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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20 조회수1,719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1월 20일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As Jesus drew near Jerusalem,
he saw the city and wept over it, saying,
“If this day you only knew what makes for peace?
but now it is hidden from your eyes.
(Lk.19,41-42)
 
 
제1독서 묵시 5,1-10
복음 루카 19,41-44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지금 위치의 반대 방향으로 돌아선 후에 10초 동안 눈을 떠서 여러분의 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뒤돌아서서 여러분 시야에 들어왔던 것들의 목록을 종이에 적어 보시길 바랍니다. 어때요? 해 보셨습니까? 그러면 이제 다시 10초 동안 봤던 곳으로 다시 돌아서서 여러분이 직접 적은 목록과 실제 물건들을 비교해 보시길 바랍니다. 어떻습니까? 10초 동안 보고 적은 목록과 실제 물건들이 일치합니까?

저 역시 이를 그대로 해 보았고, 사람들에게도 시켜 보았습니다. 그런데 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을 봤을 때, 실제 물건과 직접 적은 목록이 일치하지 않더군요. 분명히 직접 봤지만, ‘보지 못한 사물’이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직접 보았다고 해서 정확하게 봤다고는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 인간의 한계로 인해서 정확하게 보기가 힘들지도 모릅니다. 또한 우리의 기억력 역시 한계가 있습니다. 그 많은 물건들을 보기는 했지만, 그 물건들을 다 외우기란 우리의 기억력과 관찰력에 문제가 있음을 깨닫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간은 부족함 그 덩어리입니다. 많은 것을 보고 있지만, 정확하게 보지는 못합니다. 그런데도 본 것 그 자체만으로 진실이라고 주장하고, 그로 인해 다툼을 일으키는 경우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더군다나 앞일을 전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욱 더 인간의 부족함은 배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도성을 보고 우십니다. 단순히 먼 훗날 있을 성전파괴의 장면을 떠올리고 우시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성전이 성전의 본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성전이 정화되고 그로 인해 하느님께서 함께 하시는 거룩한 곳이 될 수 있는데, 이 성전이 오히려 예수님을 제거하는 장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이 세상이 이미 온 하느님 나라를 완성시키기 위해 나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죄와 악에 물들어 점점 타락하는 곳이 되기 때문이지요. 그로인해 구원받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것에 대한 슬픔인 것입니다.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모두 보시는 예수님의 슬픔입니다. 우리 인간들을 너무나 사랑하시는데 그 인간들의 타락으로 인해 점점 구원의 길에서 멀어지는 것에 대한 슬픔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의 이 뜻을 바라보지 못합니다. 지금이라도 당장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아가면서 주님의 마음에 드는 생활을 해야 할 텐데, 순간의 만족과 쾌락을 추구하면서 주님의 뜻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슬픔이 혹시 내 자신을 바라보고 하시는 것이 아닐까 라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제는 교만과 이기심을 떨쳐버리고 대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갈 때, 이제 슬픔보다는 기쁨을 주님께 봉헌할 수 있을 것입니다.

때때로 우리가 작고 미미한 방식으로 베푼 관대함이 누군가의 인생을 영원히 바꿔 놓을 수 있다(마가릿 조).


 

인생이란(‘좋은생각’ 중에서)

한 젊은이가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왔다. 젊은이는 연이은 시련과 아픔에 몹시 지친 상태였다. 집에 오면 소파 위에 쓰러져 잠들곤 했는데 이대로 영원히 눈감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했다.

어느 날 꿈속에 ‘어둠의 사자’가 나타났다. 그는 잡히지 않으려고 도망쳤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쉬지 않고 달렸다. 그래도 어둠의 사자는 바로 앞에 있었다.

방향을 바꿔 다른 길로 내달렸다. 숲 속에 몸을 숨겼지만 어둠의 사자는 언제나 눈앞에 서 있었다. 결국 젊은이는 체념하고 고개를 들어 보았다. 그런데 어둠의 사자인 줄 알았던 그의 목에는 이런 팻말이 걸려 있었다.

“인생”

‘인생’이라는 팻말을 걸고 있는 그가 말했다.

“당신이 아무리 도망치고 숨어도 나에게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피하려고만 하는 당신에게 내가 어떻게 귀한 선물을 주겠습니까? 나는 껴안고 어울려야 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어깨동무해야 내가 당신에게 좋은 선물을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잠에서 깬 젊은이는 그제야 깨달았다. 인생이란 도망치고 거부할 것이 아닌 껴안고 즐거워해야 하는 것임을....

나의 인생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주님께서 주신 나의 인생을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기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는 우리의 모습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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