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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회개 / 송영진 신부님
작성자강헌모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07 조회수1,046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회개 <대림 제2주일>(2014. 12. 7.) (마르 1,1-8)

    "세례자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마르 1,4)."

     

     

    세례자 요한은 회개하라고 선포하면서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한 예언자입니다.

    '광야에 나타나'는 '광야에서 사람들에게로 와서'입니다.

    들을 사람이 하나도 없는 광야에서 혼자 외친 것은 아닙니다.

    그가 '광야에서' 왔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그를 파견하셨다는 뜻입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은 '죄를 용서받기 위한'인데,

    "이미 주신 용서를 받아서 자기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우리를 용서하시지 않다가 우리가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그때서야 비로소 용서를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하기 전에 이미 우리를 용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신 일 자체가 하느님의 용서를 나타냅니다.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요한 3,17)."

    회개는 이미 주신 용서를 받기 위한 일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회개하지 않는 것은

    이미 주신 용서를 받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일이 됩니다.

     

     

    '회개의 세례'는 '회개했음을 표시하는 세례'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선포한 것은

    자기가 주는 세례를 받기만 해도 회개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먼저 회개한 다음에 자기가 회개했음을 고백하는,

    또는 회개했음을 확인 받는 세례를 받으라고 강조했습니다(루카 3,8-14).

    그 세례를 요한 쪽에서 보면, 회개했음을 확인해 주는 예식이 됩니다.

     

     

    마태오복음을 보면,

    세례자 요한의 첫 선포와 예수님의 첫 선포가 같습니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17)."

    이렇게 말은 같지만, 강조점이 다릅니다.

    세례자 요한의 선포는 '회개'를 강조하고 있고,

    예수님의 선포는 '하늘나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에게

    심판과 멸망을 피할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었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가르쳐 주셨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께서는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르 1,8)."

     

     

    마르코복음에서는 예수님의 첫 선포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늘나라에 들어가려면 '회개'만으로는 부족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믿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해야 합니다.

    '회개'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준비'일 뿐입니다.

    준비를 제대로 했다면

    그 다음에는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목욕재계를 했다면 그 다음에는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성령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요한의 '회개의 세례'를 받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왜 오늘날에도 여전히 세례자 요한의 선포를 읽고 묵상하는가?

     

     

    만일에 예수님께서 등장하심으로써 요한의 임무가 완전히 끝났다면,

    그의 선포와 활동은 과거의 역사 자료로만 남았을 것이고,

    복음서에는 기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복음서에 그의 선포와 활동이 기록되어 있고,

    그가 선포한 회개를 오늘날에도 강조하는 것은

    아직도 그의 임무가 끝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덕분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길을 알게 되었지만,

    '심판과 멸망을 피하는 길'에 관한 요한의 선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지금 지상에서 살고 있는 신앙인들은

    아직 완전히 새 옷을 입은 상태가 아닙니다.

    그 옷을 입기 위해서 노력하는 단계일 뿐입니다.

    목욕재계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닌 단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성령의 세례'를 받는다고 해서

    '회개'가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옷'이라는 표현은 묵시록에서 빌린 것입니다.

    "승리하는 사람은 이처럼 흰옷을 입을 것이다(묵시 3,5)."

    묵시록에서는 하늘나라의 '흰옷'을 입은 상태의 반대를

    '벌거벗은 상태'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자로서 풍족하여 모자람이 없다.' 하고 네가 말하지만,

    사실은 비참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깨닫지 못한다.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나에게서 불로 정련된 금을 사서 부자가 되고,

    흰옷을 사 입어 너의 수치스러운 알몸이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제대로 볼 수 있게 하여라(묵시 3,17-18)"

     

     

    '회개'는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깨닫고

    하느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나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일입니다.

    '회개'를 하지 않는 것은 '수치스러운 알몸' 상태로 그냥 있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의 세상을 보면, 죄 속에서 살면서도 양심과 판단력이 마비되어서

    수치심을 아예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하느님 앞에 서게 되면,

    하느님께서 심판하시기 전에 그 자신이 먼저 수치심에 사로잡혀서

    스스로 자기 자신을 심판하려고 할 것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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