짓게 하지 말고(1-3ㄱ), 형제의 죄를 몇 번이고 용서해주며(3ㄴ-4), 굳은

믿음을 가지라(5-6절)는 것이다. 이 가운데 남을 죄짓게 하지 않고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길을 묵상해본다.

인간은 시간과 공간의 한계 속에 살아가기에 ‘남을 죄짓게 하지 않고 살아갈 수는

없다.’ ‘죄짓게 하다’란 말은 직역하면 ‘걸려 넘어지게 하다’이다. 걸려 넘어지는 계기는

다양하다. 매우 역설적이게도 우리는 사랑이시고 모든 선(善)이신 하느님과

예수님(마태 11,6; 13,57) 때문에 걸려 넘어진다. 이것은 ‘지극히 높으시고 전능

자비하신 주님’(태양의 찬가)과 나약한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실존적인 거리 때문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렇게 사람들은 스스로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짐으로서

다른 사람의 개입 없이도 걸려 넘어진다. 자기 안에 형성된 왜곡되고 비합리적인 사고나

과거의 상처, 고정된 사고의 틀을 버리지 못한 채 남을 판단하고 단죄할 뿐 아니라

절망하고 자신을 혐오해버리는 것이다. 자기 스스로 걸려 넘어지는 사람은 자신의

내면의 그 상처와 어두움을 다른 이들에게 투사하여 그들마저도 죄를 짓게 한다.

우리 모두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야 할 터인데 왜 오히려 남을 죄짓게 하는

것일까? 사실 죄의 유혹은 인간의 나약성에 비해 매우 강하다. 성 프란치스코는

그런 유혹의 실체를 간파하여 “감추어진 유혹이나 드러난 유혹, 갑작스러운 유혹이나

끈질긴 유혹에 빠지지 않게”(주님 기도 9) 해달라고 기도하였다. 우리가 남을 죄에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은 모두가 행복해야 한다는 '사랑의 연대책임 부족'과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죄성(罪性)과 악에 기우는 경향 때문이다. 각자가 영혼의 어둠과 상처,

아픔이 있기에 서로 상처받고 죄를 짓게 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존재 자체로

서로 죄짓게 하며 살아가는지도 모른다.

죄의 유혹은 인간의 한계와 이 세상의 속성으로부터 당연히 일어나지만 의도적으로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이는 불행하다(17,1). 그런 사람은 자기 죄뿐 아니라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한 책임도 져야 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걸려 넘어지는 것보다 다른

사람, 특히 ‘보잘것없는 이들’을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보다 차라리 당시 몹시 잔인한

처형 방법이었던 연자매를 목에 걸고 바다에 던져지는 편이 낫다(17,2)고 하신다.

이렇듯 예수께서는 사회적 약자들을 죄짓게 하는 것은 엄청난 잘못임을 강조하시면서

‘스스로 조심하라’(17,3)고 경고하신다.

남을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고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물론 말과 행동으로

직접 남을 죄짓게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보다 근원적으로는 의도적이든 그렇지

않든 다른 이를 죄짓게 하지 않으려면 내 자신이 사랑의 존재가 되고 그 사랑을

끊임없이 나누어야 한다. 하느님의 선을 보잘 것 없는 이들에게 건네고 되돌려야 한다.

왜냐하면 남을 죄짓게 하는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는 사랑과 선의 결핍이기

때문이다. 불특정 다수인을 대상으로 하는 ‘묻지 마’ 범죄는 무관심과 냉대, 사랑결핍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다. 남을 죄짓게 하는 것은 나의

적극적인 해코지를 통해서도 이루어지지만, 내가 해야 할 사랑 실천과 선행을

소극적으로 하지 않을 때도 일어나는 것이다. 바오로 6세 교종께서는 현대인의 가장

큰 죄는 ‘무감각’이라 했다. 다른 이의 아픔에 무관심할 때, ‘방치된 아픔’,

‘사랑의 버림’이 다른 이의 영혼과 삶을 파고들어 죄로 표출되는 것이다. 그 죄는 결코

개인의 죄라고만 할 수는 없으며 서로에 대한 사랑 결핍에 기인한 ‘사회적 죄악’이다.

이런 뜻에서 오늘도 우리는 남을 죄짓게 하고 있지 않은지 정직한 성찰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도 깊은 연민의 정으로 사회적 약자들을 사랑하시고, 모두가 하느님의 선(善) 안에

머물며 행복하기를 바라신 예수님의 그 마음을 깊이 새기며 살아가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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