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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07 조회수1,053 추천수10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2월 7일 대림 제2주일
 
 Prepare the way of the Lord,
make straight his paths.
(Mk.1,3)
 
 
제1독서 이사 40,1-5.9-11
제2독서 1베드 3,8-14
복음 마르 1,1-8
 

독일의 신학자로 유명한 본회퍼(Bonhoeffer, Dietrich)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교회는 자기를 위해서가 아닌, 타인을 위해서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셨지요. 아무튼 이분은 나치즘에 저항해서 결국 1945년에 교수형을 당했지요. 교수형을 당하는 날, 교도관로부터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었을 때, 자신의 죽음을 예견하고는 동료들에게 “먼저 갑니다. 천국에서 기쁘게 만납시다.”라고 말하며 문밖을 나섰다고 합니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큰 감명을 얻었지요. 즉, 어떻게 죽음 앞에서도 그렇게 평화로울 수 있는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역시 나치즘에 저항했고 또한 뛰어난 문학작품을 남겼던 무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사르트르(Jean Paul Sartre)에 대한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신으로부터의 자유’를 외친 그를 많은 이들이 따랐습니다. 하지만 그의 말년은 그리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지 못하지요. 왜냐하면 1980년 3월에 폐수종 진단을 받아 병원에 입원했는데, 죽음에 대한 공포로 인해서 같은 해 4월 15일에 죽기까지 의연한 모습을 보이지 못한 것입니다.

이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려 봅니다. 둘 다 신학적으로 또한 철학적으로 뛰어난 명성을 날렸지만, 죽음에 대해서는 완벽하게 비교될 수 있을까요? 누군가는 이에 대해 목사였던 본회퍼는 자신이 돌아갈 곳이 있다는 굳은 믿음이 있었고,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인 샤르트르는 신이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돌아갈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내놓습니다. 즉, 돌아갈 곳이 ‘있다’ ‘없다’의 차이가 평화를 간직하게 되는지 아니면 두려움을 간직하게 되는지가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 보십시오. 과연 내가 돌아갈 곳이 있음을 굳게 믿습니까? 그리고 그 믿음을 가지고 지금을 힘차게 살고 있습니까? 또한 그런 믿음을 갖게끔 해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따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십니까?

대림초가 두 개 켜진 대림 제2주일인 오늘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를 전해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제1독서의 이사야서의 말씀처럼 주님의 길을 닦은 사람으로 광야에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지요. 그가 황량한 광야에서 좋은 옷이 아닌 낙타 털 옷를 입고 가죽 띠를 두르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왜 좋고 맛있는 음식이 아닌 메뚜기와 들 꿀을 먹고 살았을까요? 바로 세상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중에 돌아갈 하느님 나라에서의 삶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주님의 길을 닦는데 최선을 다했던 것입니다.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기억하면서 지금의 내 모습을 반성했으면 합니다. 마치 이 세상의 삶이 모두이고 돌아갈 곳이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근시안적인 모습을 말이지요. 그리고 나중에 돌아갈 하느님 나라를 기억하면서 지금의 삶을 주님께 맞추며 살 것을 다짐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지금의 삶도 평화와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좋은 스승이란 촛불과도 같다. 자기 스스로를 소비해서 남들을 위해 불을 밝힌다(아타투르크).

 

주인의식을 높이세요(‘사랑밭 새벽편지’ 중에서)

한 마을에 ‘모두’와 ‘누군가’, ‘아무나’, ‘아무도‘라는 이름을 가진 네 사람이 살았다.

어느 날 심각한 문제가 생겨 네 사람이 회의를 했다.

토론 결과 ‘모두’가 그 일을 맡아 해결하기로 했다. 하지만 ‘모두’는 ‘누군가’가 그 일을 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았다. 그러자 ‘누군가’ 화를 냈다. 그것은 ‘모두’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그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무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모두’는 ‘누군가’를 책망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즉 그 누구도 제외하지 않고 우리 모두가 빠짐없이 해야 할 일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누군가가 할 것이라면서 자신의 일을 회피하고 있으며 그래서 아무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었을까요? 주님의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며, 모두가 빠짐없이 해야 하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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