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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산책] 기다림의 미학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09 조회수1,034 추천수13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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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림의 미학

 

오랜 세월 빨리빨리!’ 문화에 젖어 살다보니 너그러움, 여유, 유유자적, 은근함, 결국 기다림의 영성, 기다림의 미학이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 안에서도 기다림이 부족합니다. 어떤 지향을 두고 열렬히 간구하고 또 실제적인 삶 안에서도 최선의 노력을 다했으면 이제 여유를 갖고 하느님의 때, 하느님의 시간을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빠름을 원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바름을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프란츠 카프카의 말입니다. “인간에게 큰 죄가 두 가지 있는데 다른 죄들도 모두 여기에서 나옵니다. 조급함과 게으름이 그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그때 정말 한 3분만 참았더라면!’하는 교도소 수감자들 제가 한둘 만난 게 아닙니다. 이미 깨져버린 사랑, 이미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버린 인연들의 원인을 추적해보면 결국 기다릴 줄 모르는 조급함이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예수님은 대단하십니다. 인내의 달인이셨습니다. 성격 급한 저 같았으면 30년 동안 나자렛에서의 숨은 세월을 못 참고 폭발했을 것입니다. 대체 이 아까운 시간 다 흘러가고 언제 공생활 시작할거냐고 하느님께 따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묵묵히 아버지께서 신호를 보내실 때까지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사사건건 트집 잡고 늘어지는 적대자들, 저 같았으면 한번 싹쓸이를 하던지 판을 뒤집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때가 무르익을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에집트 땅에서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입국하기까지 40년 세월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습니다. 반대로 하느님께서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숭배에서 돌아서 정화와 쇄신작업을 거치기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결국 우리도 때를 기다리지만 하느님께서도 때를 기다리십니다.

 

대림시기의 첫날 우리들 기다림의 색깔에 대해서 묵상해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기다림의 색조는 따뜻한 파스텔 톤입니다. 평생을 기다려왔던 주님을 뵙는 기쁨과 설렘, 그리움과 기대로 가득 찬 희망의 기다림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다림은 내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너그러운 기다림이어야 합니다. 결국 내 뜻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기다림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이 성취되기를 고대하는 영적인 기다림이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기다려야 하는지에 대해 아주 구체적인 행동강령을 우리에게 지침으로 내려주셨습니다. “그러니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저녁일지, 한밤중일지, 닭이 울 때일지, 새벽일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마르코 복음 1335)

 

많은 경우 우리는 외칩니다. 왜 빨리 하느님께서 내 이 큰 고통, 깊은 슬픔에 개입하지 않으시는지? 이 비정하고 사악한 세상을 왜 빨리 깔끔히 정리하지 않으시는지? 왜 저 악인들이 떵떵거리며 살도록 마냥 놔두시는지...

 

하느님은 우리처럼 일희일비하지 않으십니다. 몇 사람만 바라보지 않으십니다. 인류 전체를 바라보십니다. 그래서 동작이 느리십니다. 대신 크고 여유로운 걸음을 걸으십니다. 우리 죄인들이 충분히 스스로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할 시간을 주기 위해 아주 천천히 시험지를 걷으십니다.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시는 아버지처럼 오늘도 하느님께서는 둘째 아들인 우리들을 기다리십니다. 기다리는 아버지의 사랑으로 덮을 수 없는 악은 없으며 그분의 은혜에 필적할 만한 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지은 죄가 진홍빛처럼 붉다 하여도 그분 크신 자비 앞에 눈처럼 녹아버립니다. “참된 신앙은 두려움의 집에서 걸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오래 전부터 기다리고 계시는 아버지 사랑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헨리 나우웬)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부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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