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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08 조회수1,292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2월 8일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Behold,
I am the handmaid of the Lord.
May it be done to me according to your word.
(Lk.1,38)
 
 
제1독서 창세 3,9-15.20
제2독서 에페 1,3-6.11-12
복음 루카 1,26-38
 
머리를 많이 쓰면 머리가 좋아집니다. 또 주먹을 많이 쓰면 주먹이 강해집니다. 목소리를 많이 쓰면 목소리가 아름다워지며, 많이 웃으면 얼굴이 환하게 밝아지며 아름다워집니다. 마음을 많이 쓰면 마음이 아름다워지며, 좋은 말을 많이 하면 입이 아름다워집니다. 여러분은 과연 지금 무엇을 많이 쓰고 있습니까? 내가 집중해서 많이 쓰고 있는 것을 통해 분명히 그 부분에 나의 강점이 생깁니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자신의 강점이 될 수 있는 것을 많이 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점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부정적인 말과 생각, 다른 이들에 대한 섣부른 판단과 단죄, 미움과 다툼의 생활 등등....

어떤 순간에서도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즉 나의 장점이 될 수 있는 것들을 끊임없이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의심 없는 믿음입니다. 특히 주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 나를 너무나 사랑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을 수 있을 때, 나의 장점은 더욱 더 배가 될 것입니다.

물론 어떤 분은 ‘주님께서 나를 정말로 사랑하시느냐?’고 의문을 품으시더군요. 왜냐하면 주님께서는 당신 몸을 직접 보여주시지도 않고, 또 직접 ‘사랑한다.’고 말씀하시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침저녁으로 “너를 사랑한다.”고 표현하고 참견하는 것만이 사랑일까요? 어쩌면 사랑은 자기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분이 나를 사랑하는구나.’하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주님은 정말로 그런 분입니다. 그래서 어떤 요구도 하지 않으시고, 같이 있자고 보채지도 않습니다. 대신 말없이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끊임없이 주고 계실 뿐입니다. 이런 주님의 사랑을 느끼고 있다면 어떻게 그분께 대한 믿음을 저버릴 수 있겠습니까?

오늘 ‘한국 교회의 수호자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을 지내면서 성모님을 떠올려 봅니다. 복음에도 나오듯이 성모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듣게 됩니다. 문제는 아직 결혼하지 않은 처녀의 몸일 때 들은 소식이라는 것입니다. 당시는 처녀가 아기를 갖게 되면 간음을 했다고 해서 공개처형을 당하는 상황이었지요. 따라서 잉태 소식은 기쁨의 소식 이전에 걱정과 불안을 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제발 내게만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셨습니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놀라운 상황이지만 의심하지 않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말한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라는 사실을 늘 가슴에 안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주님께서 크신 사랑으로 함께 하심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 그리고 있어서는 안 될 상황이어도 의심 없이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의 기준을 내세워서 나의 단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점만을 반복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대신 주님의 사랑을 굳게 믿으면서 나의 장점을 부각시킬 수 있는 것들을 반복할 수 있는 지혜로운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그래야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게으름 피우지 말라. 어떤 것도 놓치지 않고 해내는 사람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불평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항상 노력한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이루어질 수 있는지 아는가?(토머스 제퍼슨)

 

의미 있는 삶(호아킴 데 포사다, ‘바보 빅터’ 중에서)

제2차 대전 당시, 유태인 의사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그곳은 지옥보다 더 끔찍한 곳이었다. 고통을 이기지 못한 수감자들은 자살을 하거나 병에 걸려 하나둘씩 죽어갔다. 프랭클도 예외는 아니었다. 발진티푸스에 걸리고 만 그는 고열에 시달리며 생사를 넘나들었다. 하지만 그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살아야 할 이유가 있었다. 그것은 나치에게 빼앗긴 원고를 되찾아 연구를 완성하는 것이었다.

병마를 이겨낸 빅터 프랭클은 아우슈비츠의 수감자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가치 있는 목표를 가진 사람이 살아남은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전쟁이 끝나자 그는 수용소의 체험을 바탕으로 로고테라피라는 실존분석적 심리치료를 개발함으로써 심리치료 발전에 기여했다. 훗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인생을 바쳐서라도 진정으로 추구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의미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의미 있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지금 이 순간을 기쁘고 행복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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