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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24 월/ 전 존재와 인격의 봉헌/ 기경호(프란치스코)신부님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24 조회수1,372 추천수6 반대(0) 신고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와 동료 순교자 기념일 루카 21,1-4(14.11.24)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루카 21,3)

 

 

 

 

전 존재와 인격의 봉헌

 

오늘 복음에서 루카 복음사가는 하느님에 대한 태도가 재물을 통하여 드러난다고 보고 있다. 성전의 ‘여인들의 뜰’에는 남녀가 다 드나들 수 있었는데, 이 여인들의 뜰 입구에 나팔 모양의 열세 개의 헌금함이 있었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은 헌금 액수나 쓰일 목적에 따라 각기 해당되는 헌금함에 예물을 집어넣었다. 그런데, 부자와 권력가들은 자기가 쓰고 남은 것을 헤아려 바쳤고, 바리사이나 율법교사들도 위선적으로, 또는 의무감에서 헌금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헌금함에 넣는 것을 보셨다(21,2). 이를 보시고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21,3-4)라고 하셨다.



과부의 헌금 이야기를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자!
우선 이 과부는 넉넉하고 삶에 어려움이 있는 상황에서 헌금을 한 것이 아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가난하였고, 사회적으로는 여자인데다 과부라는 처지 때문에 소외당한 채 살아가야 했다. 나아가 정치적으로도 자신의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것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자기를 돌볼 힘도 의지할 데도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내놓는 태도는 참으로 놀랍다. 우리는 보통 내가 살만하고 마음이 편해야 봉사하고 기부나 사랑 실천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느님의 때,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때는 바로 ‘지금’이다. 그분은 ‘지금’,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신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건강하면 건강한 대로, 아프면 아픈 상태에서 사랑이신 당신께 오길 원하신다. 우리가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해드릴 수 있으며, 눈에 보이는 선물을 준비한다 한들 그것이 주님께 필요할까? 아니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어떤 상태에 있든 당신을 향한 순수한 사랑의 마음을 지닌 ‘나’를 원하시는 것이다.



참으로 보잘것없고 가진 것 없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남은 전 재산은 ‘렙톤 두 닢’뿐이었다. 렙톤은 그리스 화폐의 최소 단위의 쇠돈으로 하루 일한 품삯에 해당하는 그리스 은전의 128분의 1에 해당된다. 그녀가 지닌 것은 하루를 살기 위한 최저 생계비는 커녕 한 끼를 떼우기에도 부족한 김밥 반의 반 토막 정도 밖에는 살 수 없는 극히 적은 돈뿐이었다. 그런데 그 과부는 그것 전부를 성전 헌금함에 예물로 넣었다. 이 과부는 부유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을 위해 쓸 것 다 쓰고 선심 쓰듯 극히 적은 일부를 바친 것과는 달리 최소한의 먹을 것조차 포기하며 자신의 전부를 바친 것이다. 여기서 렙톤 두 닢을 ‘영혼과 육신’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아무튼 그녀는 액수는 적었지만 마음에서 우러나와 하느님께 자신의 전 존재를 바친 것이다. 그렇다! 주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은 나의 전 존재이다.



전 존재를 바친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우리의 삶은 하느님께 모든 것을 봉헌하는 축성된 삶이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성별(聖別)되어 하느님께 속하게 되었고 그래서 거룩한 존재들이다.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그분께서 당신의 거룩함에 참여하도록 해주신 그 자비 때문에 거룩한 것이다. 전 존재를 바친다는 것은 소유물 전부를 바친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 이유이신 그분을 위해 시간과 능력, 지혜와 일과 재물, 영혼과 육신 등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모든 것을’ ‘남김없이’ 되돌려드리려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물리적인 구분이나 산술적인 계산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봉헌을 하고 돌아설 때는 완전한 빈손, 빈 마음이었고 그 빈자리에 성령께서 계시고, 온갖 부의 원천이요 우리 삶의 전부이신 하느님께서 계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적인 봉헌은 가난의 자세요 하느님을 만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인간의 태도이다. 이 기본이 안 된 채 온갖 재물과 원의와 탐욕과 집착을 지니고서는 결코 하느님을 만날 수 없다. 과부처럼 전 존재를 봉헌한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지향’이다. 재물도 권력도, 재능도 시간도, 나의 생각과 행위도 모두 그분의 뜻에 따라 하고 그분을 위하여 하며 그분께 되돌리겠다는 그 지향 말이다.



오늘도 주님께 대한 사랑 하나로 전 존재를 바친 과부와 더불어 나도 주님 마음에 드는 향기로운 내 삶의 봉헌을 하도록 하자! “나의 하느님, 나의 전부여!”(성 프란치스코)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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