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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27 목/ 하느님의 힘에 맡기는 행복한 삶/ 기경호(프란치스코)신부님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27 조회수1,041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34주간 목요일 루카 21,20-28(14.11.27)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21,28)

 

     

 

 

 

하느님의 힘에 맡기는 행복한 삶

 

온갖 생명체들은 스스로를 내어주고 되돌리며 생명을 이어간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적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고 사람들은 죽임을 당하고 이방인들이 들어와서 예루살렘을 정복하리라는 아주 끔찍한 사실들을 선포하신다. “사람들은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들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21,24-25) 실제로 성전 파괴의 결과 무려 110만 명이 죽고 9만 7천명이 포로가 되었다. 유대 역사가 플라비우스 요세푸스는 당시의 끔찍했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기근이 널리 확대되어 모든 집과 식구들에게 덮쳤다. 다락에는 굶주림으로 죽어 가는 여자들과 어린 아이들로 가득 찼고, 거리의 길이란 길은 모두 늙은이의 시체로 채워져 있었으며, 어린 아이들도 젊은이들도 굶주림으로 퉁퉁 부어서 망령처럼 거리를 헤매다가 쓰러졌다. 이들을 땅에 묻으려 해도 병자에게는 힘이 없고 튼튼한 사람들은 시체가 너무 많아 엄두도 내지 못했고 그들 역시 죽을지 몰랐다. 이런 재난에 대하여 슬퍼하는 사람도 없었고 슬프게 우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중략) 로마 군인이 집들을 약탈하기 위해 들어갔을 때, 그들은 전 가족이 다 죽어 있고 다락에는 죽은 시체가 가득 차 있는 이 무서운 광경을 보고 어떤 물건에도 손을 대지 못하고 뛰쳐나왔다.”



우리는 이런 파멸의 경고 앞에 두려움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좀 더 주의깊게 보면 이는 예수님의 사랑의 배려임을 알 수 있다. 왜 이런 징벌이 내려졌을까? 그토록 사랑받고 중요했던 성전이 파괴된 것은 유대인들의 마음자세 때문이었다. 서기 66-70년 사이에 일어난 로마와의 독립 전쟁에서 유다인들은 인간의 힘에 의존한 결과 미움, 분노, 증오, 교만, 거짓으로 가득 찼다.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고야 말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것은 처참한 파멸을 불렀던 것이다.



성전 파괴와 갖가지 징벌은 내 밖에서 나와 무관하게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육과 영의 긴장과 갈등, 선과 악의 선택, 세상 삶과 신앙생활 사이에서, 실제의 나와 되고 싶은 나 사이에서 늘 갈등을 겪고 괴리를 경험하며 살아간다. 이 갈림길에서 하느님의 길을 걷지 않고 내가 원하는 길을 선택할 때 일어나는 불편함, 혼란, 수치심, 후회, 다른 이들과의 관계 단절, 거짓, 폐쇄와 같은 것들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인 나의 파멸의 표지이다. 하느님이 아닌 것을 선택하고 따를 때 오는 것은 자기파멸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간절한 사랑으로 우리가 파멸에 빠지지 않도록 경고하신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경고 앞에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먼저 파멸의 징후나 빌미가 될 만한 것을 알아차려야 한다(21,20). 이 ‘알아차림’은 멈추어 하느님을 바라보고 하느님의 그 눈길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볼 때 가능해진다. 현대인은 어쩌면 이런 알아차림이 무디어질 대로 무뎌져 있는 것 같다. 자기 일에 바쁘고 움직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무엇을 해야만 한다는 무의식적 강박감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또한 파멸이 아닌 삶의 길로 가려면 예루살렘에서 빠져나가고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21,21 참조). 곧 하느님이 아닌 인간의 증오와 폭력, 분노, 교만, 애착이 난무하는 그곳은 이미 하느님께서 계시는 성전이 아니기에 피해야 한다.



나는 어떤가? 일상의 삶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지 않고 양심에 어긋남을 알면서도 ‘아니오’라 말하지 못하고, 불의와 부조리가 저질러지는 그 현장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묵인하며 있을 때는 없었는가? 바로 그런 상황은 하느님의 성전 예루살렘인 자신을 파멸로 내모는 것과 같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오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21,28) 하고 말씀하신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드는 것은 얼굴을 하느님께로 돌리라는 것, 곧 회개하고 새롭게 시작하라는 것이다. 회개란 나를 잊고 하느님께 희망을 두며 내 힘의 원천에로 하느님을 모시는 것이다. 오늘도 당신 사랑 안에 머물며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의 따뜻한 배려와 자비에 감사하며, 하느님의 힘에 의존하여 기쁘게 살아가는 예루살렘이 되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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