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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막과 낙원 -역설적 삶-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15 조회수96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1.15. 연중 제32주간 토요일(뉴튼수도원 5일째), 3요한5-8 루카18,1-8

                                                                                                       
사막과 낙원   -역설적 삶-

참 역설적 삶의 진리를 깨닫습니다. 
수도원은 사막이자 오아시스임을, 
더불어 인생 역시 사막이자 오아시스임을 깨닫습니다. 

이미 토마스 머튼은 
'사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사막은 낙원이 된다'는 
은 진리를 설파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 아주 넓고 고요하며 평화로운 뉴튼수도원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그대로 세상 사막의 낙원이자 오아시스였으나, 
잠시 지나면서 보니 
수도원은 무미건조한 침묵과 고독의 사막이자 섬이었습니다. 

새삼 세상의 유배자 같은 수도자들임을 깨닫습니다. 
사막 안의 수도자들은 
그대로 세상 사막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얼마 전 읽은 '한시로 읽은 
다산(정약용)의 유배일기-한 밤중에 잠깨어-'란 책이 생각납니다. 
오랜 동안의 사막 같은 유배기간동안 일상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결과인 한시들로 그대로 기도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수도원은 물론 세상 살이 어려움에, 때로 이런저런 걱정에 
'한 밤중에 잠깨어' 생각하거나 기도하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믿는 이들 모두 외로운 유배자들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 끝기도가 끝날 때 바치는 성모찬송가에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구절이 들어있나 평소에 의문을 품었었는데 
비로소 깨닫는 느낌입니다.

-당신 우러러 하와의 그 자손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나이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여,
불쌍한 우리,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보소서.
귀양살이 끝날 그때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를 뵙게 하소서-

이런 고해와 같은 인간 현실, 또한 진실입니다. 
세상 사막의 유배자 같은 우리들입니다. 

사막과 오아시스의 낙원, 우리 삶의 양면입니다. 
하여 끊임없이 바치는 기도입니다. 

사막 같은 수도원에서 오아시스의 낙원시간은 
바로 끊임없이 바치는 공동전례기도 시간입니다. 

개인은 물론 함께 바치는 
하느님 사랑의 '순수한 열정'에서 샘솟는 끊임없는 기도가 
사막을 오아시스의 낙원으로 바꿔 줍니다. 

기도가 없으면 곧장 막막한 일상의 사막일 뿐이지만, 
끊임없는 기도가 일상의 사막을 일상의 낙원 오아시스로 바꿉니다. 

아, 이래서 살기위해, 
사막에서 낙원을 살기위해 끊임없이 바치는 기도입니다. 

호흡이 기도이듯이 살아있음이 기도입니다. 
이런 사막과 낙원의 역설적 체험이 삶을 깊게 합니다.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게 합니다. 

사실 이런 기도 자체가 낙원의 오아시스요 사막 같은 일상을, 
사막 같은 우리 내면을 낙원의 오아시스로 바꿔줍니다. 

하여 바로 오늘 복음에서도 주님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제자들에게 비유를 들려줍니다. 

어떤 형태든 기도는 집요하고 항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수도자들은 
이런 청원 기도보다는 찬미와 감사 기도에 항구합니다. 
사실 이런 기도가 건강한 기도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주님의 결론 같은 말씀이 은혜롭고도 심오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방식이 아닌 
당신 방식으로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며, 
찬미와 감사의 기도에 항구한 이들에게는 
사막 같은 삶을 낙원의 오아시스 삶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과연 당신이 오실 때 
기도에 항구함으로 믿음을 보여주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말씀 하시며 우리의 분발을 촉구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사막 같은 광야에서 하느님을 찾아 나선, 1독서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서로 모두가 주님 안에서 형제이자 도반이요, 
요한은 이를 '진리의 협력자'로 일컫습니다. 

참 아름다운 말마디, '진리의 협력자'입니다. 
기도에 항구하며 진리의 협력자로 겸손하고 충실히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낙원의 오아시스 삶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바로 매일의 이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
(시편112,1ㄴㄷ). 

아멘.



2014.11.15. 연중 제32주간 토요일(뉴튼수도원 5일째), 3요한5-8 루카18,1-8


                                                                                                       

사막과 낙원   -역설적 삶-


참 역설적 삶의 진리를 깨닫습니다. 

수도원은 사막이자 오아시스임을, 더불어 인생 역시 사막이자 오아시스임을 깨닫습니다. 


이미 토마스 머튼은 

'사막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사막은 낙원이 된다'는 깊은 진리를 설파한 적이 있습니다. 


여기 아주 넓고 고요하며 평화로운 뉴튼수도원에 도착했을 때의 느낌은 

그대로 세상 사막의 낙원이자 오아시스였으나, 

잠시 지나면서 보니 수도원은 무미건조한 침묵과 고독의 사막이자 섬이었습니다. 


새삼 세상의 유배자 같은 수도자들임을 깨닫습니다. 

사막 안의 수도자들은 그대로 세상 사막 안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상징하는 듯 했습니다. 


얼마 전 읽은 '한시로 읽은 다산(정약용)의 유배일기-한 밤중에 잠깨어-'란 책이 생각납니다. 

오랜 동안의 사막 같은 유배기간동안 

일상의 늪에 빠지지 않기 위한 치열한 투쟁의 결과인 한시들로 그대로 기도와 같이 느껴졌습니다. 


수도원은 물론 세상 살이 어려움에, 때로 이런저런 걱정에 '한 밤중에 잠깨어' 

생각하거나 기도하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어찌보면 우리 믿는 이들 모두 외로운 유배자들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왜 끝기도가 끝날 때 바치는 성모찬송가에 

다음과 같은 부정적인 구절이 들어있나 평소에 의문을 품었었는데 비로소 깨닫는 느낌입니다.


-당신 우러러 하와의 그 자손들이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나이다, 슬픔의 골짜기에서.

우리들의 보호자 성모여,

불쌍한 우리, 인자로운 눈으로 굽어보소서.

귀양살이 끝날 그때

당신의 아드님 우리 주 예수를 뵙게 하소서-


이런 고해와 같은 인간 현실, 또한 진실입니다. 

세상 사막의 유배자 같은 우리들입니다. 


사막과 오아시스의 낙원, 우리 삶의 양면입니다. 

하여 끊임없이 바치는 기도입니다. 


막 같은 수도원에서 오아시스의 낙원시간은 바로 끊임없이 바치는 공동전례기도 시간입니다. 

개인은 물론 함께 바치는 하느님 사랑의 '순수한 열정'에서 샘솟는 끊임없는 기도가 

사막을 오아시스의 낙원으로 바꿔 줍니다. 

기도가 없으면 곧장 막막한 일상의 사막일 뿐이지만, 

끊임없는 기도가 일상의 사막을 일상의 낙원 오아시스로 바꿉니다. 


아, 이래서 살기위해, 사막에서 낙원을 살기위해 끊임없이 바치는 기도입니다. 

호흡이 기도이듯이 살아있음이 기도입니다. 

이런 사막과 낙원의 역설적 체험이 삶을 깊게 합니다. 

끊임없이 찬미와 감사의 기도를 바치게 합니다. 


사실 이런 기도 자체가 낙원의 오아시스요 사막 같은 일상을, 

사막 같은 우리 내면을 낙원의 오아시스로 바꿔줍니다. 

하여 바로 오늘 복음에서도 

주님은 낙심하지 말고 끊임없이 기도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제자들에게 비유를 들려줍니다. 

어떤 형태든 기도는 집요하고 항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수도자들은 이런 청원 기도보다는 찬미와 감사 기도에 항구합니다. 

사실 이런 기도가 건강한 기도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주님의 결론 같은 말씀이 은혜롭고도 심오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방식이 아닌 당신 방식으로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며, 

찬미와 감사의 기도에 항구한 이들에게는 사막 같은 삶을 낙원의 오아시스 삶으로 바꿔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과연 당신이 오실 때 

기도에 항구함으로 믿음을 보여주는 이들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말씀 하시며 

우리의 분발을 촉구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사막 같은 광야에서 하느님을 찾아 나선, 1독서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위하여 길을 나선' 사람들입니다. 

서로 모두가 주님 안에서 형제이자 도반이요, 요한은 이를 '진리의 협력자'로 일컫습니다. 


참 아름다운 말마디, '진리의 협력자'입니다. 

기도에 항구하며 진리의 협력자로 겸손하고 충실히 사랑을 실천하며 살아갈 때 

주님은 우리 모두에게 낙원의 오아시스 삶을 선사하실 것입니다. 


바로 매일의 이 주님의 거룩한 미사은총입니다. 


"행복하여라, 주님을 경외하고, 그분 계명을 큰 즐거움으로 삼는 이!"(시편112,1ㄴㄷ).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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