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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만남의 축복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10 조회수1,145 추천수18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2.10. 대림 제2주간 수요일(뉴튼수도원 30일째), 
이사40,25-31 마태11,28-30

                                                                                                           
만남의 축복

만남의 신비, 만남의 은총, 만남의 기쁨, 만남의 축복, 
만남의 운명 등 끝이 없습니다. 

만남의 여정이라 할 만합니다. 

만남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는 삶입니다. 
만남이 내 운명을 결정하고 내 삶의 꼴을 만듭니다. 

여기 뉴튼수도원에서도 매일 새로운 만남의 장이 펼쳐집니다. 

성염(보스꼬) 대사 부인 전순란 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스코에게 물었다. 
“왜 저렇게 좋은 분들을 두고 길을 바꿨어요?” 
기다란 설명을 하기 싫은지 그는 
“당신을 만나서.”
라고 대답하고 만다. 
하기야 
그분들 틈에서 잘 살았으니 지금의 좋은 남편이 되었고, 
선량한 교우(敎友)들을 설득하면서 
‘사회적 사랑(= 사회정의)’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자고 
가르치고 다니겠지. 
노신부님은 나를 보실 적마다 
“나니야, 고마워. 우리 보스코가 너무나 행복해 보여.”하시면서 
장난꾸러기 아이에게 하듯이 내 머리를 만져주신다
(휴천재 일기12,6일)-

참 사랑스런 영원한 청춘의 부인입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랑에 있습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매일이 새 하늘과 새 땅이요, 
샘솟는 열정에 새로워지는 성소입니다. 

아, 이게 성소입니다. 

성소의 신비는 만남의 신비입니다. 

성소는 수도성소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믿는 이들 삶의 여정 모두가 성소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여정의 성소요 때로는 수도생활도 
하느님을 찾는 기나긴 여정 중 하나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끝까지 주님을 찾는 구도의 삶일 때 
바로 제 성소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성소의 신비입니다. 

'당신을 만나서' 바로 이게 답입니다. 
저로 말하면 '주님인 당신을 만나서' 수도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만남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만남으로 
끊임없이 성소를 가꾸고 돌보아야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삶입니다. 

수도성소든 결혼성소든 원리는 똑같습니다. 

태백산맥의 저자인 조정래 씨에게
 '당신에게 부인(김초혜 시인)은 누구인가?' 물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인지요. 

저는 이렇게 매일 새벽 강론을 쓰면서 
주님을 새롭게 만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님은 나의 힘입니다. 
주님의 힘으로 살아야 지치지 않습니다. 

이사야의 고백은 바로 믿는 이들 모두의 고백입니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주님께 바라는 이들을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할 줄 모른다."(이사40,28-30).

이런 하느님의 말씀이 힘을 줍니다. 
제가 예전 고백성사 때 자주 써드렸던 보속의 처방전 말씀입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에서 '이들' 대신 고백자의 이름을 써드립니다. 
믿는 마음으로 자주 보면서 일정의 보속기간 되뇌이며 복용할 때 
'말씀 약'의 효험은 놀랍습니다. 

바로 이런 주님께서 
늘 당신의 문을 활짝 열어 먼저 우리를 초대하시고 환대하십니다. 
참으로 우리를 만나고 싶어 
끊임없이 우리를 초대하시고 기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11,28-30).

역시 제가 고백성사 중 가장 많이 써드렸던 보속의 처방전 
오늘 복음의 '말씀 약'입니다. 

무한한 위로와 치유를 주는 하느님 말씀의 효능입니다. 

오늘 복음은 '오너라'-'배워라'-'얻을 것이다'로 요약됩니다. 

주님은 우리 영혼의 영원한 쉼터이자 배움터입니다. 

영원한 쉼터이자 배움터인 이 거룩한 매일 미사를 통해 
주님을 만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하는 
평생학인인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안식이요, 
더불어 우리의 불편한 멍에는 주님의 편한 멍에로, 
우리의 무거운 짐은 주님의 가벼운 짐으로 바뀝니다. 
바로 끊임없이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 은총입니다. 

이어지는 전순란 님의 글도 의미심장합니다.

-나무토막 서너 덩이로 훈훈해진 식당에서 
은박지로 싸서 난로 속 장작더미에 얹어 구워낸 고구마로 
두 사람이 저녁을 먹는다. 
40년쯤 한 사람과 살다보면 
누구누구랄 것도 없이 하나가 되는 듯하다. 
창밖으로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휴천재 일기12,7일).-

이 또한 우리 수도성소의 원리입니다. 
하나됨의 신비체험입니다. 

주님의 집에서 주님과 '제대로' 오래 살다보면 
어느 수도자할 것 없이 주님과 하나되고 
수도형제들과도 하나가 됩니다. 

보이는 형제들과의 일치는 
바로 보이지 않는 주님과의 일치의 표지입니다. 

주님은 매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를 환대해 주시고, 
겸손과 온유, 안식과 더불어 
필요한 모든 은총을 풍부히 나눠주십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시편103,1-2). 

아멘.



2014.12.10. 대림 제2주간 수요일(뉴튼수도원 30일째), 이사40,25-31 마태11,28-30


                                                                                                           

만남의 축복


만남의 신비, 만남의 은총, 만남의 기쁨, 만남의 축복, 만남의 운명 등 끝이 없습니다. 

만남의 여정이라 할 만합니다. 

만남을 통해 끊임없이 새롭게 형성되는 삶입니다. 

만남이 내 운명을 결정하고 내 삶의 꼴을 만듭니다. 

여기 뉴튼수도원에서도 매일 새로운 만남의 장이 펼쳐집니다. 


성염(보스꼬) 대사 부인 전순란 글 일부를 소개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보스코에게 물었다. 

“왜 저렇게 좋은 분들을 두고 길을 바꿨어요?” 

기다란 설명을 하기 싫은지 그는 

“당신을 만나서.”

라고 대답하고 만다. 

하기야 그분들 틈에서 잘 살았으니 지금의 좋은 남편이 되었고, 

선량한 교우(敎友)들을 설득하면서 ‘사회적 사랑(= 사회정의)’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자고 가르치고 다니겠지. 

노신부님은 나를 보실 적마다 “나니야, 고마워. 우리 보스코가 너무나 행복해 보여.”하시면서 

장난꾸러기 아이에게 하듯이 내 머리를 만져주신다(휴천재 일기12,6일)-


참 사랑스런 영원한 청춘의 부인입니다. 

젊음은 나이에 있는 게 아니라 이런 사랑에 있습니다. 


만남중의 만남이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참으로 주님을 만날 때 매일이 새 하늘과 새 땅이요, 샘솟는 열정에 새로워지는 성소입니다. 


아, 이게 성소입니다. 

성소의 신비는 만남의 신비입니다. 

성소는 수도성소 하나만 있는 게 아니라 믿는 이들 삶의 여정 모두가 성소입니다. 

하느님을 찾는 여정의 성소요 때로는 수도생활도 하느님을 찾는 기나긴 여정 중 하나의 과정일 수 있습니다. 

끝까지 주님을 찾는 구도의 삶일 때 바로 제 성소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성소의 신비입니다. 


'당신을 만나서' 바로 이게 답입니다. 

저로 말하면 '주님인 당신을 만나서' 수도자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한 번으로 끝나는 만남이 아니라 

매일 새롭게 만남으로 끊임없이 성소를 가꾸고 돌보아야 참으로 아름답고 행복한 삶입니다. 


수도성소든 결혼성소든 원리는 똑같습니다. 


태백산맥의 저자인 조정래 씨에게 '당신에게 부인(김초혜 시인)은 누구인가?' 물었습니다.

"그녀는 매일 새롭게 피어나는 꽃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인지요. 

저는 이렇게 매일 새벽 강론을 쓰면서 주님을 새롭게 만남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주님은 나의 힘입니다. 

주님의 힘으로 살아야 지치지 않습니다. 


이사야의 고백은 바로 믿는 이들 모두의 고백입니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느님, 땅끝까지 창조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줄도 지칠 줄도 모르시고, 그분의 슬기는 헤아릴 길이 없다. 

그분께서는 피곤한 이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이 없는 이에게 기력을 북돋아 주신다. 

젊은이들도 피곤하여 지치고, 

청년들도 비틀거리기 마련이지만, 

주님께 바라는 이들을 새 힘을 얻고, 독수리처럼 날개 치며 올라간다. 

그들은 뛰어도 지칠줄 모르고, 걸어도 피곤할 줄 모른다."(이사40,28-30).


이런 하느님의 말씀이 힘을 줍니다. 

제가 예전 고백성사 때 자주 써드렸던 보속의 처방전 말씀입니다. 

'주님께 바라는 이들'에서 '이들' 대신 고백자의 이름을 써드립니다. 

믿는 마음으로 자주 보면서 일정의 보속기간 되뇌이며 복용할 때 '말씀 약'의 효험은 놀랍습니다. 


바로 이런 주님께서 늘 당신의 문을 활짝 열어 먼저 우리를 초대하시고 환대하십니다. 

참으로 우리를 만나고 싶어 끊임없이 우리를 초대하시고 기다리시는 주님이십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마태11,28-30).


역시 제가 고백성사 중 가장 많이 써드렸던 보속의 처방전 오늘 복음의 '말씀 약'입니다. 

무한한 위로와 치유를 주는 하느님 말씀의 효능입니다. 


오늘 복음은 '오너라'-'배워라'-'얻을 것이다'로 요약됩니다. 

주님은 우리 영혼의 영원한 쉼터이자 배움터입니다. 


영원한 쉼터이자 배움터인 이 거룩한 매일 미사를 통해 

주님을 만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하는 평생학인인 우리 믿는 이들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안식이요, 

더불어 우리의 불편한 멍에는 주님의 편한 멍에로, 

우리의 무거운 짐은 주님의 가벼운 짐으로 바뀝니다. 


바로 끊임없이 바치는 미사와 성무일도의 공동전례기도 은총입니다. 


이어지는 전순란 님의 글도 의미심장합니다.


-나무토막 서너 덩이로 훈훈해진 식당에서 은박지로 싸서 난로 속 장작더미에 얹어 구워낸 고구마로 

두 사람이 저녁을 먹는다. 

40년쯤 한 사람과 살다보면 누구누구랄 것도 없이 하나가 되는 듯하다. 

창밖으로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휴천재 일기12,7일).-


이 또한 우리 수도성소의 원리입니다. 

하나됨의 신비체험입니다. 


주님의 집에서 주님과 '제대로' 오래 살다보면 어느 수도자할 것 없이 주님과 하나되고 수도형제들과도 하나가 됩니다. 


보이는 형제들과의 일치는 바로 보이지 않는 주님과의 일치의 표지입니다. 


주님은 매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를 환대해 주시고, 

겸손과 온유, 안식과 더불어 필요한 모든 은총을 풍부히 나눠주십니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내 안의 모든 것도 거룩하신 그 이름 찬미하여라.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그분의 온갖 은혜 하나도 잊지 마라."

(시편103,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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