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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긍정과 격려의 하느님 -믿는대로 되리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11 조회수1,295 추천수1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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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11. 대림 제2주간 목요일(뉴튼수도원 31일째) 이사41,13-20 마태11,11-15



긍정과 격려의 하느님
-믿는대로 되리라-


긍정과 격려의 하느님이십니다. 
질책과 꾸중보다는 위로와 격려, 
비관과 향수(Nostalgia)보다는 낙관과 비전의 하느님이십니다.


얼마 전(12.5일자 복음) 뒤늦게야 강론에 삽입했던 구절이 생각납니다.

"너희가 믿는대로 되어라“(마태9,29ㄴ).

읽는 순간 '믿는대로 되리라.'라는 말마디가 생각나 덧 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얼마나 긍정적인지요. 
믿음이 있을 때는 긍정적 낙관적 삶이지만 믿음이 없을 때는 부정적 비관적 삶으로 변질됩니다.


어제는 잔뜩 흐린 날씨에 간혹 진눈개비 내리는 어둡고 무거운 날이었습니다.

성탄 츄리 판매하는 일터에 들렸다가 밝은 얼굴로 손님도 없는 빈 자리를 지키는 수도형제가 고마웠습니다.


'아, 기다림의 가난, 기다림의 기쁨이구나. 
비움의 가난 자리가 기쁨으로 충만해 지는 기다림의 대림시기이구나. 
무엇을 잘 하는 것(to do)도 좋지만 그냥 제자리에 존재하는 것(to be)만으로도 만족하고 감사한 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도 자유로워졌습니다.


예수님과 예언자들은 모두 하느님을 닮아 이렇게 평생 긍정과 격려의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여기 수도형제가 대화중 무심코 한 말도 저에겐 귀한 교훈이었습니다.

"나이든 선배들이 짜증 내거나 화내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선배들이 자주 짜증내고 화내면 정말 싫어요. 
너그럽게 웃으며 웬만한 일에도 '괜찮아!' 격려해 주셨으면 정말 좋고 힘이 나겠어요.“

듣는 순간 '웬만하면, 아니 앞으로는 절대로, 
무조건 짜증내거나 화내는 일은 없어야 겠다' 다짐했습니다.

'나이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라'는 우스개 말도 생각났습니다.


믿는 대로 됩니다. 
좀 부족하고 잘 못 됐어도 '괜찮다' '그럴수 있지!' '그게 현실이지!' 생각하며 너그럽게 받아들임이 백배 좋습니다.

여덟 잘하고, 둘 잘못하면 그냥 둘은 덮어두고 잘하는 면을 집중적으로 부각하고 격려함이 또 백백 낫습니다.

둘을 지적하고 책하면 자존감에 상처만 줄 뿐 잘 교정되지도 않고 관계만 불편해 집니다.

잘하는 여덟가지만 손상을 입고 마음도 위축됩니다.

너 나 할 것 없이 장점과 단점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부족함과 한계를 지닌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하여 분도 성인도 형제들의 약점을 지적하여 고치려하지 말고, '지극한 인내로 참아 견디라' 합니다.

방관이나 무관심이 아니라, 때가 될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내버려 두는 무관심의 관심입니다.

이 또한 긍정적 사랑의 발로이자 지혜입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마태11,11).


바로 이것이 예수님은 물론 당시 제자들, 그리고 우리의 건강한 확신이자 자부심입니다. 
얼마나 긍정적이고 고무적인 격려의 말씀인지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지만, 
이미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하늘나라를 살고 있는 너희는 아무리 작더라도 그분 세례자 요한 보다 크다'는 

속내가 함축된 주님의 대담한, 자존감을 드높여 주는 말씀입니다.

전혀 기죽거나 위축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귀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11,15).
말마디 안에 함축된 주님의 깊은 뜻을 마음의 귀로 들으라는 것입니다.


이사야를 통한 하느님의 말씀은 또 얼마나 고무적인지요.

"나 주님이 너의 하느님, 내가 네 손을 붙잡아 주고 있다. 
나는 너에게 말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를 도와주리라.'“(이사41,13).

우리의 두려움과 불안을 불식시키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늘 나의 손을 붙잡아 주고 계신 주님이신데 무엇을 두려워합니까?


더불어 생각나는 시편의 고백입니다.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시편27,1).

하느님의 빛나는 비전의 희망 앞에 저절로 사라지는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주님은 과거를 향한 향수(Nostalgia)가 아닌 미래의 빛나는 약속된 비전으로 우리의 눈길을, 발길을 돌리게 하십니다.

"나는 벌거숭이산들 위에 강물이, 
골짜기들 가운데에 샘물이 솟아나게 하리라. 
광야를 못으로, 메마른 땅을 수원지로 만들리라.“(이사41,18).

긍정과 비전의 하느님이자 이런 하느님을 닮은 이사야 예언자요 예수님입니다.

우리가 믿는대로, 비전대로 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 모두 당신을 닮은 긍정과 격려, 
비전의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시며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구원하였으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내 사람이다." (이사43,1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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