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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구원의 길 -주님을 찾음, 만남, 따름-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17 조회수1,240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김명준님의 사진.




2014.11.17. 월요일(뉴튼수도원 7일째), 헝가리의 성녀 엘리사벳 수도자(1207-1231) 기념일,            요한묵1,1-4.5ㄴ;2,1-5ㄱ 루카18,35-43


                                                                                                       

구원의 길

-주님을 찾음, 만남, 따름-


길잃은 사람들로 가득한 잉여사회 같습니다. 

나이들어 갈수록 길잃은 이들은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거리마다 가득한 사람들 대부분 길 잃은 사람들 같습니다. 


아예 길에 대한 의식 없이, 내가 누구인지 모르며 살아가는 이들도 많을 것입니다. 


1길잃은 사람들, 2길을 찾는 사람들, 3길을 찾은 사람들 -


이렇게 세 부류의 사람들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과연 우리는 어디에 해당됩니까? 


'길이 없다' '길이 막혔다' '길을 잃었다', 이런 절망적 상황이라면 참 답답할 것입니다. 


누구나 끝없이 난 길을 보노라면 저절로 마음이 활짝 열리는 느낌일 것입니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생각도 들 것입니다. 


길(道)과 사람(人)은 분리할 수 없는 관계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복음 서두의 '길가에 앉아 구걸하는 눈 먼'이가 상징하는 바, 

신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불쌍한 현대인들 같습니다. 


아, 눈은 떴다 해도 눈 먼 걸인들로 가득한 세상입니다. 

밖으로는 부요하고 행복해 보여도 내면은 잘 들여다 보면 모두가 가난한 눈먼 걸인들입니다. 

도대체 기쁨도 자유도 없는, 불행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길이 상징하는 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파멸로 이르는 죽음의 길, 거짓의 길이 아닌, 

구원에 이르는 생명의 길, 진리의 길은 오직 하나 주님뿐입니다. 


오늘은 '구원의 길'에 대한 묵상 나눔입니다.


첫째, 주님을 찾으십시오.


길이신 주님을 찾으십시오. 

우리 삶은 평생 주님을 찾는 여정입니다. 

길을 찾지 않으면 누구나의 가능성이 눈 먼 걸인입니다. 


오늘 복음의 길가에 앉아 있는 눈먼 걸인에겐 길이신 주님을 찾는 열정이 있습니다. 

눈은 멀었지만 주님을 찾는 열정에 '마음의 귀'는 활짝 열려 있었던 눈 먼 걸인입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


간절히 갈망하여 찾을 때 주님은 나타나십니다. 

갈망에 늘 귀가 열렸던 눈 먼 걸인의 반응이 참으로 신속합니다.


"예수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이보다 간절하고 절실한 기도는 없습니다. 

전존재의 기도요 간절한 믿음의 표현입니다. 


잠자코 있으라 꾸짖는 이들의 말림에 아랑곳 없이 재차 소리치는 눈먼 걸인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바로 우리가 미사 시작하면서, 또 성체를 받아 모시기 전 바치는 자비송입니다. 

과연 우리는 이런 간절한 마음으로 자비송을 바치는 지요. 


여기에 바탕한 동방수도승들이 숨쉬듯이 끊임없이 바쳤던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기도'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주 예수 그리스도님, 죄인인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둘째, 주님을 만나십시오.


길이신 주님을 간절히 찾을 때 주님을 만납니다. 

만일 주님을 찾는 열정이 없었더라면 주님을 찾지도 않았고, 하여 주님은 그냥 지나가셨을 것입니다. 

주님을 만날 때 활짝 열리는 마음의 눈이요 어뒀던 '마음의 길눈'도 밝아 집니다. 


자비하신 주님이십니다. 

불쌍한 눈먼 걸인의 간절한 기도에 즉각 응답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데려 오라고 분부하셨다.‘

라는 대목이 얼마나 은혜롭고 고마운지요. 


사막같은 막막한 세상에서 길이신 주님을 찾아 만난 눈먼 걸인입니다. 

예수님과의 대화가 선승(禪僧)들의 선문답 같기도 하고 

옛 사막 수도승을 찾았던 구도자와 주고 받은 문답을 연상케 합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주님의 본질적인, 단답을 요구하는 질문입니다. 

눈먼 걸인의 대답 역시 전광석화, 지체함이 없습니다.


"주님, 제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간절하고 절실한 믿음이, 소망이 응축되어 있는 요청입니다. 

역시 구도자인 우리의 소망 역시 이것 하나뿐입니다. 


제대로 보지 못해 자초하는 온갖 불행들입니다. 

주님의 즉각적인 구원의 응답입니다.


"다시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말도 글도 기도도 간절하고 절실할수록 짧고 순수한 법입니다.


셋째, 주님을 따르십시오.


주님을 만남으로 끝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을 따라 길을 나서는 내적여정에 올라야 합니다. 


주님을 따라 내적여정에 오르지 않을 때 기다리는 것은 나태와 권태의 '일상의 늪'입니다. 

주님을 찾아 내적여정의 길에 오를 때는 맑게 흐르는 강물에 맑은 향기이지만 

주님을 따라 나서지 않을 때는 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에 악취의 내적현실입니다. 


주님의 권능의 말씀에 다시 보게 된 눈뜬 걸인은 주님을 따라 나섭니다. 

'그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랐다.‘


주님을 만남으로 운명이 바뀐 눈 먼 걸인입니다. 

마치 개선장군이나 된 듯 찬양의 기쁨 가득한 모습으로 주님을 따라가는 눈뜬 걸인입니다. 

하느님을 찬양하며 예수님을 따라 가는 삶보다 행복한 삶은 세상 어디에도 없습니다.


주님을 찾고, 만나고, 따르는 여정은 그대로 회개의 여정입니다. 

주님은 요한을 통해 우리 모두에게 회개를 촉구하십니다.


"너는 인내심이 있어서, 내 이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지치는 일이 없었다. 

그러나 너에게 나무랄 것이 있다. 

너는 처음에 지녔던 사랑을 저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네가 어디에서 추락했는지 생각해 내어 회개하고, 처음에 하던 일들을 다시 하여라.“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회개한 우리 모두에게 처음 지녔던 사랑을 회복시켜 주시고 마음의 눈을 열어 주시어, 

하느님을 찬양하며 당신을 따라 살게 하십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8,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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