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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행복한 사람들 -비전, 사랑, 현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24 조회수908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1.24. 월요일(뉴튼수도원 14일째),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1785-1839)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요한묵14,1-3.4ㄴ-5 루카21,1-4

                                                                                         
행복한 사람들
-비전, 사랑, 현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를 묵상하는 중 떠오른 말씀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역설적입니다만 가난한 부자입니다. 
지닌 것은 없어도 마음 안에 참 보물인 주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환경이 행복을, 구원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똑같은 환경중에 주님과 사랑의 깊이에 따라 
천국을 사는 이도 있고 지옥을 사는 이도 있습니다. 

비전이, 꿈이, 희망이 행복의 요체입니다. 
비전 중의 비전이 하느님이요 하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제자들이 
무소유의 가난 중에 행복할 수 있었던 것도 
빛나는 비전이자 참 보물인 하늘 나라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불모의 땅 어디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고, 
어린왕자의 별이 아름다운 것은 한 송이의 장미가 있기 때문이다.' 라는 말도 있듯이, 
사막 같은 세상에서 오아시스 주님의 비전을 지닌 자들이 정말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주님은 황량한 사막같은 유배지에서 
요한에게 빛나는 비전을 보여주심으로 그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가난한 부자로 만드십니다. 

우리의 천상 비전으로 삼아도 좋은 아름다운 비전입니다. 
구원 받은 이들의 천상 행복을 묘사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요한의 신비체험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여 마음 순수할 때 이런 신비체험의 선물입니다. 

문제는 주님과 사랑의 관계입니다. 
행복은, 부요는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주님과 사랑의 깊이에 달렸습니다. 

한 집에서 남남으로 사는 부부관계도 있듯이, 
아버지의 집인 수도원에 살아도, 
교회의 신자로 살아도 냉담으로 주님과 남남의 관계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참 비전이신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사막은 낙원이 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과부가 그 모범입니다. 
'사랑을 통한 비전의 현실화'입니다. 
그대로 '비전-사랑-현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아무리 많은 소유를 지니고 오래 살아도 
이런 주님과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를 통해 비전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가난한 자들이며 인생 헛 산 것입니다. 

과연 살아갈수록 주님과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인지요. 
육신의 외적성장은 멈춰 노화되어 갈지라도 
주님과 내적 사랑의 관계는 날로 깊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가 바로 마음 가난한, 마음 깨끗한 부자입니다.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세상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도대체 부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아, 아무도 앗아갈 수 없는 내면의 보물, 주님과 사랑의 관계입니다. 

저절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하여 이미 지상에서 묵시록의 천상 비전을 사는 가난한 과부임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고 이르셨다.‘

부자와 가난한 과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주님은 가난한 과부가 진정 부자임을 인정하십니다.

"내가 참으로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온전한 봉헌을 상징합니다. 

이런 이들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늘 1독서 요한 묵시록의 구원 받은 이들입니다. 

내 존재 전체를 봉헌하는 이가 진정 가난한 부자입니다. 
마음 가난한 겸손하고 순수한 이들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비전이자 꿈인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어질 때 비전의 현실화요, 
겸손과 순수의 열매입니다. 

주님의 비전을 잃으면 열정과 겸손, 순수도 잃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천상 영혼들과 새노래를 부르며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는 우리 모두에게 참 비전인 당신을 선사하십니다. 

다음 말씀은 가난한 과부는 물론 주님을 비전으로 지니고 인생 사막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누가 주님의 집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시편24,3-4ㄱㄴ).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5,10). 

아멘.



2014.11.24. 월요일(뉴튼수도원 14일째), 성 안드레아 둥락 사제(1785-1839)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일,                                    

요한묵14,1-3.4ㄴ-5 루카21,1-4


                                                                                         

행복한 사람들

-비전, 사랑, 현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를 묵상하는 중 떠오른 말씀입니다. 

가난한 과부는 역설적입니다만 가난한 부자입니다. 

지닌 것은 없어도 마음 안에 참 보물인 주님을 모시고 있습니다. 


환경이 행복을, 구원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똑같은 환경중에 주님과 사랑의 깊이에 따라 천국을 사는 이도 있고 지옥을 사는 이도 있습니다. 


비전이, 꿈이, 희망이 행복의 요체입니다. 

비전 중의 비전이 하느님이요 하늘 나라입니다. 

예수님은 물론 제자들이 무소유의 가난 중에 행복할 수 있었던 것도 

빛나는 비전이자 참 보물인 하늘 나라를 지녔기 때문입니다.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에,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그 불모의 땅 어디에 우물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고, 

어린왕자의 별이 아름다운 것은 한 송이의 장미가 있기 때문이다.' 라는 말도 있듯이, 

사막 같은 세상에서 오아시스 주님의 비전을 지닌 자들이 정말 행복한 사람들 입니다.


주님은 황량한 사막같은 유배지에서 요한에게 빛나는 비전을 보여주심으로 그를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가난한 부자로 만드십니다. 


리의 천상 비전으로 삼아도 좋은 아름다운 비전입니다. 

원 받은 이들의 천상 행복을 묘사하는 장면입니다.


'그들은 어좌와 네 생물과 원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는 땅으로부터 속량된 십사만 사천 명 말고는 아무도 배울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어린양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는 이들입니다. 

그들의 입에서는 거짓을 찾아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흠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대로 요한의 신비체험입니다. 

진정 주님을 사랑하여 마음 순수할 때 이런 신비체험의 선물입니다. 


문제는 주님과 사랑의 관계입니다. 

행복은, 부요는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습니다. 

주님과 사랑의 깊이에 달렸습니다. 


한 집에서 남남으로 사는 부부관계도 있듯이, 

아버지의 집인 수도원에 살아도, 교회의 신자로 살아도 냉담으로 주님과 남남의 관계로 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참 비전이신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사막은 낙원이 됩니다. 


바로 오늘 복음의 과부가 그 모범입니다. 

'사랑을 통한 비전의 현실화'입니다. 

그대로 '비전-사랑-현실'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음을 봅니다.


아무리 많은 소유를 지니고 오래 살아도 

이런 주님과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를 통해 

비전을 현실화하지 않으면 가난한 자들이며 인생 헛 산 것입니다. 


과연 살아갈수록 주님과 깊어지는 사랑의 관계인지요. 

육신의 외적성장은 멈춰 노화되어 갈지라도 주님과 내적 사랑의 관계는 날로 깊어져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의 가난한 과부가 바로 마음 가난한, 마음 깨끗한 부자입니다.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어지면서 세상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집니다. 


도대체 부러울 것도 아쉬울 것도 없습니다. 

아, 아무도 앗아갈 수 없는 내면의 보물, 주님과 사랑의 관계입니다. 


저절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는 고백이 나옵니다. 

하여 이미 지상에서 묵시록의 천상 비전을 사는 가난한 과부임이 분명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눈을 들어 헌금함에 예물을 넣는 부자들을 보고 계셨다. 

그러다가 어떤 빈곤한 과부가 렙톤 두 닢을 거기에 넣는 것을 보고 이르셨다.‘


부자와 가난한 과부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주님은 가난한 과부가 진정 부자임을 인정하십니다.


"내가 참으로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기 때문이다.“


온전한 봉헌을 상징합니다. 

이런 이들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오늘 1독서 요한 묵시록의 구원 받은 이들입니다. 


내 존재 전체를 봉헌하는 이가 진정 가난한 부자입니다. 

마음 가난한 겸손하고 순수한 이들입니다. 


우리의 유일한 비전이자 꿈인 주님과 사랑의 관계가 깊어질 때 비전의 현실화요, 

겸손과 순수의 열매입니다. 

주님의 비전을 잃으면 열정과 겸손, 순수도 잃습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천상 영혼들과 새노래를 부르며 온전히 자신을 봉헌하는 우리 모두에게 참 비전인 당신을 선사하십니다. 


다음 말씀은 가난한 과부는 물론 

주님을 비전으로 지니고 인생 사막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향한 축복의 말씀입니다.



"누가 주님의 집에 오를 수 있으랴? 누가 그 거룩한 곳에 설 수 있으랴?

손이 깨끗하고 마음이 결백한 이, 헛된 것에 정신을 팔지 않는 이라네."

(시편24,3-4ㄱㄴ).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5,10).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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