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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평신도의 사명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16 조회수1,224 추천수11 반대(0) 신고




연중 제33주일
(평신도 주일)




<네가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와서 네 주인과 함께 기쁨을 나누어라.>
+ 마태오 25,14-30





 평신도의 사명


 

평신도는 “성품의 구성원과 교회에서 인정한 수도 신분의 구성원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이 평신도라는 이름으로 이해된다. 곧 세례로써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어 하느님의 백성으로 구성되고, 그리스도의 사제직과 예언자직, 왕직에 자기 나름대로 참석하는 자들이 되어, 그리스도교 백성의 전체 사명 가운데에서 자기 몫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들을”(교회31)말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사명은 현세적 일을 하느님의 뜻에 맞게 관리함으로써 하느님의 나라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신도는 일상생활의 현세적 임무를 자기 생활에서 분리시키지 말고 오히려 맡은 일을 하느님의 뜻대로 계속하면서 그리스도님과 일치를 더욱 깊게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평신도 교령).


 

오늘 복음은 달렌트의 비유를 통해 각기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에 충실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욕심을 내지 말고, 적다고 불평하지도 말고 지금 것에 최선을 다하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넉넉함이 주어지리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달렌트는 각기 다르고 알맞게 주셨습니다. 그것을 잘 사용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할일입니다. 달렌트가 하나이든 둘이든 다섯이든 모두가 다 하느님이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심해야 합니다. 자기에게 주어진 것이 무엇이며 그것으로 어떤 인생을 만들어 갈 것인지를 안다면 그는 행복합니다. 둘을 가지고 둘을 더 벌 수 있었다면 그것으로 감사할 일이며 다섯을 가지고 다섯을 더 벌었으니 이 또한 기쁨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그냥 묵혀버린다면 그것은 결국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더 벌 수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또 주어지게 마련이고 더 벌 수 있음에도 게으름을 피운다면 그의 기회는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주인이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뜻대로 둘을, 다섯을 벌었으니 그는 칭찬 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한 달렌트를 받았으나 별것 아니라고 생각하고 제 생각대로 땅에 묻어 묵혔다면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는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자기 뜻대로 살아가는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삶의 결과는 상을 받기도 하고 벌을 받기도 할 것입니다(마태25,30). 그야말로 얼마나 오래 살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합니다. 양이 문제가 아니라 질이 문제입니다. 주인과 같이 있었으면서도 주인을 무서운 분으로 알고(마태25,24). 두려워 몸을 사렸다면 그것은 결코 주인과 함께 있지 않은 것입니다. 마음이 통할 때 함께 있다고 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 순간 주님의 뜻을 찾고 그에 충실해야 하겠습니다. 자기 뜻대로 하다가는 있는 것마저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 심판을 내리시는 것 같지만 그 이전에 내가 심판을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신을 바짝 차리고 주님께서 주신 달렌트를 잘 활용해야 하겠습니다. “각자의 능력과 시대의 요구에 따라”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를 하느님의 나라로 만들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가르침이 살아있는 삶의 터입니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가운데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로 한발 더 내딛기를 희망합니다. “각자가 받은 은총이 무엇이든지, 그것을 가지고 서로 남을 위해서 봉사 하십시오. 그리하여 하느님께서 주신 갖가지 은총을 잘 관리하는 사람이 되십시오”(1베드4,10). 사랑합니다.



 


제47회 평신도주일(2014년11월16일) 강론 자료


 

우리는 자랑스러운 하느님의 백성입니다.


 

+ 찬미예수님!

형 제자매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러분과 여러분 가정에 하느님의 은총이 충만하기를 빕니다. 오늘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에 따라 우리나라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평협)가 발족되고 “평신도사도직의 날”이 제정된 후 마흔일곱 번째 맞이하는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 주일은 평신도들이 교회 안에서 성직자, 수도자들과 더불어 하느님의 사랑받는 백성임을 재확인하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성화소명을 다짐하는 참으로 뜻 깊은 날입니다. 이날을 주신 하느님께 영광과 찬미와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위대한 신앙 선조를 둔 자랑스러운 평신도들입니다.


올해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성인품에 올리신지 꼭 30년이 되는 해입니다. 이 뜻 깊은 해에 우리는 또다시 프란치스코 교황님을 모시고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의 시복식을 서울 한복판에서 장엄하게 치르는 큰 기쁨을 누렸습니다. 이렇게 두 번씩이나 교황님께서 직접 방문하여 시성식과 시복식을 집전하신 나라는 한국밖에 없습니다. 선교사의 도움 없이 평신도들에 의해 세워진 한국 교회에 하느님께서 내리신 크나큰 축복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늘 기억해야 할 한국 교회의 103위 성인 가운데 93위가 평신도이고 124위 새 복자는 주문모 신부님을 빼고 모두 평신도들입니다. 이 위대한 평신도 신앙 선조들의 후손인 우리들에게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애정 어린 깊은 관심을 아낌없이 보여주셨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한국 교회를 평신도들에게서 시작되어 여러 세대에 걸쳐 충실하고 끊임없는 노고로 크게 자라난 매우 비범한 전통의 상속자들이라고 칭송하셨습니다(8월 14일 ‘한국 주교들과 만남’에서). 그리고 한국 평신도 사도직에 대해 언제나 번창하고 시들지 않는 꽃으로 남아 있을 것이라는 축복의 말씀도 해주셨습니다(8월 16일 ‘평신도 사도직 단체와 만남’에서). 교황님과 함께 했던 8월의 행복감과 기쁨은 마치 예수님을 만난 듯, 아직도 우리 마음 안에 가시지 않는 큰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우리 한국 교회 평신도들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이 얼마나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일인지를 잊고 산 적이 많았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5일이 채 안 되는 짧은 만남을 통해 자랑스러운 하느님 백성이 된 행복과 기쁨을 가슴깊이 느끼게 해주었고, 하느님의 크신 은총에 감사해야 함을 가르쳐주었습니다. 이런 행복과 기쁨은 우리 평신도들이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소명을 다할 때 길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느님 백성으로서 평신도들의 소명의식을 잘 일깨워줍니다. 오늘의 제1독서 잠언 말씀에서 우리는 훌륭한 아내이면서 가난한 이에게 손을 펼치고 불쌍한 이에게 손을 내밀어 도와주는 자비로운 여인을 만납니다. 이 여인은 오늘날 가정과 교회 그리고 세상 안에서 헌신하는 평신도 여성 사도직의 표상입니다. 지난 8월 시복식과 평신도들과의 만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평신도 그리스도인 가정의 소중함을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그때 교황님은 가정에서 어머니로서, 교사와 스승으로서, 또 교회에 많은 공헌을 해 온 한국 가톨릭 여성 신자들에게 감사를 표하셨습니다. 그만큼 이 시대의 가정 복음화와 평신도 여성 사도직의 소명이 중요하다고 여기신 때문일 것입니다. 지난달에 열린 세계주교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와 내년에 열릴 제14차 정기총회의 주제는 ‘가정 사목과 복음화’입니다. 앞으로 가정을 중심으로 한 평신도 사도직, 특히 여성 사도직의 소명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평신도 사도직의 소명이 커질수록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공동체 의식 또한 높아져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우리 모두가 “빛의 자녀이며 낮의 자녀”(1데살 5,5)로서 맑은 정신으로 깨어있어야 하고, 또 서로 격려하고 저마다 남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는 오늘 제2독서의 말씀은 그에 대한 매우 적절한 가르침입니다.


 

오늘의 복음 역시 우리의 주인이신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은사가 열매를 맺고 커가도록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몸을 던져 노력했는지 스스로 묻게 합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일군 결실을 가난한 이웃들과 나누며 키웠는지, 아니면 자신만을 위해 감춰두고 살아왔는지도 오늘의 복음을 통해 성찰해야 할 대목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하느님의 백성이 되려면 신앙심의 외양이나 교회에 대한 사랑의 겉모습 뒤에 숨어서 자기 것만 추구하는 “영적 세속성은 안 된다”(?복음의 기쁨? 93항)고 하신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경고를 늘 마음에 새기고 살아가야 되리라 생각됩니다.


 

한국 사회의 인간 위기 극복에 앞장서는 것은 우리 평신도들의 소명입니다.
제 2차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 12항은 “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따라’ 창조되었고, 창조주를 알아 사랑할 수 있으며 창조주로부터 세상 만물의 주인공으로 설정되어(창세1,26; 지혜2,23) 만물을 다스리고 이용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다(집회17,3-10).”라고 가르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존재인 모든 사람은 외양이 어떠하든 지극히 거룩하고 우리 사랑과 헌신을 받아 마땅하다(?복음의 기쁨? 274항)고 강조하십니다.


 



그런데 오늘날 세상 사람들은 이런 가르침과 너무나 거리가 먼 인간 위기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위기의 원인은 물질적 탐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탐욕에서 비롯한 인간 위기 극복을 강조하시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은행의 투자가 조금 이윤을 잃으면 재난이 일어난 것처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사람이 굶어 죽으면, 먹을 것이 없으면, 건강이 좋지 않으면 이것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위기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의 증거는 이런 정신 상태에 저항하는 것입니다.”(2013년 5월 18일 성령강림대축일 전야 미사 강론에서) 이러한 교황님의 가르침은 ?복음의 기쁨? 회칙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53항, 198항 참조). 교황님께서 한국 방문 중에도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생활의 필수 요소라고 하시는 말씀을 여러 번 반복하여 강조하셨습니다. 우리는 또한 교황님께서 성모승천대축일 미사 강론 중에 한국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 간청하신 기도를 기억합니다. 교황님은 우리가 세례 때 받은 존엄한 자유에 충실하고, 하느님의 계획대로 세상을 변모시키려는 노력을 이끌어주시도록 간청하셨습니다. 한국 교회가 하느님 나라의 누룩으로 더욱 부풀어 오르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은 사회 모든 영역에서 정신적 쇄신의 힘이 되어 물질주의 유혹과 이기주의적 무한 경쟁 풍조에 맞서 싸우기를 교황님은 빌었습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 모델들을 거부하며, 하느님과 하느님의 모상을 경시하고 모든 인간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죽음의 문화를 배척하기를 빌었습니다.

이 기도는 인간 위기의 시대를 사는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특히 교황님은 한국 평신도들에게 “인간 증진”에 힘쓸 것을 당부하셨습니다. 인간 증진이란 바로 인간의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성 회복입니다. 하느님의 모상성 회복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오늘날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일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절망과 좌절 속에서 하느님의 모상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부끄럽게도 한국의 자살 증가율은 세계 2위이고 OECD 국가 가운데서는 매년 1위라고 합니다. 우리 평신도들이 자랑스러운 하느님의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이런 절망에 빠진 이웃들에게 희망을 줌으로써 잃어버린 하느님의 모상성을 회복시켜 주는 삶입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124위 복자에 포함된 천민 출신인 김천애 안드레아와 황일광 시몬 두 분 순교자가 그것을 입증합니다. 황일광 복자는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젊잖게 대해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증언을 남겼습니다. 잃었던 하느님의 모상성을 회복한 기쁨의 증언입니다.

이 땅에 인간의 위기가 만연한 이 시대야말로 우리 평신도들이 위대한 신앙 선조들을 본받아 진정한 하느님의 모상성을 회복시키는 삶의 실천에 앞장서야 할 때입니다. 이 실천적 삶은 긴 여정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복음의 기쁨?(49항)에서 선포하신 것처럼, 우리 모두 함께 이 여정에 나서 “이제 출발합시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랑스러운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고하게 자각하고 있는 한, 성령께서 이끌어주시는 우리의 발길은 가벼울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 이후 우리 교회를 찾는 이들과 마음을 돌려 다시 교회로 돌아오는 냉담자들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그들이 교회로 돌아오도록 마음을 움직여주신 하느님께 감사하며 우리가 먼저 친절하게 형제자매들을 맞이하면 어떨까요? 고맙습니다.


 

2014년 11월 16일

한국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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