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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강요된 선행은 선행이 아니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12 조회수1,051 추천수8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연중 제32주간 목요일


<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
 >


  
복음: 루카 17,20-25





구세주


(6세기 경)


 


     < 강요된 선행은 선행이 아니다 >

 

()을 위해서는 강요를 해도 정당한 것일까요? 예를 들면 지금 우리나라는 군대제도가 있습니다. 만약 강제로 입대시키지 않는다면 거의 누구도 스스로는 군대에 지원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군대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억지로 징집하여 살게 하는 것이 참으로 좋은 제도일까요? 이스라엘 젊은이들은 외국에 살다가도 자진해서 군에 지원하여 복무기간을 채운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참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무엇이든 강요되어져서 이루어지는 것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희 집에 어렸을 때 개를 키웠습니다. 어떤 때는 줄에 매어놓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줄을 풀어놓습니다. 시골이어서 개들은 마음껏 뛰어다닙니다. 학교 갔다 돌아올 때쯤 개들은 멀리까지 나와서 반겨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랬는지 개가 묶여있는 것보다는 풀려있을 때 더욱 사랑스러웠습니다.

어느 날 도둑고양이가 먹을 것이 없었는지 집으로 찾아들어왔습니다. 우리는 그 고양이에게 먹을 것을 주며 친해지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다보니 고양이가 도망치지 않게 되어 그를 붙잡아 목에 줄을 매어놓았습니다. 도둑고양이다 보니 그것을 참지 못했습니다. 마구 소리 지르고 줄을 목에 감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였습니다. 저러다 죽을 것 같아서 줄을 풀어주었습니다. 그런데 고양이는 나가서 더 이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개와는 조금 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서 그 고양이가 돌아왔습니다. 새끼 고양이들을 데리고 돌아온 것입니다. 아마도 발정기여서 그렇게 나가려고 발버둥 쳤던 것 같습니다. 새끼들을 이끌고 돌아온 것을 보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우리 집을 자신의 집이라 느꼈던 것 같습니다. 뛰쳐나갈 때는 약간 밉기도 했지만 돌아오니 반가웠습니다. 만약 고양이를 풀어주지 않고 끝까지 강제로 길들이려 했다면 이런 경험도 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에덴동산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세워두셔서 인간이 죄를 지을 빌미를 만들어 두셨고 또한 유혹자를 두셔서 죄를 지을 수 있는 유혹을 받도록 내버려 두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만약 그런 유혹이 없었다면 당신께 대한 순종이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선택권이 없어서 죄를 짓지 않은 것인데 무슨 칭찬 받을 것이 있겠습니까? 죄를 지을 수도 있었는데도 안 지었다면야 칭찬을 받기에 합당하기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가 비록 하느님과 완전히 멀어질 수 있는 빌미가 되기도 하겠지만 그 자유를 잘 이용할 줄 아는 사람은 하느님께 기쁨을 드릴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짐승을 풀어놓으면 도망갈 수 있다는 위험성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도망갈 수도 있었는데도 돌아오는 것을 볼 때는 강제로 옆에 둘 때보다 훨씬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자유로 지옥에 간다고 해도 그것을 바라보면서도 자유를 건드리시지 않습니다. 인격적인 관계가 되기 위해 가장 기본적으로 상대에게 배려해야 하는 것이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는 필레몬서입니다. 성경 중에 제일 짧은 성경입니다. 필레몬이라는 사람은 골로사이에서 바오로를 만난 덕으로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또 부자여서 골로사이 교회를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한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그의 노예 오네시모가 필레몬에게 금전적 손해를 입히고 도망을 쳤습니다. 오네시모는 아마도 이때 바오로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바오로를 만나서 제대로 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됩니다. 바오로는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오네시모를 자신을 위해 일하도록 하고 싶지만 필레몬의 노예이기에 그를 다시 돌려보내기로 작정하고 이 편지와 함께 필레몬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오네시모는 주인에게 피해를 입히고 도망친 노예입니다. 그런데 다시 필레몬에게 돌아가고 싶었을까요? 아마 도중에 도망을 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새롭게 얻은 자유를 하느님의 뜻을 위하여 희생하고 다시 주인에게 돌아갔을 것입니다.

필레몬은 오네시모에게 큰 벌을 주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오로는 필레몬에게 오네시모를 형제처럼 대하라고 말합니다. 믿는 사람에게는 종도 주인도 없기 때문입니다. 참 주인은 주님밖에는 없습니다. 아마 필레몬이 그리스도인으로 남아있기 위해서는 바오로의 말을 따라야 했을 것입니다.

바오로는 어쩔 수 없이 필레몬과 오네시모의 자유에 모든 것을 맡깁니다. 그 이유를 바오로는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그대의 승낙 없이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대의 선행이 강요가 아니라 자의로 이루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자유를 주신 이유는 억지로 당신을 섬기라는 뜻이 아니라 죄가 옆에 있더라도 자의로 선을 선택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바오로와 같이 해야 합니다. 자유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지 무엇이든 강요하면 그 사람이 하늘에 쌓을 선행의 기회를 빼앗게 되는 것입니다. 죄도 자신의 자유로 짓는 것이고, 선행도 자유가 있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부사이에서도, 자녀들에게도, 직장에서도, 성당에서도 누구의 자유도 선이라는 빌미로 빼앗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의 새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2014~2015년 나해 주일 대축일 복음 묵상집입니다. ^-^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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