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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28 금/ 하느님을 품은 씨앗/ 기경호(프란치스코)신부님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27 조회수1,050 추천수3 반대(0) 신고

  

연중 34주간 금요일 루카 21,29-33(14.11.28)
“하늘과 땅은 사라질지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21,33)

       

 

 

  하느님을 품은 씨앗 

 

고요한 침묵이 가슴 빈자리에 찾아들면 저 깊은 내면의 작은 바람과 느낌의 발자국이 생생하게 일어선다. 하느님을 품은 침묵은 동료 인간과 피조물, 자연과 세상을 향한 애정 어린 갈망과 선한 지향의 마음자리를 보도록 살며시 문을 열어준다. 침묵을 호흡하는 나는 하느님을 품은 씨앗이다. 한 해의 끝자락은 소란스러운 만남보다는 잠시라도 멈추어 자신과 대화해보도록 초대하는 듯하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비유를 들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21,29-31) 팔레스티나에는 봄과 가을이 없다. 이런 기후 때문에 나무에 잎이 돋우면 여름이 이미 다가온 것을 알게 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성전파괴와 같은 큰 재난이 나타나면 하느님 나라가 다가올 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다가올 세상 종말은 세상을 파멸하기 위한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생명과 사랑의 질서를 세워 새롭게 창조하시려는 하느님의 ‘사랑의 개입’이다.



나는 종말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느님은 파멸하시고 벌하시기만 하는 분이 아니시다. 그분은 마치도 무화과나무가 소리 없이 자라나 우리에게 풍요로운 생명과 그늘과 열매를 선사하듯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잔잔한 손길로 우리를 키우시고 돌보신다. 이것이 하느님의 사랑이다. 따라서 우리의 영성생활도 심판과 처벌이 아닌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바로 이 근본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우리의 그분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그분의 우리에 대한 사랑을 알아차리고(1요한 4,19 참조) 또 얼마나 깊이 느끼고 받아들이며 사는가 하는 것은 바로 영성생활의 방향과 질을 가늠하게 해주는 핵심이다. 세상 종말이야 언제든 닥칠 것이고, 우리도 알 수 없는 때에 생의 마지막을 맞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하든 사랑이신 하느님을 알아차리고 그분의 개입을 사랑의 메시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의 발걸음, 나의 생각, 나의 눈길은 사랑으로 이루어지고 있는가?



아무리 고통스럽고 힘들어도 사랑으로 품고 견디고 받아들인다면 바로 그 순간은 영원의 시간이 되리라! 고통과 시련과 슬픔이 다가올 때야말로 하느님 나라에 더욱 가까이 서 있음을 믿자. 말없이, 사치스럽거나 과장하지 말고 내 안에 사랑을 키우고, 드러내지 않고 좋은 일을 하자. 마음 상하는 말에도 대꾸하지 말고, 꾸지람을 듣더라도 변명하지 말고, 따돌림 당하고 오해받을 때라도 ‘말없이’ 사랑하자. 무슨 일이든 다른 이의 어떤 말이나 행동이라도 좋게 바라보고 적어도 왜 그랬을지 사랑으로 헤아려보도록 하자. 외롭고 슬플 때, 무시당할 때라도 잔잔한 사랑으로 견디며 받아들이도록 하자. 마음 깊은 곳의 괴로움과 불안, 미움의 마음 또한 조용히 침묵하며 하느님께 봉헌하자. 하느님 앞에 불쌍하고 비참한 ‘나’임을 ‘우리’임을 생각하면서 언제나 형제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도록 하자. 아무런 함성도 겉꾸밈도 없는 침묵 가운데 커가는 무화과나무처럼 ‘생명을 싹틔우는’ 하느님의 부드러움과 순리를 배우도록 하자.



2010년 경남 함안에서는 700년 전의 연씨를 발아시켜 연꽃을 피우는데 성공하여 화제가 되었다. 이 연꽃을 ‘아라 홍련’이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고려시대의 그 아름다운 연꽃을 말없이 품고 씨앗 채 기다려온 세월은 창조와 생명을 품은 신비임이 분명하다. 우리도 이제는 말없이 사랑하고 받아들임으로써 내 안에 하늘을 품는 씨앗이 되었으면 좋겠다. 생명을 품고 자신의 미래를 철저히 외부 환경에 내맡긴 채 시간을 뛰어넘어 기다려온 아라 홍련 씨앗처럼 우리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 안에서, 그분에 대한 사랑 때문에 ‘속 깊은 기다림과 헤아림’을 담은 하느님의 씨앗이 되어보면 어떨까! 이것이 종말을 준비하는 아름다운 삶의 자세가 아닐지!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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