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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12 수/ 차별 없이 품고 받아들이는 사랑의 치유/기경호 신부님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12 조회수1,117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32주간 수요일 루카 17,11-19(14.11.12)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단 말이냐?> 

 

 

 

차별 없이 품고 받아들이는 사랑의 치유  

 
예수께서는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구원의 순례’를 하시면서

사마리아와 갈릴래아의 경계 지역을 지나가셨다(17,11). 예수께서는 단지 사마리아인의

냉대를 피하시려고 그 길을 택하신 것일까? 예수께서 신변을 걱정하여 안전한 길을

원하셨다면 갈릴래아를 통과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두 지역의 경계를 지나

가셨다. 이런 길 선택은 선택된 민족이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는 갈릴래아의 유대인들과

이방인으로 취급받아 적대감을 가졌던 사마리아인들 모두를 받아들이시어 치유하시려는

몸짓이었으리라!

이 길목에서 예수님께 다가온 나병 환자들이 유대인과 사마리아인이었음은 의미심장한

것이다. 사마리아는 하느님의 말씀이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예루살렘에서 다른

민족들에게로 뻗어가는 교두보였다. 이렇게 그분이 향하는 예루살렘 상경 길은 죽음을

통해 모두를 사랑으로 품어 살리기 위한 ‘사랑의 발걸음’이었고, ‘생명의 말씀’을 목숨을

다해 온 세상에 퍼뜨리고자 하는 심오한 구원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나의 일상의 발걸음과 몸짓은 어떤가? 나를 지지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 생각이 같은 사람과 다른 사람, 잘 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고통 받는 사회적 약자와 힘 있는 이들, 보수주의자와 진보주의자 모두를, 이념이 아닌

더 크고 더 근원적인 하느님의 사랑으로 품고 있는가?

나병 환자들은 예수님께 간절한 바람으로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예수님을 부르며

자비를 청했다(17,12-13). 인간의 구별증, 이분법적 사고의 상징인, ‘다가갈 수 없는

그 거리’를 없애버린 것은 바로 그들의 ‘사랑을 향한 외침’이었다. 자비를 청하는 그들의

외침은 어려움에 처한 이들이 한데 모여 쏟아내는 ‘사랑의 갈증’이었다. 그들은 예수님을

 ‘스승님’이라고 부름으로써 믿음의 토대 위에서 ‘사랑의 갈증’을 선포하였고, 그 목마름은

자비를 불러일으켜 치유 받았다. 나에게 이런 목마름이 있는가? 혹 헛것으로 갈증을

채우며 살고 있지는 않는가?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다.”(17,14)

예수님께서 병을 고쳐주시기 전에 사제를 찾아 가게 한 것은 당신의 권능을 드러내고

치유 받은 이들이 율법(레위 14,2; 16,29)을 준수했음을 드러내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믿음을 갖고 감사의 마음을 품을 ‘창조의 시간’을 주신

것이다. 그런데 그들이 사제에게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다.”(17,14) 이렇게

하느님께서 하시는 치유는 인간이 정해 놓은 시간과 공간이 아니라, 치유 받으려는 이의

지향과 순수한 사랑의 갈망과 믿음에 달려 있다. 하느님께서는 믿음과 사랑과 감사를

품도록 매일 시간의 선물을 주고 계심을 명심하자!

놀랍게도 치유 받은 열 사람 가운데 사마리아 사람 한 명만이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렸다.”(17,15-16) 치유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는 아홉 사람은 참으로 배은망덕한 이들이다. 우리 모두 감사의 태도야말로

사람됨의 기본이요 하느님이 주인이심을 고백하는 삶의 경배임을 망각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런데 병이 낫자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온’ 사마리아인에게

눈길을 돌리면, 예수님의 치유로 유다인과 사마리아인 사이의 민족적, 종교적인

적대감과 증오심이 더불어 치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생면부지의 가난한 사람, 배척받고 고통 받고 소외받는 사람,

내가 싫어하고 미워하는 사람을 돕고, 타종교인들, 다른 생각과 이념을 지닌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모든 관계 속에서 조건 없이 자신을 내놓도록 하자! 이것이 바로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경계를 지나시며 사마리아인을 치유하신 예수님의 치유의 비결이요,

예루살렘에서 기다리는 죽음을 거쳐 부활의 기쁨을 체험하는 ‘생명의 순례’가 아니겠는가!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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