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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은총이 그 들안에(희망신부님의 글)
작성자김은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4-11-28 조회수794 추천수5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은총이 그 들안에(루카 21,12-19)

 

찬미예수님! 알렐루야! 김장들 다 하셨습니까? 아직 못하셨습니까? 김장할 때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도 옆에서 TV만 보고 있다면 괜히 속에서 열불이 나고 짜증이 나서 큰 소리가 나게 되고 이러다보면 내 마음 안에 예수님이 안계시고 원망만 들어오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중동 국가 같은 곳에서는 종교적인 박해도 있지만 우리가 사는 이 나라에서는 그러한 박해보다는 세속적인 큰 물결이 우리를 박해하고 있습니다. 청년들 상담하면 기본적인 생명에 대한 윤리부터 가르쳐야 되는 입장입니다. 쾌락의 문화가 많은 젊은이들을 휩쓸고 있는 그런 세상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예전에 30대 중반의 젊은이를 상담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저러다가 죽을지도 모르겠다며 밥도 안 먹고 깊은 우울증에 걸려서 상담도 안하기에 억지로 어머니가 데리고 왔습니다. 그래서 쭉 이야기를 하다보니까 친구와 함께 사업을 하다가 친구가 돈을 다 떼먹고 도망을 가버렸는데, 그때의 느꼈던 배신감, 고통이 너무나 컸습니다. 정말로 절친이었는데 자신을 배신했을 때 상실감, 배반감,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자신에 대해 아버지가 이해해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기보다는 네 삶이 그러니까 그런 친구를 만났다며 비난을 하고, 다른 일을 뭔가 해보려고 해도 못하게 막았다며 아버지에게도 버림받고 이런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버지에게 신뢰를 잃어버리니 모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 젊은이 안에는 친구의 배신에 대한 원망, 미움, 증오와 함께 아버지가 자기를 무시하는 것에 대한 원망이 더해져서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에게 당한 아픔들을 곱씹으면서 깊은 슬픔 속에 빠져있었습니다.

 

자신 안에 예수님이 자리 잡고 살아가셔야 되는데 그 젊은이 안에는 예수님이 안계셨습니다. 그럴 때 그 안에 어떻게 다시 예수님이 살아계시도록 해야 하는가? 그 사람은 슬픔의 감옥, 원망의 감옥, 배신감의 감옥, 증오의 감옥, 실의의 감옥에서 어떻게 헤어 나올 수 있게 하겠는가?

 

친구에게 배신당한 이야기를 들어주면서 예수님의 사랑으로 그 아픈 마음을 위로해주자 눈물을 흘리며 자기 자신도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아픔을 달래주는 것은 저였지만 저를 통해서 다시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자기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사랑받고 있다는 것에 대해 희망을 얻게 되었습니다.

 

부모님도 오시게 하였습니다. 그 부모님은 아들에 대한 실망감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부모를 불러 당신들이 아들에게 이렇게 하면 되냐고 야단치면 그 부모가 오겠습니까? 부모가 오면 아들과 똑같이 상처받은 사람으로 만나주어야 합니다. 그분들 안의 실망감, 두려움, 부끄러움이 위로를 받음으로써 하느님의 사랑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사랑이 들어가면 그 마음 안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 안에 조금씩 여유가 생기고 예수님의 마음이 들어가게 되면 제가 말합니다. ‘아들을 좀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버님보다도 아들이 더 힘든 상황인데 조금만 도와주시면 아들이 쉽게 회복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 가정에 평화를 찾아주시기를 원하시는지 기도하며 진심으로 용서하며 화해하는 시간을 가지면 다시 관계가 회복됩니다. 내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예수님의 마음으로 그 아버지도 판단하지 않고, 그 어머니도 판단하지 않고, 그 아들도 판단하지 않으니 그 안의 상처, 감옥들을 잘 볼 수 있었습니다.

 

원망의 감옥, 수치심의 감옥, 배신감의 감옥, 증오의 감옥, 슬픔의 감옥 안에 갇혀있는 것을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니 편안하게 보게 되고 사랑으로 대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마음이 아니면 사람들을 부정적인 눈으로 바라보게 되고, 그러면 치유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어떠한 큰 상처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나서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마음까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녹아드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친구들까지도 너희를 넘겨 더러는 죽이기까지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육적인 죽음이 아니라 마음에 상처를 줘서 내 마음에 끊임없는 미움을 갖게 된다면 그게 바로 영적으로 죽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죽어서 생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물질적인 탐욕 때문에 죽어간 사람들, 쾌락의 탐닉에서 죽어간 사람들, 가족지간에 원수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 다 사실은 영혼이 죽은 상태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애달프게 바라보신다는 믿음을 갖고 살아간다면 어떤 경우에도 내안의 실망감이나 증오, 원망, 슬픔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오히려 성체 앞에 나아가 예수님께 다 말씀드리며 위안을 받고 다시금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주위에 실의에 빠져 살아가는 사람들, 겉은 멀쩡하지만 영혼은 죽어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이 그 안에 계시지 않으면 다 파괴된 성전입니다. 이 미사 중에 그런 사람들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하느님의 은총이 그 들안에 들어가기를 청합시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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