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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19 조회수1,073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1월 19일 연중 제33주간 수요일
 
Well done, good servant!
You have been faithful in this very small matter;
take charge of ten cities.
(Lk.19,17)
 
 
제1독서 묵시 4,1-11
복음 루카 19,11ㄴ-28
 

어떤 기업에서 서울 1호선 전철 안에 예쁘게 포장된 선물과 꽃다발이 든 종이가방 100개를 놓아둔 뒤에 몰래카메라를 찍었습니다. 즉, 이 종이가방이 몇 개나 다시 회수되는지를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의 정직함을 알아보자는 것이었지요.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몰래카메라에 찍힌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이 종이가방에 큰 관심을 보였고, 실제로 사람들은 자신의 것이 아닌 이 종이가방을 들고 전철에서 내리는 것입니다. 실망스러운 모습이 계속 영상에 찍혔습니다.

결국 하루 동안 100개 중에서 94개의 종이가방이 사라졌고 남은 것은 불과 6개에 불과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의 정직함이 겨우 이 정도일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극적인 반전이 이루어졌습니다. 그 다음날 전철의 유실물 센터에 자그마치 81개가 접수된 것입니다.

정직하지 않은 사람보다는 정직한 사람이 훨씬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었습니다. 조금의 이득만을 주는 순간의 만족보다는 마음의 평화를 얻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입니다.

정직한 삶을 포기할 때 사실은 잃어버리는 것이 더 많습니다. 문제는 순간의 만족을 더욱 더 크게 생각하다보니 후회할 일을 만들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는 주님을 따르는 삶 안에서도 역시 똑같이 적용됩니다. 주님을 따르는 삶이 괜히 손해 보는 것 같고, 어리석은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삶은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며, 하늘의 커다란 보화를 쌓게 되는 엄청난 이득을 가져다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미나의 비유를 통해서 이를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열 명의 종에게 한 미나씩을 나눠주지요. 종들은 이 한 미나를 통해 열 개를 또 다섯 개를 벌어 옵니다. 하지만 한 명의 종은 이 한 미나를 수건에 싸서 보관한 뒤에 나중에 그대로 가지고 옵니다. 그렇다면 종의 임무는 무엇일까요? 주인이 준 돈을 통해 사업을 해서 주인의 곳간을 채워 들이는 역할일까요?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인은 벌어들인 미나를 자신의 곳간에 채우는 것이 아니라 고스란히 되돌려 주셨기 때문입니다. 바로 주인의 삶에 동참하느냐 그렇지 않느냐 만이 중요한 것이었지요.

미나를 받아 사업을 벌인 종들의 모습을 간직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능력과 힘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일하면서 주님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삶이야말로 주님께 충실한, 즉 주님께 정직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미나를 통해 열 개, 다섯 개로 벌어들인 종이 열 고을,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한을 받았음을 기억하면서, 우리 역시 주님의 뜻을 철저히 따라야 합니다. 내가 얻게 될 은총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 큽니다.

남에게 선행을 하는 것은 의무가 아니라 기쁨이다. 그것은 그렇게 하는 사람의 건강과 행복을 증진시킨다(조로 아스터).


 

안일한 마음 몰아내기.

어떤 할아버지가 감독하는 가운데, 한 젊은이가 높은 나무에 올라가서 나무 가지를 자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위험할 만큼 높이 올라가 있을 때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다가, 일을 다 끝내서 거의 내려왔을 때 “잘못 디디지 말고, 주의해서 내려오게.”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젊은이는 “위험한 높이에 있을 때에는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다가, 그냥 뛰어내려도 아무런 상관이 없을 높이에 이르러서야 그런 말씀을 하세요?”라고 웃으며 물었지요. 그러자 이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가지가 휘청거리고 눈앞에 아찔할 때는 누구나 스스로 조심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지. 그런데 실수란 아무것도 아니라고 여길 때 일어나기 마련이거든.”

이 이야기가 크게 와 닿습니다. 아마 운전하시는 분들은 이런 경험들을 한 두 번은 하셨지 않을까 싶네요. 초보 운전 때에는 사고가 잘 나지 않습니다. 운전이 미숙하기 때문에 그만큼 조심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주로 사고가 날 때는 언제라고 해요? 이제 운전이 익숙해지면서 여유가 생길 때입니다.

안일한 마음이 사고도 불러일으키는 법이지요. 신앙인들도 이렇게 안일한 마음을 품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바로 어느 정도의 신앙심을 갖추었다고 생각될 때입니다. 이때는 사랑보다는 판단하고 단죄하는데 더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과연 이런 모습을 주님께서 좋아하실까요?

주님께서 좋아하실 모습은, 안일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니라 당신께 항상 충실한 모습. 사랑의 실천에 너그러운 우리의 모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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