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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17 월/ 사랑을 품은 나의 예루살렘 여정/ 기경호(프란치스코) 작은형제회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17 조회수1,122 추천수5 반대(0) 신고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기념 루카 18,35-43(14.11.17)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사랑을 품은 나의 예루살렘 여정  

 
    오늘 복음의 바로 앞 대목에서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다

    (18,31-34). 수난을 목전에 둔 예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에게 시선을

    향했다.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길가에서 구걸을 하던 눈먼 이가

    그분께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18,38). 앞서 가던 이들이 그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는 더욱 큰 소리로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18,39). 예수님께서는 걸음을 멈추어,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는지 물어본 다음 ‘다시 보아라’ 하시며 고쳐주셨다. 그리스-로마

    양식의 화려한 건물들이 즐비했던 예리코의 풍경과 길가에 주저앉아 자비를 청하는

    소경의 처지가 극단적 대비를 보여준다. 예수께서 소경을 고쳐주신 것은 단지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이 극단적 대비를 이루는 삶의 실존 상황에서 그분의 선택이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다. 일상의 삶에서 나의 선택은?

    더 낮은 곳으로....

    예수님은 오직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을 보여주시려고 갈릴래아에서의 행적과

    말씀 선포 뿐 아니라 수난의 여정도 죽음도 부활도 받아들이셨다. 그분의 눈길은

    사랑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로 향했다. 예수님께서는 수난을 향한 구원의 여정을

    가시면서도 길가에 버려진 이들을 보고 계셨고, 군중의 환성에 잘 들리지도 않고

    보이지도 않은 이들의 구원의 외침을 ‘멈추어’ ‘다가가’ 들어주셨다. 그분은 이 모든

    이들을 관대하게 받아들이시는 한없는 사랑을 보여주셨다. 오늘 기념하는 재속

    프란치스코회의 수호성인인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은 안락하게 살 수 있는 공주의

    신분이었다. 그럼에도 성녀는 “자기 것처럼 보이는 것은 자기 것이 아니고 모두

    가난한 이들의 것이라”(영적지도신부 콘라트의 편지)고 하면서, 가난하고 고통 받고

    굶주린 이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우리네 삶이 영적으로 영글어가려면 세상의 어떤 기준도 뿌리치고 예수님의 이런

    처신과 말씀에 굳건히 뿌리내리고 그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지상순례가

    우리 모두를 하늘나라로 이끄셨듯이, 우리도 일상의 모든 움직임이 하느님을 품은

    천상순례가 되도록 하여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 인생이 곧 예루살렘을 향한 순례이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사랑하라. 그리고 원하는 대로 하라!”(Dilige et quod vis face!)고 

    하였다. 나의 말과 행위, 눈빛, 보이지 않는 배려, 봉사, 고통 중에 인내함, 오해와

    험담 앞에서의 견딤, 시련 중의 기다림, 실패 체험 등 인간사 모든 순간에도, 사랑을

    품고, 보고, 받아들이고, 견디고 기다리면 ‘사랑을 낳는다’는 말이다. 나에게 주어지는

    24시간 동안 사랑이신 하느님 앞에서 그분의 사랑을 품고 살아간다면 매순간이

    기적이 되고 치유를 불러일으키지 않겠는가!

    나 자신과 내가 만나고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을 사랑으로 치유하고 행복하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멈추어야’ 한다. 자신을 하느님 앞에 두기 위하여, 하느님의 사랑을

    내 안에 모셔 들이기 위하여 멈추고, 애정 어린 눈길로 다른 이들의 아픔과 한숨

    소리를 보고 듣기 위하여 멈추도록 하자. 멈추는 것은 창조의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중요한 사랑의 행위이다. 하느님께서는 사랑으로 세상과 인간을 지으신

    다음 ‘쉬셨다.’ 우리 삶 전체는 하느님을 노래하는 악기가 되고, 하느님을 반영하는

    거울이 되며, 그분의 말씀을 삶으로 들려주는 ‘사랑의 메아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려면 나의 생각과 나의 원의에 따른 발걸음을 ‘멈추어야’ 한다. 예수님의

    수난의 여정은 ‘사랑의 멈춤’의 고리를 이어가는 영원의 호흡이었다.

    우리도 너무나도 바쁜 일상을 멈추어 이 호흡 안으로 들어가자!

    예수께서 병자를 치유해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시자 군중들은 열광했다. 그들은 바로

    눈앞에 오신 하느님이시며 생명이신 예수님을 보기보다는 자신들의 육신적 자유와

    외적인 성공에 대한 헛된 기대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인간은 인류를 구원

    하시려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께 길가에 주저앉아 자비를 청하는 가난한

    소경과 같은 처지에 있다. 우리는 아무리 해도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쟁이’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 기본을 망각할 때 교만이 용솟음쳐 영성생활은 물론

    삶 전체가 전복되어버릴 것이 뻔하다. 오늘도 발걸음을 멈추고, 겸허히 하느님께

    자비를 청하면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이들에게로 다가가 ‘더 내어주고 더 나누는’

    일상의 예루살렘 순례를 시작하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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