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연중 제34주간 목요일
작성자조재형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27 조회수840 추천수11 반대(0)

인류의 역사에서 자서전을 쓴 최초의 사람은 아우구스티노라고 합니다. 그는 고백록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말하였고, 하느님과 함께하는 여정을 솔직하게 고백하였습니다. 아우구스티노에게 하느님 없는 개인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태양이 없는 지구는 존재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합니다. 한 개인으로서 주체적인 자서전을 쓴 최초의 사람은 루소라고 합니다. 루소는 자신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정리했습니다. 누구에 의한 평가가 아니라, 자신이 존재함으로 인해 세상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오래된 본당은 본당의 역사를 기록하곤 합니다. 본당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역대 사목자들은 누구였는지, 신앙 공동체가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기록합니다. 지나온 날들을 감사드리고, 현재의 삶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한 시간과 공간에서는 전체를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지나온 삶의 씨줄과 날줄을 돌아보면 온전한 나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욕심과 욕망으로 채워진 날들, 회개의 반성으로 그려진 날들, 상처를 받고 상처를 준 날들, 나를 영적으로 자라게 해 준 소중한 인연들이 있을 것입니다.


1964년 저는 태어난 지 1년이 되었습니다. 제가 살던 곳은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안덕리 371번지입니다. 저는 오래된 교우 촌에서 신앙의 씨앗을 품고서 태어났습니다. 물론 기억은 나지 않습니다.

1974년 저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습니다. 한국사회는 10월 유신의 격변기에 있었습니다. 가족계획의 열풍이 불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밥장사를 하였고, 저는 어머니를 도와서 배달을 했습니다. 성당엘 다녔고, 동화책을 많이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소년중앙, 어깨동무와 같은 잡지도 읽었습니다. 5학년 어린이는 주체적으로 나는 누구인지를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1984년 저는 신학과 3학년이었습니다. 신학은 실천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교회는 늘 쇄신되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가난한 이들의 우선적인 선택이 예수님의 가르침이라고 외쳤습니다. 교황님의 방한이 있었고, 2014년처럼 제게 큰 울림은 주지 않았습니다. 주체할 수 없는 청춘의 시기였습니다. 내 안에 있는 영혼을 보기 보다는 세상의 변화를 위해서 행동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1994년 저는 사제생활 4년차였습니다. 사제 생활의 중심은 동창 신부였습니다. 매주 만났고, 함께 휴가도 다녔습니다. 사목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청년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면서 지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말씀이 부족했던 시기였습니다. 영혼의 샘이 깊지 않아서 늘 갈증이 났던 시간들이었습니다. 동료들이 없었다면 참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2004년 저는 교구 사목국에서 일을 하였습니다. 늘 혼자 하던 사목에서 함께 연대하는 사목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본당이라는 에서 벗어나 교구라는 자리에서 보다 큰 비전을 볼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교구는 시노드를 마무리하고 있었습니다. 같은 못자리에서 나온 사제들도 서로의 입장, 성격, 생각이 무척 다르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도 함께 해서 즐거웠고, 보람 있었습니다. 사제로서 가장 열정적인 시간들을 보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2014년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일은 성소를 보존하고, 키워가는 일입니다. 예비 신학생들이 사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입니다. 성소후원회를 도와 드리고 있습니다. 가장 큰 일은 교황 방한 준비위원회의 일이었습니다. 새천년 복음화 사도회의 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교구청에서 두 번째 일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의 성향은 내적으로 무엇인가를 채우기 보다는 외부의 일을 통해서 힘을 얻는 것 같습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2014년 좀 더 영적인 시간을 많이 가지려고 합니다.


이렇게 전체를 돌아보면 하느님께서 늘 저와 함께 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친구의 모습으로, 우연인 것 같은 인연의 모습으로 저와 함께 하셨습니다. 앞으로 10년은 어떻게 지나갈지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묵시록의 예언을 두려워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말씀하신 것처럼 멸망하는 것도 무섭지는 않습니다. 오늘 하루만 충실하게 살 수 있다면 됩니다. 그것이 모인 것이 지난날들이고, 그것이 모이면 미래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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