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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님과 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18 조회수1,227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1.18. 연중 제33주간 화요일(뉴튼수도원 8일째), 
요한묵3,1-6.14-22 루카19,1-10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예수님과 나

어제와 오늘의 복음이 은혜롭고 흥미로우며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제의 주인공인 눈먼 걸인과 오늘의 주인공은 자캐오는 둘다 
우리 가난하고 불쌍한 인간 존재를 상징합니다. 
모두가 나름대로 열등감과 내적 상처를 지닌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어제 여기서 묵묵히 살아가는 수사님들을 보는 순간, 
소유의 유무를 떠나 존재자체가 가난임을,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일 때 수도자답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도대체 보이는 희망 하나 없는 사막 같은 수도원에서,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 
하느님 때문에 그냥 살고 있다는 자체가 고맙고 또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때로 형제들이 힘들고 부족하여 보여도 
'연민(compassion)'의 대상이 될 지언정 
결코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절감했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찾는 사람이자 참 내 얼굴을 찾는 사람입니다. 

어제 눈먼 걸인은 주님을 열망했고, 
오늘 작은 키의 자캐오는 
주님을 보고 싶은 열망에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바로 주님의 얼굴은 참 내 얼굴이기에 
주님을 봄으로 참 내 얼굴을 찾기위한 본능적 행동임을 깨닫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주님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주님의 얼굴은 참 내 얼굴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함은 바로 내 얼굴을 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주님을 봄으로 참 나를 보라 있는 우리의 눈입니다. 
눈이 있어도 주님을, 참 나를 보지 못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어제 복음의 눈먼 걸인 대신, 또 오늘의 자캐오 대신 
내 이름을 넣어 묵상해보십시오. 
이보다 더 좋은 렉시오 디비나 묵상도 없습니다. 

내 상처와 열등감을 통해 
내 가난하고 불쌍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 없는 눈먼 걸인을, 예수님 없는 자캐오를 상상할 수 없듯이, 
예수님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나는 둘이자 하나임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영원히 반쪽 얼굴이자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함은 
바로 내 반쪽인 주님을 찾는 갈망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영원히 결핍된 반쪽 존재인 인간일 뿐입니다. 
하여 주님의 얼굴을 찾아, 내 얼굴을 찾아 미사에 참석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을 만나 하나될 때 온전한 나의 실현입니다. 
성인들은 모두 주님과의 일치로 제 얼굴을 찾은 분들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자기를 찾은 눈먼 걸인이듯 
오늘 자캐오도 주님을 만남으로 잃었던 자기를 찾았으니 
바로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런 구원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제집에 기쁘게 맞아들임으로 온전히 주님과 하나된 자캐오입니다. 
그대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이어 자캐오의 자발적 회개의 응답이 뒤따릅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주님을 만나 구원의 기쁨으로 가득 채워짐으로 모든 내적 상처는 치유되고 
이제 소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참 부자 자캐오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캐오에게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구원하러 왔다.“

우리 잃은 이들을 모두 구원하러 오신 주님은 
우리 문 밖에서 두드리며 우리의 환대를 촉구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자캐오처럼 우리 모두 마음 문을 열어 주님을 환대함으로 
잃었던 나를 찾는 구원의 시간입니다.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시편16,11). 

아멘.


2014.11.18. 연중 제33주간 화요일(뉴튼수도원 8일째), 요한묵3,1-6.14-22 루카19,1-10


                                                                                                             

예수님과 나


어제와 오늘의 복음이 은혜롭고 흥미로우며 깊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어제의 주인공인 눈먼 걸인과 오늘의 주인공은 자캐오는 

둘다 우리 가난하고 불쌍한 인간 존재를 상징합니다. 

모두가 나름대로 열등감과 내적 상처를 지닌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저는 어제 여기서 묵묵히 살아가는 수사님들을 보는 순간, 

소유의 유무를 떠나 존재자체가 가난임을, 

초라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일 때 수도자답다는 것을 새롭게 깨달았습니다. 


도대체 보이는 희망 하나 없는 사막 같은 수도원에서,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 하느님 때문에 그냥 살고 있다는 자체가 고맙고 또 기적처럼 느껴졌습니다. 


때로 형제들이 힘들고 부족하여 보여도 

'연민(compassion)'의 대상이 될 지언정 결코 '판단'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절감했습니다. 


주님의 얼굴을 찾는 사람이자 참 내 얼굴을 찾는 사람입니다. 


어제 눈먼 걸인은 주님을 열망했고, 

오늘 작은 키의 자캐오는 주님을 보고 싶은 열망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바로 주님의 얼굴은 참 내 얼굴이기에 

주님을 봄으로 참 내 얼굴을 찾기위한 본능적 행동임을 깨닫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주님은 나를 비춰주는 거울입니다. 

주님의 얼굴은 참 내 얼굴입니다. 

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 함은 바로 내 얼굴을 보고 싶은 까닭입니다. 


주님을 봄으로 참 나를 보라 있는 우리의 눈입니다. 

눈이 있어도 주님을, 참 나를 보지 못하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어제 복음의 눈먼 걸인 대신, 또 오늘의 자캐오 대신 내 이름을 넣어 묵상해보십시오. 

이보다 더 좋은 렉시오 디비나 묵상도 없습니다. 


내 상처와 열등감을 통해 내 가난하고 불쌍한 실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 없는 눈먼 걸인을, 예수님 없는 자캐오를 상상할 수 없듯이, 

예수님 없는 나를 상상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 나는 둘이자 하나임을,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면 영원히 반쪽 얼굴이자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그러니 주님의 얼굴을 보고 싶어함은 바로 내 반쪽인 주님을 찾는 갈망입니다. 


주님을 만나기 전까지 우리는 영원히 결핍된 반쪽 존재인 인간일 뿐입니다. 

하여 주님의 얼굴을 찾아, 내 얼굴을 찾아 미사에 참석하는 우리들입니다. 


주님을 만나 하나될 때 온전한 나의 실현입니다. 

성인들은 모두 주님과의 일치로 제 얼굴을 찾은 분들입니다. 


주님을 만남으로 자기를 찾은 눈먼 걸인이듯 

오늘 자캐오도 주님을 만남으로 잃었던 자기를 찾았으니 바로 이것이 구원입니다. 


이런 구원의 기쁨보다 더 큰 기쁨은 없습니다. 


예수님을 제집에 기쁘게 맞아들임으로 온전히 주님과 하나된 자캐오입니다. 

그대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이어 자캐오의 자발적 회개의 응답이 뒤따릅니다.


"보십시오,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


주님을 만나 구원의 기쁨으로 가득 채워짐으로 

모든 내적 상처는 치유되고 이제 소유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 참 부자 자캐오입니다. 


주님은 이런 자캐오에게 구원을 선언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구원하러 왔다.“


우리 잃은 이들을 모두 구원하러 오신 주님은 우리 문 밖에서 두드리며 우리의 환대를 촉구하십니다.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목소리를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의 집에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그도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바로 이 거룩한 미사시간, 

자캐오처럼 우리 모두 마음 문을 열어 주님을 환대함으로 잃었던 나를 찾는 구원의 시간입니다.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시편16,11).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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