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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기다림의 기쁨 -대림(待臨)의 영성-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03 조회수898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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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3.대림 제1주간 수요일(뉴튼수도원 23일째),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사제(선교의 수호자1506-1552) 기념일

신명10,8-9 마르16,15-20

                                                                                                 

기다림의 기쁨

-대림(待臨)의 영성-


성인들의 축일미사를 드릴 때 마다 늘 확인하는 생몰(生沒)연대입니다. 

묘지를 방문해도 늘 확인해보는 묘비명(墓碑銘)과 생몰연대입니다. 

이분들의 생몰연대를 보며 제 나이와 이분들의 산 햇수를 비교해 봅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는 

선교의 수호자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의 삶이 참으로 치열했으니 46년의 불꽃같은 삶이었습니다. 

인도에 이어 일본, 그리고 중국에 복음 선포차 입국하려다 열병으로 죽음을 맞이한 

성인의 열정적 복음 선포의 삶이 불가사의입니다. 



어제(12.1월)는 성탄츄리의 판매장 분위기가 한산해 보였습니다. 

일하러 나갔다가 손님이 뜸해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수사님과 덕담을 나누었습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손님을 기다리시는 군요. 손님이 많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손님을 기다리는 수사님의 존재자체가 가난처럼 느껴졌습니다. 

손님이 없을 때도 묵묵히 일을 찾아하는 

젊은 수사님(벨라도)은 흡사 톨스토이 소설에 나오는 '바보 이반'같았습니다. 


요즘 많이 깨닫는바 소유의 유무를 떠나 수사님들의 삶 자체가 가난이라는 것입니다. 

제 말에 농장 총 책임 신부님(오딜로)은 환한 웃음을 띠며 대답했습니다.


"오늘은 통상적으로 가장 손님이 적은 날입니다. 

어제 180여 그루 팔았고, 오늘은 주로 일없는 은퇴한 분들이 오기 때문에 적을 수 뿐이 없습니다.“

나중에 들어보니 어제 하루 12그루 팔았다 합니다. 


얼마전의 착각도 재미있어 짚고 넘어갑니다.


"신부님이 꼭 미국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훤칠한 키에다 선글라스에 털모자를 쓰고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며 

웃음 가득한 얼굴로 자연스럽게 미국 손님들을 대하는 신부님을 미국인으로 착각했던 것입니다.


환하게 빛나는 대림 촛불은 깨어 주님을 기다리는 영혼을 상징합니다. 

기다림의 기쁨, 기다림의 행복입니다. 


우리 믿는 이들이 궁극으로 기다리는 바, 손님이 아닌 주님을, 손님을 통해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다리는 주님이 없다면 무슨 희망, 무슨 기쁨으로 이 광야인생을 살아 갈 수 있겠는지요. 


정말 끊임없이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자가 내적 기쁨을 지닌 부자입니다. 

주님을 기다림으로 기쁠 때, 행복할 때, 만족할 때, 배부를 때, 그의 침묵과 고독, 가난도 축복이 됩니다. 

아니 오히려 침묵과 고독, 가난을 사랑하게 됩니다. 


광야 같은 땅, 끝없이 펼쳐진 성탄 츄리 사철 푸른 나무들(40000주가 있다함)의 모습이 

흡사 침묵 중에 주님을 기다리는 수도승들 같습니다.


"밖으로는 산, 천년만년, 임 기다리는 산,

 안으로는 강, 천년만년, 임 향해 흐르는 강“


'산과 강'의 영성을 묵상하며 자주 되뇌이는 산과 강의 자작 애송시도 생각납니다.


그러니 대림(待臨)의 기쁨이 제일입니다. 


한자 뜻의 적절함에 늘 공감합니다. 

'기다릴' 대(待), '오실' 임(臨)입니다. 


대림(待臨), 재림(再臨), 왕림(枉臨), 강림(降臨), 임재(臨在) 등 '임(臨)'자가 들어갑니다. 

하여 한자 뜻을 통해 우리의 영성은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임(臨;오심,Coming)의 영성'임을 깨닫게 됩니다. 


참 역설의 신비가 주님 안에, 주님과 함께 살면서 주님을 목말라 기다린다는 것입니다. 

대림과 동시에 임재하신 주님과 함께 하는 우리의 복된 삶입니다. 



이런 주님이야 말로 '열정의 샘'입니다. 

이런 이들이 정말 부자입니다. 

세상에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가진 것 없어도 부요하고 행복하고 충만합니다. 


주님이 없으면 '허무의 블랙홀'입니다. 

주님만이 우리의 끝없는 허무를 당신 사랑의 현존으로 충만하게 하십니다. 

고해인생을 축제인생으로 바꿔주십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 믿는 이들은 1독서의 레위인입니다. 

우리 모두 영적 레위인입니다.


"레위인에게는 동족과 함께 받을 몫도 상속 재산도 없다. 

그 대신에 주 너희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 친히 그들의 상속 재산이 되신다.“(신명10,9).


주님께서 친히 상속 재산이 되신 영적 레위인이 정작 부자입니다. 

도대체 부러울 것이,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저절로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시편23,1)'는 고백이 나옵니다. 



이런 행복을, 기쁨을, 만족을 나누는 것이 바로 '존재론적 복음 선포'입니다.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모든 피조물에게 복음을 선포하여라.“(마태16,15ㄴ).


믿는 이들에게 부여된 주님의 지상명령이 복음 선포입니다. 

내 몸 담고 있는 곳이 '세상의 중심'입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증거하는 사랑과 환대, 기쁨과 행복의 삶보다 더 좋은 복음선포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

(마태20,20ㄴ).


역시 주님은 우리와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며 우리의 삶을 통해 전해지는 복음을 

확증해 주십니다. 

이런 주님을 기다리는 은총 충만한 대림시기입니다. 

아니 우리의 평생 삶이 오시는 주님을 기다리는 '대림의 삶'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깨어 기다리다가 오시는 주님을 환대하는 복된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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