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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15 토/ 한없는 사랑의 기다림/ 기경호(프란치스코)신부님 작은형제회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15 조회수1,066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제32주간 토요일 루카 18,1-8(14.11.15)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부르짖으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한없는 사랑의 기다림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재판관은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신론자였으며 아마

   유대인은 아니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들 사이에서는 분쟁이 생기면 원로들에게

   가서 해결했지 법정으로 가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르면 법정은

   원고 측에서 내세운 사람, 피고 측이 세운 사람, 별도로 선임된 사람 등 셋으로 구성

   되었다. 별도로 선임된 재판관은 로마 정부나 헤로데 왕이 유급으로 임명한 치안판사

   가운데 한사람이었다. 당시 재판관들은 뇌물이나 권력을 이용하지 않는 한 억울한

   이들의 사정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악명 높은 사람들이었다.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재판관은 하느님을 두려워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변호해야 했다.

   그런데 한 과부가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18,2),

   ‘불의한’(18,6) 재판관에게 올바른 판결을 해달라고 귀찮게 졸랐다. 이를 귀찮게 여긴

   재판관의 태도를 보면, 이 과부는 자신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 뇌물로 쓸만한 돈도

   기댈만한 사람도 없었던 사회적 약자였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그녀는 억울함을 풀고

   의로움을 얻고자 끈질기게 불의한 재판관에게 청했던 것이다. 의로움은 다른 포장이나

   무장이 필요 없으며 그 자체가 바로 가장 큰 힘이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정의이시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자신을 겸허히 들여다보면, 우리는 자신이 지닌 힘과 재물에

   기대어 대단한 존재인 양 착각을 하지만 하느님 앞에 먼지에 불과한 미물이요 과부와

   같은 존재이지 않은가! 우리 모두 자신을 재판관처럼 하느님도 사람도 무시하며 추하게

   살아갈 것이 아니라, 보잘것없고 힘없어 늘 하느님께 의지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과부와 같은 처지에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불의한 재판관은 과부가 귀찮아 할 정도로 ‘올바른 판결을 해달라고’ 계속 청하자

   올바른 판결을 해주어야겠다고 마음을 고쳐먹는다(18,5).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관도 귀찮게 조르면 올바른 판결을 내려준다면,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야 더 말할

   필요도 없이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을 때 그 청을 지체 없이 들어

   주신다(18,7-8)고 가르치신다.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란 제자들과 하느님을 성실하게

   섬기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들은 온갖 부정의 과녁이 되기 때문에

   고통도 많이 겪게 된다. 그러므로 정의로 갚아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하고 의지해야

   한다. 정의가 아니고서는 정의롭게 할 수 없으며, 사랑이 아니고서는 사랑을 줄 수

   없기에, 정의이시고 사랑이신 그분께 달려가 청하지 않을 수 없음을 새겨야 하리라!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지녀야 할 중요한 태도는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18,1)는 것이다. 여기서 “끊임없이 기도하라”고 한 것은 언제나 중단

   없이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다. 청한 것을 받을 때까지 그치지 말고 언제나

   기도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때때로 하느님의 주도권을 인정하지 않은 채 자신이 원하는 때에 원하는

   모습으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우리는 청한 대로 이루어지지 않거나 기도를 들어

   주시기 않을 때 쉽게 포기하고 낙심하며 다른 세상적인 해결책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기도할 때 언제나 참을성이 있어야 하고 “들어 주신다”는 신뢰를 가져야

   한다. 기도는 ‘인내하는 사랑’이요, ‘믿음 안에서의 버티기’이다. 기도는 시간표를

   세우고 기획안을 제출하여 정해진 기일에 답을 받아내는 사업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서도 하느님의 자비를 믿고 온전히 맡겨

   드리고 하느님의 생명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기도의 호흡 안에서 ‘끝까지’ 청을 드려야

   한다. 어쩌면 기도는 답이 없는 ‘사랑의 기다림’일 수도 있다. 그러나 ‘과부’와 같은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며 하느님의 한없는 자비를 굳게 믿고 끝까지 기도하도록 하자!

   하느님께 대한 믿음의 바탕 위에서 모든 것을 맡겨드리며, 사랑으로 기다리는 ‘거룩한

   여유’를 찾아보도록 하자!

   왜? 하느님 외에는 답이 없기 때문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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