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22 조회수1,159 추천수1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가해 그리스도 왕 대축일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


복음: 마태 25,31-46






그리스도(Young Jew as Christ)


렘브란트 작, (1656), 베를린 국립 박물관


     <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

 

  

G. 로핑크는 그의 책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에서 인도에서 보내온 선교소식을 하나 인용합니다.

방갈로레에 있는 실베푸라라는 시골의 본당신부는 선교정신이 투철한 사제다. 독일 돈으로 그는 자동차를 한 대 사서, 본당 일이 끝난 저녁이면 이웃 마을들을 찾아 다닌다. 장터에 차를 세워놓고 어린이들과 쉬는 농부들을 모아들여 영화를 보여주거나(그의 자동차에는 영사기가 장치되어 있다) 간단한 마술을 연출한다. 그러고는 그리스도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어느 날 저녁, 힌두교도인 한 노인이 일어서서 말했다: ‘신부님,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신부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듣고 있노라니 흥미 있고 정말 경외심이 일어나는군요. 우리는 그리스도를 좋아합니다. 그리고 둘도 없는 인간으로 또 신으로 존경합니다. 그럴 시간이 있고 너무 피곤하지 않을 적에는 성경도 즐겨 읽습니다. 하지만, 감히 말씀드리겠는데, 그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 신자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 신부님 본당의 신자들이 어디 우리가 모르는 사람들입니까? 그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우리가 몰라요? 저들에게도 옥신각신 반목질시하고, 술 퍼먹고 주정부리고, 거짓말하고, 그런 일이 좀 많습니까? 그 사람들이라고 우리보다 낫게 살고 있달 것 없지요.’ 실베푸라의 본당신부에게서 들은 이야기이다.”

[G. 로핑크,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분도 1993, 238-239]

 

오늘은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이고 그리스도왕 대축일로써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심판자로 와서 우리를 심판하시게 되는 때를 미리 묵상하며 준비하는 날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시는 날 양과 염소를 나누어 양은 천국으로 염소는 영원히 벌 받는 곳으로 보내겠다고 하십니다.

구원받은 양들은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 많은 일을 해 주었지만 그 일들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억지로 해 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떤 엄마가 아이 기저귀 갈아준 숫자를 세고 있고 밥을 해 준 가격을 따지고 있겠습니까? 내가 해 준 선행을 기억한다는 것은 참 사랑으로 한 것이 아닌 다른 이기적인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선행은 자기도 모르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디 태양이 우리에게 많은 일을 해 주고 있다고 그 보상을 원합니까? 자기가 뜨거운 게 좋으니 그렇게 타고 있는 것이고 우리는 그 혜택을 볼 뿐입니다.

내가 하는 일이 선행인지는 모르더라도 교회에 속한 이들은 삶 자체가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어쨌거나 구원받는 이들은 자신들도 모르게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예수님처럼 대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돈을 좋아하여 불쌍한 이들을 돕지 못한다면 구원에서는 일단 제외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위에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데도 끝까지 부자로 남아있는 이들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는 것처럼 하늘나라에 들어가기가 불가능하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신국론에서 세상과 교회를 치비따스 떼레나(Civitas terrena: 지상국)’ 그리고 치비따스 데이(Civitas dei: 신국)’로 지극히 대비되는 나라로 분리함으로써 하느님백성이 이 세상의백성과 서로 반대되는 색깔을 지닌 대조사회로 여겼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글들을 잠깐 인용합니다.

“‘지상국은 신들을 마음대로 만들어내는데, ‘신국은 참 하느님에 의하여 만들어진다. ‘지상국에서는 자기 자신에게로 향하는 사랑이 지배하는데, ‘신국에서는 자기 자신에게서 나아가는 사랑이 지배한다. ‘지상국은 다툼과 전쟁이 사무쳐 있고 거기서는 평화란 이차적으로만 가능한, 즉 전쟁을 통하여 달성되는 지극해 깨뜨려지기 쉬운 평화일 따름인데, ‘신국은 반면에 영원한 참평화가 있다. ‘지상국은 지배권을 탐하는데, ‘신국에는 겸손과 돌봄과 순종만이 존재한다.”

[G. 로핑크, 예수는 어떤 공동체를 원했나?, 분도 1993, 300]

 

다시 말하면 세상은 각자가 만들어낸 하느님을 섬깁니다. 돈을 섬기고 명예나 성공이나 애정 등을 섬깁니다. 이것들이 자신들이 만들어 낸 신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백성은 오직 주님의 명령대로만 살 뿐입니다. 또 세상은 먼저 자신의 이익부터 챙기지만 하느님나라 백성은 이웃의 이익부터 먼저 챙깁니다. 또 세상은 서로 경쟁하여 이겨서 평화를 얻으려하지만 하늘나라 백성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는 것 하나만으로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평화를 누립니다. 세상은 권력을 탐하여 서로 높아지고 서로 많이 가지려고 하지만 하느님나라 백성은 겸손한 모습으로 하느님께 순종하여 이웃을 돌보는 이들이라는 뜻입니다.

가끔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플라톤적 이원론을 물려받아 종교를 지나치게 이원론으로 만들어버렸다고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천국과 지옥이 대조되는 것처럼 하느님나라와 이 세상과 대조되어야 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아 구별된 이들의 모임입니다. 다시 말하면 구별되지 않으면 망하고 만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노아를 부르십니다. 평생 배를 만들도록 하십니다. 어마하게 큰 배를 육지에서 만듭니다. 세상에서 바보취급을 받게 하십니다. 그러나 홍수로 세상을 뒤덮어버리심으로써 그렇게 세상과 구분되는 삶을 살아야만 구원될 수 있음을 보여주셨습니다. 마지막 날에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하느님은 잘 살고 있는 아브라함을 부르십니다. 그래서 자신의 민족들과 떼어놓습니다. 아브라함은 영문도 모르고 알지도 못하는 이국땅으로 길을 떠납니다. 이것이 부르심입니다. 응답하지 않으면 그래서 구별되지 않으면 거기와 함께 끝나고 마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또한 롯을 부릅니다. 롯이 나오자 소돔은 불바다가 되었습니다. 나오기는 하지만 아직도 그 세상에 미련이 남아있는 롯의 아내는 소금기둥이 되어버려 다시는 주님의 말씀을 따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거기서 끝나버리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하느님나라와의 사이에서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의 미래입니다.

세상의 모든 역사가 그렇습니다. 뜨겁거나 차거나입니다. 미온적인 반응을 보였던 라오디케이아 교회를 나무라셨습니다. 우리는 선택해야합니다. 세상인지 하느님나라인지, 염소의 삶인지 양의 삶인지 확실히 결정해야합니다. 구원은 결코 편하게 오지 않습니다. ‘좁은길이란 힘든 삶을 선택한 사람들이 가는 구원의 길입니다. 가시밭길이여서 큰 결심을 하지 않으면 다시 편한 길을 원하게 됩니다. 지금은 결단이 필요한 때입니다.

 

19851114, 전재용 선장이 이끄는 참치 원양 어선 광명 871년 동안의 조업을 마치고 부산항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남중국해를 지날 무렵 SOS를 외치는 조그만 난파선을 발견하게 됩니다. 난파선 위에는 96명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정도로 서로 엉겨있었습니다. 어선 회사로 전화해 보니 상관하지 말고 그냥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 선장은 그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3일 동안 아무 것도 먹지 못한 상태로 표류하던 베트남인들이었습니다. 전 선장은 회사의 방침을 어기고 그들을 끌어올립니다. 선원 25명이 도착할 때까지 먹을 10일치 식량밖에 없었지만 그것들을 96명과 함께 나누어 먹습니다. 그리고 음식이 떨어지자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참치 잡은 것이 많이 있으니 그것을 먹으며 버티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여성과 아이들에게 먼저 선원들의 침실을 배정하고 노환자와 병자들은 선장실에서 치료를 해 주었습니다.

이 사실이 알려지게 된 것은 당시 부산에 도착하여 난민소에서 1년 반을 수용되어 있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간호사가 된 피터누엔이 19년 만에 전재용 선장을 찾으면서부터였습니다.

수소문 끝에 전 선장의 편지를 받았습니다. 전 선장은 그 일로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회사에서 퇴사 통지를 받았고 그 이후에도 어떤 해운 회사에서도 그를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가난한 양식업자로 통영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될 것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자신이 한 생동에 대해 단 한 번도 후회해 본 일이 없다고 적었습니다.

전 선장은 20048, 자신이 구조해 준 많은 베트남 인들의 환영을 받으며 미국 공항에 도착하게 됩니다. 우리도 전 선장처럼 이웃에게 우리 자신을 내어주는 세상과는 대조되는 삶을 살았을 때야만 그들이 천국에서 우리를 맞아줄 것입니다.

 

베트남 난민들이 직접 ‘UN난센상에 전재용 선장을 추천하였을 때 선장은 누구라도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본인은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참으로 양이었음이 증명된 것입니다. 사실 그 배를 보고 25척의 배가 그냥 지나쳤었습니다. 광명 87호가 26번째 배였고 전 선장은 누구라도 그랬을 것이란 마음으로 자신의 모든 명예와 부를 포기하며 그들을 구했던 것입니다. 이런 대조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면 우리가 구원받아야 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이와 같은 삶이 바로 교회이고 신국의 백성인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의 새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2014~2015년 나해 주일 대축일 복음 묵상집입니다.

구입은 하상출판사(031-243-1880)로 문의하시면 됩니다

^-^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